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홀로 하루」 첫 번째
4월 3일, 확정진단
안녕? '나'는 꼭두야. '그'의 길동무지.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지켜봤어. 그런데, 요즘 그가 나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와 대화가 많아졌네.
급기야 그에게서 사람들에게 그를 이야기해달라는 부탁까지 받게 됐고, 난 그리하겠다 했어. 나는 그가 떠나는 길의 동행자로서, 그게 무엇이든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해야 하는 팔자거든.
나는 그를 내키는 대로 부를 거야. '너', '당신', '친구', '동무', '어이'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미 그도 내게 그러고 있으니까.
요즘 그가 한 주 걸러 한 번씩 입원, 퇴원을 반복하고 있지.
이른바 빅5 병원 중에서도, 특히 간암에 관해서는 1, 2위를 다툰다는 서울아산병원. 아직 전공의 파업사태가 채 진정되지 않아, 요즘 그곳 입원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던데, 도대체 의사하고 무슨 딜을 한 걸까?
조금 전, 그가 뜬금없이 내게 말을 건네네.
나 지금 막 '인생전역 명령서'를 받았어. 이번엔 공식 서면으로.
"뭔 밑도 끝도 없는 소리야?"
세 번째 아산 퇴원의 아침이 밝아온 오늘. 새벽부터 일어나 뒤척이는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치료를 포기당한 어제가 떠오르더라.
의사가 그랬잖아. 앞으로는 3주 간격의 외래 항암. 그러니까... 3주에 한 번 항암 주사 맞으러 오기만 하면 된다고. 결국 기대여명 6개월은 그대로라고.
새삼 어제 내가 제대로 들었던 게 맞나? 싶더라니까. 그래서 아산 앱을 켜보니까 말야. 원래 잡혀있던 앞으로의 입원 일정이 다 사라졌더라. 싹 다.
나도 즉시 보복했지. 내 폰 날씨예보 앱에 관심지역으로 등록해놨던 '아산병원'을 지워버렸어. 보란 듯이. 아쉬울 거 하나 없다는 듯.
의사가 마치 못 박듯 덧붙인 말도 떠오르더군. 또 입원하게 된다면, 그건 내가 응급 상황임을 의미하는 아주 좋지 않은 일이라나.
"너 원래 치료 안 받겠다 했었잖아? 기억 안 나? 4월 3일. 날짜도 안 잊어버린다 하지 않았어?"
그랬지. 의사도 그러라 했었고.
"그런데 왜 갑자기 서운한 척 난린데?"
너도 알다시피 몇 달 만에 상황이 바뀌었잖아. 아들 살 곳 찾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니까? 의사는 이번에도 또 그러라 했고.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거지.
"안 된대?"
세 번의 입원 동안 한 일이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방법을 찾기 위한 정밀검사였다네. 그랬는데... 다 안 된대. 수술도, 치료도. 그 시크한 의사가 그리 미안해하는 거 처음 봤어.
실패한 노아의 방주
이 친구, 요즈음 별로 말이 없었는데 오늘은 말문이 터졌다.
아마도 여기가 마지막 병실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정갈한 독거노인의 품격을 위해 매일 그랬듯, 씻고, 면도하고, 머리 감고, 새 환자복 입고, 침대에는 새 시트커버와 베갯잇까지 씌운 후, 사진도 몇 장 찍었어.
귀곡산장 독거노인이 드물게 머물다 간 집 밖 공간이니까.
지독히 외로운 인생 말년에 대한 보상인가?
요즘의 나는, 날로 기운이 사라져가는 몸에 반비례해서, 정신은 너무 총명하다 못해 예지력까지 자라난 게 확실하다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걸 '귀신같은 능력'이라 부르는 건가?
의사는 이번 입원이 앞으로의 의욕적인 색전술과 방사능 치료를 위한 최종 점검이라 했었어. 마치 '노아의 방주'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한마디로 최후의 보루였다는 거지.
"노아의 방주 건조에 실패했구나?"
어쩐지 이번엔 입원 전부터 느낌이 영 좋지 않더라고. 마치 어디 끌려가는 것처럼.
지난번 입원 때 옆 베드 환자에게 그쪽 의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길.
"전이가 심해요. 하려던 치료 못 하게 됐습니다."
검은 낯빛의 노인은 그 검정이 더 짙어지는 느낌만 들뿐, 그저 고개 숙인 채 한마디 말도 없었지.
내 예지력이 우연히 그 대화 풍경을 지켜본 탓이겠거니 했지만, 어쩐지 남 일 같지 않더라니.
너도 잘 알지만, 난 입원할 때마다 퇴원을 기다렸잖아. 당연히 아들 밥 해 먹이러 서둘러 가야 하는 초조함인 줄로만 알았는데, 뭔가 잊혀졌던 낯익은 느낌이 섞여 있네 싶다가, 드디어 조금 전 선명해졌어.
지독히 고단했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하던 날의 느낌과 같은 거였어.
모든 현역 군인이, 최소 백 일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그날. 청춘의 귀한 한 조각을 바치고서야 받아낸 부대전역 명령의 해방감.
그런데 차이가 있단 말이지. 초조하게 손꼽아 기다리는 건 같은데, 왜 지금은 느낌이 이리 다를까?
부대전역 명령의 통쾌한 해방감과 비교되는 병원전역 명령의 쓸쓸한 퇴장감?
10월 2일, 인생전역 명령서
"이제 퇴원하러 가자."
더는 말을 아끼는 의사에게 마치 마지막 부탁인 듯 말했지.
공식 진단서를 떼어달라고. 교수님이 말하신 그 여명에 관한 문구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아들 살 곳 찾는 데 꼭 필요한 서류라고.
"기대여명을 음..."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이 보였어.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구두로 확정진단을 받을 때 말해줬던 6개월이 막 지났거든.
"오늘은 10월 2일이야. 못 잊을 날짜가 하루 더해졌네?"
그리고 받아 든 확정진단서. '소견' 란에 이렇게 적혀있더라.
'기대여명 수개월 내외로 예상됩니다.'
'수개월'. 참 절묘한 단어지? '6개월'보다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하고.
"네 마음만 편하면 돼. 길든 짧든 다 느낌일 뿐이니까."
그게 말야. 말로 들을 때 하고 서류로 받았을 때 하고 느낌이 확 다르네. 군에서 '부대전역 명령서' 받았을 때 그 느낌하고 같아. 실감 나더라고. 병원 공문서에 검은 활자가 딱 박혀있는데, 등줄기가 서늘하더라니까.
그제서야 '아, 이게 내 일 맞구나' 싶더라고.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
나는 지금 막 인생전역을 명 받았다.
'기대여명은 수개월'이라는 활자가 무심하게 찍혀있는 진단서. 그 '인생전역 명령서'를 보면서, 곧 인생 첫 항암주사를 맞으러 갈 거고, 잠시 후 전역한다.
소풍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