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속의 타임캡슐」 세 번째
안녕? 오늘도 인사하는 꼭두야.
그는 아무래도 그제 무리했던 것 같아.
38년 만의 친구들 모임이라고 잔뜩 들떠서는 신나게 수다 떨더라니, 오늘 좀 시들었네. 노인네답게 늘 새벽부터 분주하던 친구인데.
뭐? 새벽부터 설칠 때는 거의 못 자고 밤새운 거라고? 왜 그랬어. 첫사랑 실패할 나이도 아닌 것 같은데.
어찌 됐든 나하고도 수다를 떨어줘야 귀곡산장 시리즈로 이어가려던 식물집사 이야기를 할 텐데, 오늘은 영 그럴 에너지가 없어 보이네.
그 대신 대학 시절 친구들 만난 여운이나 길게 느껴보라고, 오늘 또 그가 기록해 두었던 그의 대학생 시절 기억을 찾아왔어.
그의 소소한 시간여행.
그의 말이나 글들이 다 그렇듯, 뭔 대단한 사건이나 이벤트를 회고하는 게 아니고, 그의 머리에 포착된 그 사건의 주변 풍경과 그때의 느낌들에 대한 기록. 마치 연극이나 영화의 중요한 씬 뒤편에 무심하게 깔려있는 배경화면이나 슬쩍 스쳐 지나가는 장면 같은.
뭔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회고록'의 느낌은 아니지?
하지만 뭐 어쩌겠어. 여기는 그의 페이지고 그는 그런 걸 자신의 '회고록'이라고 부르겠다는데. 연출자 맘이지. 나야 여기서 아주 중요한 배역이라 주장해 봐야 후하게 쳐도 변사(辯士) 정도인걸.
자기 딴에는 담백한 회고록이라는데, 내가 볼 때는 좀 싱거운 회고록 같긴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시간여행이 그랬듯, 그의 시간여행에서 내 역할은 늘 우편배달부야. 새삼 끼어들 일도 틈도 없기에, 편지 한 장 던지듯 그저 놓고 갈게.
"그의 편지가 왔어요. 좀 늦어질 수밖에 없는 편지요."
막걸리와 생두부
광주항쟁 직후의 대학이 다 그러했듯, 말 그대로 긴장에 찬 시절이었죠.
'광주 영령의 피를 먹고 태어난 전두환 파쇼정권은...' 예외 없이 이렇게 시작하는 화장실 낙서 투쟁이 이른바 운동권 전사들에게는 일상 속의 실천이었던 때입니다.
지금 새삼 돌이켜 보면 그깟 몇 줄 낙서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불과 2~30분 후에 가보면 그 낙서가 새 페인트로 감쪽같이 지워져 있던 기막힌 시절이기도 했고요.
서클이란 것이 있었고 저는 우리 서클뿐 아니라 옆 방 서클 회원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먹었습니다.
'서클'은 '축제'란 말과 함께 대략 1983년까지 쓰이던 이름이고, 이듬해부터 '동아리'와 '대동제'라는 말로 바뀌기 시작했죠. 하지만 제게는 서클이란 기억이 더 익숙하기에 당시 이름표를 따라 그냥 서클로 합니다.
솔직히... 세미나를 핑계 삼아 매일 술과 노래로 살았어요. 제 방도 옆 방도 춤추고 노래하는 서클이었거든요.
'졸업정원제'라는 것과 함께 대학생의 과외도 금지됐던 시절이었기에, 학생들은 가난했고 술집 인심도 덩달아 참 팍팍했습니다. 그래도 학생증으로 외상술도 먹고 학교 앞 여인숙에서 외상잠 잘 수 있었던 때이기도 하죠.
서클에는 유난히 가난한 지방 유학생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늘 시큼한 밀막걸리와 투박한 간장에 절인 생두부를 즐겨야 했고, 어쩌다 옆자리 아저씨들이 남기고 간 돼지갈비 몇 점이 특식이 되는... 그런 술자리들에 익숙했어요.
심술맞은 햇살
그날 밤도 우리는 술이 우리를 먹을 때까지 막걸릿잔을 비웠습니다.
자정을 넘기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주모에게 등을 떠밀린 젊은 취객들은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몇몇은 소리 높여 "한 잔 더!"를 외쳤지만, 그때까지 생존한 무리는 남아있는 돈은커녕 집에 갈 택시비조차 없는 뻔한 청춘들이었죠.
누군가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서 막걸리 몇 병을 집어 온 기억. 움직일 힘이 남아있는 몇몇이 다시 학교 잔디밭으로 향하는 모습을 쳐다보던 기억.
그런 장면들만 흐릿할 뿐, 저와 옆 방 서클의 친했던 친구 이렇게 버려진 둘은 목젖도 다리도 다 풀려버린 채 하릴없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우리를 잡아끌더군요.
무의식으로나마... 우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챙겨주는 친구의 손길에 감동하면서, 그 새벽 어디인가 '길'이 아닌 '방'에 몸을 눕혔고 잠깐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이내... 심술맞은 햇살,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아침을 맞았습니다.
화룡점정 콩자반
그런데... 오, 이럴 수가.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는 건 납작한 앉은뱅이 밥상이었어요.
전혀 술이 깨지 않은 뿌연 눈으로 보기에도 찰진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그야말로 산처럼 쌓아 올린 고봉밥 두 개. 솥단지만큼 큰 대접에는 정갈한 무우채가 듬성듬성 깔린 마~알간 무우국 두 개.
끝으로... 검은 콩자반 한 종지. 젓가락 따위는 생략하고 각각 수저 하나씩. 끝.
그리고 그 앞에는, 기다림에 지친 듯한 얼굴로 턱을 고인 채 우리를 쳐다보며 앉아 있는 여인 한 명.
'이... 이게 뭔 씬이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다그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의 그 여인은 옆 방 친구의 서클 동기였고, 그 밥상이 놓인 방은 그 동기의 학교 앞 자취방이었습니다.
어디 숙취뿐일까요. 빈속 폭음의 다음 날 아침이라면 늘 함께하는 속쓰림과 체기도 만만치 않은 몸으로, 한참을 멀뚱멀뚱 동기와 밥상을 쳐다보던 우리 둘은 결심이라도 한 듯... 아무 말 없이 동시에 그 밥을 퍼먹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그 동기 여학생의 서늘한 위엄에 눌린 채.
잊을 수 없는 아침밥상
요즘 동아리 사정은 잘 모르지만, 당시 서클에는 별다른 어록도 특이한 행동도 없이 묵묵히 늘 함께하는 회원이 있었어요. 오늘은 없나 싶으면 한쪽 어딘가에 꼭 있는.
그 여학생... 옆 서클과 자주 함께했지만, 저는 한 번도 말을 나누어 본 적 없었고 친구 또한 거의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빠른 속도로... 우리 둘이 늠름하게 산 같은 밥을 다 해치우고 수저를 내려놓자, "반찬이 영..." 처음으로 한마디 말과 함께 숭늉 대접을 내밀더군요.
여왕이 하사하신 사약이라도 받은 듯 벌컥벌컥 한 대접을 다 들이키고는, 으레 하던 일이라는 듯 "학교 가자~" 함께 크게 소리 지르며 그 방을 나섰습니다.
아마도 크게 소리친 한켠의 마음은, 이건... 뭐 산중 귀곡산장에서 해후한 견우직녀의 밥상도 아니고, 참 느낌이 묘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왜 묘했을까?
나중에 혼자 생각했는데, 그 여학생도 함께 먹었다면 좀 덜하지 않았을까 싶었을 뿐이었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게는, 몇 년에 한 번 정도 숙취로 속 쓰린 새벽이면 문득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아침밥상으로 남아 있답니다.
지금도 어쩌다가 빈속 폭음의 다음 날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산 같았던 쌀밥과 무우국의 뽀얀 하얀색, 그리고 화룡점정과도 같았던 콩자반의 검은색이 떠오르곤 하는 거죠.
그 전에도 그 뒤로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던 아침밥상 그 자태.
하지만 그날. 저녁까지 배가 꺼지지 않아 정말 혼났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