여린 팽나무의 위로
속삭임_여린 팽나무의 위로
속삭임
2023, 장지에 채색, 50×50㎝
어느 날부터,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나무 한 그루가 생겼습니다.
그건 남편이 갑작스레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던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곁에 앉아 손을 잡아줄 수도, 병원 로비에서 밤을 지새울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에 단 한 번, 오후 여섯 시에 걸려오는 담당 의사의 전화가 남편의 하루를 대신해 전해주는 전부였습니다.
집 안에서 그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나치게 길고 무거웠습니다.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은 점점 어두운 쪽으로 기울어갔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 어느 날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과 손을 맞잡고 걷곤 하던 산책길을, 그날은 혼자서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산책로 끝자락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랗게 익어가던 여린 팽나무였습니다. 평소라면 스쳐 지나갔을, 그저 많은 나무 중 하나였을 텐데,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가다 멈추는 그 자리에, 팽나무는 조용히 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이렇게 가라앉아 있는데, 너의 노란 잎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쁠까. 이 아름다운 모습을 남편과 함께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 앞으로 우람하게 자라가는 너의 시간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혼잣말처럼, 기도처럼 속삭였습니다. 햇빛을 머금은 노란 잎들은 잔잔한 바람에 몸을 흔들며, 마치 대답하듯 조용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몸짓이 마음을 감싸 안았습니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 한켠이, 아주 조금씩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건강을 되찾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그 시간에 말없이 곁을 내주었던 여린 팽나무와의 인연은 그 이후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녕, 오늘도 나왔어. 이 추위가 지나가면 곧 봄이 오겠지.
언제나 그랬듯,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빛나는 모습으로 내일을 맞이하자.”
팽나무에게 건네는 이 짧은 인사는, 어느새 나 자신에게도 전하는 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