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꽃밭, 텃밭 귀곡정원

「그의 나홀로 하루」 다섯 번째

by 꼭두

풀밭, 꽃밭, 텃밭 귀곡정원

「그의 나홀로 하루」 다섯 번째


수직 낙하, 24층에서 지하까지


안녕? 오늘도 꼭두야.


그리고 오늘은, 귀곡 시리즈 연작의 세 번째 화두인 그의 식물집사 토크를 시작해 볼까?


"당신 말야.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한테도 종종 투덜거리지 않았냐? 특히 어머니하고 '화분 좀 버리자, 안 된다.' 하며 옥신각신하던 걸 자주 봤기에 하는 얘기야."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가 전하는 말들, 내가 별로 인정 안 하던 거 알지? '내가 직접 겪어보고 판단한다.' 그게 젊은 시절부터의 내 개똥철학이었으니까.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미리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싫었나 봐. '맞말이더라도 겪어보고 굴복하자.' 그런 심리? 반항이 적당히 깔려있는.


많은 말을 겪어봤지. 그리고 그중 하나, '계실 때 잘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건 바이블이더라. 가장 완벽하게 나를 굴복시키더군.


아버지 가신 지 올해로 벌써 30년째인데, 떠나시던 딱 그 순간부터 시작된 후회도 30년째야.


내 종특상 아주 자잘한 것들까지 당시의 풍경, 어록과 함께 마치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데 미치겠어. 울 엄니 닮아 유난스럽게 타고 난 기억력이 저주스러울 정도라니까.


'그냥 들어드릴걸. 뭐 대단한 거라고 그리 뻐댔을까?' 뭐, 그런 거지.


"당신이 투덜이에 삐딱이인 거야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그중 하나가 '액자의 기억'인데, 내가 처음 내 신혼집을 꾸밀 때의 일이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쓰여있는 무지 커다란 액자를 들고 입장하신 아버지, 내게 묻지도 않고 거실 한복판에 못을 박기 시작하시네. 난 기겁했지.


"지금 뭐 하세요?"


"이거 걸어야지. 가훈 없는 집도 있다더냐?"


"아버지, 제 마음속 가훈은요. '깨끗하게 살자!' 이거예요. 지금 제 집 벽마다 보세요. 뭐 하나 걸린 거 있어요? 하다못해 시계도 없잖아요. 저는 이거 걸 수 없습니다."


당시 어지간한 집은 가훈 액자를 거실 복판에 높이 걸어놓는 게 흔하던 시절이지.


왜 그 시골 고옥(古屋)에 가면, 멋들어진 한옥조차 툇마루에서 대청마루로 이어지는 자리에 가문의 일가식솔들 사진과 함께 떡 하니 큼지막한 가훈이 걸려있는 거 본 적 많지 않아?


고리타분한 충청도 시골 종가 장손으로서, 아버지의 머리에 박힌 그 인테리어 원칙은 돌아가실 때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지.


하지만 아버지는 내 신혼집들이 그날. 끝내 그 가훈 액자를 걸지 못한 채, 다시 가지고 돌아가셔야 했어.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명승이자 서예가라는 일붕(一鵬) 스님이 직접 쓴 글씨이기에 아무렇게나 둘 수는 없다시면서.


아버지가 지닌 일붕의 글 중 가장 아끼던 걸로 일부러 만들어오신 그 액자.


이건 내용만 그 글씨. 일붕의 그 액자는 아버지 귀천하실 때 함께 태워드렸다.


이제 와서 '죄송해유, 아부지.' 해본들 뭐 하겠어. 그날 그냥 아버지 뜻 들어드렸으면 좋았을걸. 그치? 그니까 너도 나 있을 때 잘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친놈. 너하고의 마지막 동행을 마치는 순간, '소신공양(燒身供養)'이 내 팔자인 거 잊었어? 나란 존재는 시작도 끝도 너하고 같잖아. 지금만 잘하면 되는 게 내 운명이야."


그랬던가... 넌 후회할 일 없어 좋겠구나.


아버지를 향한 내 반성 씬이 수백쯤 된다면 엄니에게는 수천쯤 되는데, 그중 하나가 화분이지.


엄니의 화분을 향한 무한 사랑은 한강변 60평 아파트 살 때 최고조였어. 그 큰 거실로도 모자라 베란다 확장까지 했으니 좀 넓었냐? 우리 아들 거기서 인라인 타고 놀았잖아.


동쪽으로 난 커다란 통창 아래 거실에, 수십 개의 난(蘭) 화분과, 난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른 키보다 큰 형형색색의 각종 나무들 컬렉션이 장관이었지. 이건 뭐 거실이 아니라 식물원 온실인 줄 알았다니까. 나 집에 올 때마다 입장료 낼 곳 찾았잖아.


"개뻥도 좀 적당히."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 한 장면. 거의 이 수준.


아버지 떠나신 후 온전히 내 힘으로 장만한 집이었기에, 그 거실 정원에서 행복해하는 엄니를 보면 나도 뿌듯했었는데... 문제는 아들이 커가면서 시작된 내 경제적 수직 낙하였지.


서울의 한강변 신축아파트 최고층이었던 24층을 10년 만에 팔아먹고 오피스텔 11층으로. 이어서 빌라 5층. 급기야는 단독주택 반지하까지 말 그대로 수직 낙하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


그다음이, 지금은 청년이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귀곡산장이야. 수직의 위치 이동으로도 모자라 시공간마저 50년 전으로 되돌린 느낌?


50년 실외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귀곡산장 테라스


이사 다닐 때마다 바로 그 화분들 덕분에 머리가 지끈거렸어. 도통 줄일 생각은 않고 늘 죄다 가져가겠다는 엄니. 그것만도 두 트럭은 됐으니까. 화분은 2층으로 쌓지도 못하잖냐.


"엄니, 지금 갈 곳은 저 화분 놓을 자리도 없어요. 제발 반만 버립시다. 아니, 반의반이라도."


"그럼 난 안 갈란다."


울 엄니 고집 알지? 결국 단독 반지하까지 갔을 땐 어땠는 줄 아냐? 도저히 자리가 안 나오니까 1층 공동 현관 앞 공터에 쌓더라니깐.


"당신도 못 꺾는 어머니 고집이야 뭐 하루이틀인가... 하하. 이웃들은 좋았겠네. 졸지에 집 앞 조경공사까지 해주시니 얼마나 좋았을까?"


속으론 '백날 아들 육아 핑계 대본들, 이게 다 집 말아먹은 내 탓이다.' 하는 자격지심까지 겹치면서, 나는 화분, 풀, 꽃, 나무 이런 건 불호를 넘어 혐오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지.


귀곡산장에 살기 시작하면서 눈 뜬 큰 즐거움이 베란다였어. 몸이 푹 파묻히는 캠핑체어도 샀지. 베이지로 샀더니 너무 독거노인 느낌 같아 브라운으로 하나 더 샀어.


지금이야 의도지 않은 다이어트로 슬림해졌지만, 원래는 한 무게 하는 내 몸 잘 버티도록 천도 프레임도 더 튼튼한 것으로. 베개로도 부족해 쿠션까지 씌웠다니까.


제법 넓지? 이 글 쓰면서 새삼 조금 전에 폰찍.


해 뜨는 새벽부터 그곳에 몸을 묻고 앉아, 담배 한 개비 피워물고 있노라면 최고였어.


'과연 귀곡산장이로다.' 싶은 게 뭐냐. 옆에는 우리 마당냥이 일찌감치 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있고, 이어서 시장통 반찬가게에서 조리를 시작하는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해.


잠시 후, 어디 살면서 들르는 건지 그 도심에 까치도 날아와 깍깍거리다 마당냥과 사료 쟁탈전을 벌이고, 이윽고 밝아오는 따뜻한 햇볕까지, 귀곡산장의 독거노인만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아침 행복을 만끽했어.


지금 내 소망 중 하나가 뭔 줄 알아? 휴먼 영화의 흔한 클리셰 중 하나지만,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테라스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편한 미소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


어때? 고독사 걱정보다 훨 폼나지 않냐?


"산장 삼천포 말고 식물!"


하면 되잖아. 엄밀하게 말하면 테라스보다 발코니인데 내가 계속 테라스로 부르는 사연을 말하려다 보니 잠시 또 삼천포를 다녀왔군.


난 거기서 두 딸과 한우 바비큐 파티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곳이 곧 '귀곡정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곳의 네 집 중 우리 집 테라스가 제일 높아. 늘 세 집 마당을 내려다보게 되는데, 집마다 한 그루씩 50년 된 나무와 정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스멀스멀 딴생각이 나더라?


가장 잘 보이는 앞집 마당은 감나무를 둘러싼 정원이 꽤 풍성하고, 그 옆집 백목련은 봄이면 엄청 푸짐해. 내가 살면서 본 목련 중 가장 커. 오른쪽 집 한 쌍 은행나무와 얕은 돌담 정원까지.


점점 부러워지더라고? 1층 점포가 창고로 개조한지라 마침 우리 집만 마당이 없으니까 더욱더. 처음엔 네 집 중 유일하게 식물 하나 없는 우리 집이 딱이다 싶었던 포인트였는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노인의 품격 상 식물 혐오론자가 갑자기 집사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 게다가 그동안 엄니와 식물과 화분 때문에 그토록 싸웠는데 앞뒤도 안 맞고.


하지만 변덕의 알리바이는 조금씩 자라났지. '쟤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실외 흙에서 크니 보기 좋네그려.'를 시작으로.


귀곡정원의 시작


어느 날, 전에 살던 빌라 골목의 단골 호프집을 들렀어. 아들이 웬일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준다거나, 어렵게 재우기를 마친 날이면 그 노독 달랜다며 혼자서 잘 들르던 곳.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어주기에 가능했지.


아무튼 그 동네에서 이사 나올 때 유일하게 아쉬웠던, 쌓인 정 많은 집.


내가 빌라 오자마자 오픈했는데, 내 나이 또래의 주인아줌마와 친하게 지냈어.


원래는 전라도 순천 토박이인데 나이가 한참 위인 바깥양반과 결혼해서 정착한 곳이 부산인 분. 말하는 걸 들으면 딱 영남 사람인데, 손맛은 호남 사람인 국민통합 실천 아줌마.


장사가 워낙 안돼 그런지, 내가 가면 엉뚱하게 낮에 했던 주식 이야기를 매번 물어봐.


난 한때 억 단위로 털어먹은 후 탈출에 성공하곤 쳐다도 안 보던 게 주식이야. 딱 들어보니 동네 여사장끼리 경쟁하듯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종목도 한결같이 급등주 단타야.


무조건 말렸지. 왜 개미는 '성투'가 불가능한지 이론과 경험을 버무려서. 쉽게. 그게 그 여사장한테 공감을 넘어 울림을 줬나 봐.


하지만 주식은 계속해. 못 말린단 걸 알고는, 정 못 끊겠으면 몇 년 안 쳐다볼 각오 하고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걸 사라 그랬어. 그건 먹혔어. 삼성으로 싹 다 바꾸더라.


이 아줌마 웃긴 게 나중에는 같이 몰려다니며 주식하는 다른 제법 손 큰 개미들까지 다 끌고 와서 무조건 나보고 얘기 좀 하래.


탐욕스러운 눈을 똘망똘망 뜨고 다들 나만 쳐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입을 열곤 했지. 따지고 보면 별 얘기도 없었어. 내가 한 말은 오직 '급등주 말고 우량주'.


난 그 구석 동네의 무명 애널리스트가 됐어. 그곳은 어지간한 타로카페만큼 유명한 주식호프가 됐고.


당시 마침 개미들이 우량주에 눈 뜨기 시작하면서 '동학개미'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할 때였는데...


"주식 삼천포 말고 식물!"


허허, 이게 그거야. 장사 안되는 호프집 여사장의 재주가 어항 속 붕어 키우기와 온갖 식물 키우기였는데, 여사장은 엉터리 애널리스트에게 상담료 대신 식물을 주기 시작했거든.


그게 귀곡정원의 시작이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


처음에 받아온 건 식집사의 교양과목인 '장미허브'와, 그보다는 약간 고상한 컬렉션인 '베트남고추'.


아주 나중에, 내게는 첫 식물이었던 장미허브를 당근에서 다시 사 왔을 때와 지금의 엉성한 모습.


식물 혐오자답게 모든 식물에 대한 정보나 경험은 전혀 없던 내게, 호프집 여사장이 보여 준 장미허브는 신기했어. 대뜸 내게 저 잎을 손으로 한번 쓸어보고 향을 맡아보라대.


시키는 대로 하고 손을 코에 대어 보니 '오, 은은한 향이 정말 좋군.' 소리가 저절로 나오네.


"가져가세요."


"네? 전 식물이라곤 풀 한 포기도 키워본 적 없는데요. 말려 죽일 게 뻔한데 그 짓을 할 수야 없죠."


"이거, 무지 쉬워요."


그러면서 손으로 잎을 뚝뚝 끊어 옆 자리 흙에 대충 꽂으면서 하는 말.


"햇빛 좀 보여주고, 물만 잘 주면 이렇게 마구잡이로 꽂아놔도 막 자라요. 세상 쉬운 잎꽂이. 순식간에 빽빽해지면서 주변 흙이 온통 장미향으로 가득 차게 되죠. 실내에서 키우면 공기정화 효과까지."


"초보자한텐 딱이겠네요?"


"딱이죠! 가져가요."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이상한 고추가 눈에 확 뜨이네.


"저건 뭐예요? 왜 고추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죠?"



"베트남고추! 쥐똥같이 조그맣다 해서 '쥐똥고추'라고들 부르죠. 알죠? 그 매운 놈 끝판왕. 먹을 땐 그리 부르지만, 키울 때는 저 작은 놈이 우리나라 고추완 다르게 이렇게 거꾸로 매달려 하늘 향해 자란다 해서 '하늘고추'라고 불러요."


오, 주식 얘기보다 백 배 재밌군.


"보는 눈 있으시네. 얘도 초보자한테 딱이죠. 장미허브보다 볕도 물도 더 좋아하는 놈이니 해도 좀 더 보여주고 물은 그냥 매일같이 주면 쑥쑥 자라요. 얘도 같이 가져가세요."


둘 다 탐이 난다. 장미허브는 향이, 베트남고추는 앙증맞게 매달려 거꾸로 자라는 저 형형색색 모양이. 무엇보다 둘 다 키우기 쉽다는 게 마음에 쏙.


걸어가기에는 제법 거리가 되는데, 난 행여 풀이 다칠세라, 잔뜩 챙겨준 그 둘을 양손 가득 들고 귀곡산장까지 낑낑대며 걸어갔다는 거.


가장 걱정했던 대로, 마침 이 모습을 나와서 지켜본 엄니의 핀잔 묻은 말.


"뭐냐, 너? 네가 웬 풀을 잔뜩 들고 온다니? 별꼴이네."


"응? 별거 아냐. 누가 저절로 잘 큰다며 하도 가져가라길래 그냥..."


"딱 걸렸군."


그렇게 귀곡정원의 풀들이 입주를 시작하고 있었어.


한편으론 비극도 잉태되고 있었고.


자, 여기까지 '귀곡정원 1'로 하자. 마당냥 이야기처럼 귀곡정원 전성기 이야기와, 행복 뒤에 이어지는 고민의 순간은 '귀곡정원 2'에서 하는 걸로.


"또또 그런다. 제 맘대로 삼천포 들락날락하다 정작 할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계속인데?"


여전히 잘 모르지. 솜털같이 많은 시간 서두르지 마.


하이고, 자기 풀떼기 키우는 이야기 따위 뭐가 그리 재밌다고 끊어가면서 저러는지 원. 하지만 별 수 있나. 연출자가 그리하겠다는데 나야 기다려 드려야지.


여러분, 다음에는 꼭 한 방에 끝내도록 할게요. 그럼 다들 오늘도 굳나잇.


아니, 굳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