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회고록 프롤로그
세 세대 회고록 『세 사람의 날들』 2부 『그의 날들』을 시작합니다.
회고록의 이유
노무현이라는 분이 홀로 역사가 되어 떠나갔을 때,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다. 담벼락에 붙은 포스트잇부터 유명인사의 칼럼까지.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입을 모으더군요.
'잊지 않겠습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행여 잠결에서도 절대 잊지 않으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운 사람에 대한 마지막 편지가 '기억의 약속'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없고 미리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 마음이 같다는 것도.
제가 회고록을 쓰겠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 딱 한 명이 있었습니다. 제 후배입니다.
제가 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저를 거쳐 제 아들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의 회고록을 쓰겠다고 하자, 후배가 불쑥 묻습니다.
"형은 이걸 왜 쓰는 거죠?"
어떤 일을 할 때면 멋있는 의미 넣기가 습관이던 사이입니다. '어, 그러게. 나는 왜 이걸 쓰려고 하는 거지?' 허를 찔린 저는 즉시 답변하지 못한 채 뭔가 그럴듯하고 폼나는 이유를 붙여볼까 하다가 바로 포기합니다.
평소 생각하던 그대로 답했습니다.
"이유? 그런 거 없어! 그냥 이런 사람들 셋이 한집에서 살았었다는 걸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지금 누구든 제게 "귀하는 왜 회고록을 쓰려고 하는 게요? 아직 법정 노인도 아닌 젊은 양반이." 하고 물으면 즉시 답합니다.
"악착같이 기록해서 한 명이라도 더 나를 기억하게 하려고요."
가랑비도 때로는 폭우가 됩니다
세상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
하지만 그것조차 기억 앞에서는 불공평합니다.
어느 정도의 사람들에게 기억되느냐도 불공평하지만, 어떻게 기억되느냐도 불공평합니다. 언제 죽느냐에 대한 불공평도 있다고요? 지금 그 공평까지 따질 겨를은 없습니다. 최소한 지금의 저에게는.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말도 있죠. 둘 다 참 멋진 말입니다. 그런데, 앞의 말에서는 특권의식이 느껴지고 뒷말에서는 사적욕심이 묻어납니다.
저는 언감생심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한 명이라도 더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있었던 그대로요. 다른 모든 건 다 내려놨기에 더 내려놓을 것도 없습니다.
제가 했던 짓들을 이쁘게 꾸밀 마음도, 한때 이룬 것들을 자랑할 마음도 없습니다. 제 경험은 가치 있는 것이니 잘 보존해서 이어주시고, 저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기억하며 그리워해 주길 감히 바라는 욕망 따위 조금도 없다는 말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 회고록이 재미없을까 봐 걱정입니다. 크게 자랑하며 옛일을 내세울 것도 아니고, 크게 잘못을 빌며 지난 일을 후회할 것도 아니니까요. 과거의 큰 사건이나 이벤트를 애써 곱씹어 기록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어머니 회고록이 그랬던 것처럼, 제 삶의 사건 주변에서 소소하게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함께 그때마다의 제 감성을 느꼈던 그대로 담백하게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회고록이 그렇듯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시간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어머니 회고록에 더해져서 '그때를 아시나요?' 혹은 '그땐 그랬지!'가 돼버릴까 무서워 그것도 제 이야기에서는 줄이겠습니다. 기록할 게 더 적어지네요.
'이거 뭐 시시하네' 하실 수 있겠습니다. 별 재미가 없더라도 그저 '이런 사람도 살았구나'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때로는 폭우 맞은 것처럼 몸이 흠뻑 젖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겠지만, 모두가 저를 까맣게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게 누구더라?'가 아니고 '그런 사람이 있었지!'라면 저는 벌써부터 행복합니다.
2부의 화자(話者)는 '꼭두'
『세 사람의 날들』 2부(部)는 1부나 3부와는 다르게 3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품 속의 타임캡슐」
「그의 나홀로 하루」
「부치지 못한 편지」
애써 구분하자면 제가 제 삶의 기록을 쓰기로 결정한 날을 기준으로, 어제, 오늘, 내일에 해당되겠네요.
글은 일단,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주간(週刊) 2화(話) 발행하겠습니다.
2025년 12월 15일부터 매주 화요일, 수요일, 토요일에 주간 3화 발행으로 변경했습니다.
2026년 1월 12일부터 매주 수요일, 토요일에 주간 2화 발행으로 변경했습니다.
2026년 2월 9일부터 매주 토요일에 주간 1화 발행으로 변경했습니다.
『세 사람의 날들』에서 모든 기록은 제가 하지만, 1부의 화자가 어머니셨듯 2부의 화자도 제가 아닙니다. 2부의 화자는 '꼭두'입니다.
꼭두는 삶과 죽음의 길동무입니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꼭두에게 가장 큰 소명은, 동무가 인생소풍의 마지막 날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그 길을 낯설어한다지요. 꼭두는 친구가 낯설지 않도록 길을 안내하면서, 때로는 춤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친구를 즐겁게 해줍니다. 편하고 무탈한 여행을 위해 시중도 들고 호위도 합니다. 한마디로 든든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길동무 꼭두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살면서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마지막 여행길에 그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내 꼭두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증에 미리부터 그의 존재를 느끼려 애쓰지는 마세요. 어차피 때가 되면 자기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여주거든요.
친구와 함께하는 마지막 여정을 마치고 나면 꼭두는 사라집니다. 다른 사람과는 잘 대화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생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게 제 마지막 길의 시작이라 생각했기에, 제 꼭두에게 저를 다른 분들께 이야기해달라 부탁했고, 그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저와의 동행이 그의 소명이니까요.
때로는 제 인생극장의 나레이터나 인터뷰어로, 때로는 제 기록의 우체부나 해설자로, 그의 몫을 잘해주리라 기대합니다.
끝으로 덧불입니다. 1세대 회고록의 원칙이 '미화(美化) 경계'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세대 회고록의 원칙은 그것에 더하여 '병상일기(病床日記) 경계'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인칭 시점의 전형적인 인생일기를 기록하지 않는 것에 더하여, 브런치에서도 때로 만날 수 있는 투병일기 혹은 병상일기로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회고록에 의미나 관심이 없다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저는 제 기록이 그저 즐거운 회고록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새로운 모습의 글을 기록하고 싶어 해도, 그래본들 회고록이고, 초대한 적 없음에도 다소 일찍 찾아온 병동무하고도 동거하는 이야기이기에, 그 틀을 크게 벗어나긴 힘들 겁니다.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유쾌하고 재미있게.
제가 저를 배웅하기 위해 저는 지금부터 저를 곱씹으며 돌이킵니다.
그 기록이 비록 시시하고 재미없는 무명노인의 독백에 그치게 되더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신 누군가 한 분이라도 저를 기억해 주게 된다면 저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이제부터, 세 세대 회고록 『세 사람의 날들』 2부 『그의 날들』을 만나보시죠.
2025년 12월 8일
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