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장례식, 38년 만의 82 번개

「그의 나홀로 하루」 네 번째

by 꼭두

생전장례식, 38년 만의 82 번개

「그의 나홀로 하루」 네 번째


생전장례식의 아쉬움


안녕? 약속된 연재일도 아닌데 갑자기 불려 나온 꼭두야.


어제 그가 대학 서클 동기들을 만났다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대. 그동안의 글들과는 다르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오늘의 편지' 같은 글이기에, '그들만의 리그'에 관심 없는 분은 앱이든지 웹이든지 그냥 닫아버려도 될 것 같아.


"그렇게 좋았어?"


웅. 전혀 생각도 못 해봤던 이벤트라 마치 생일 파티라도 한 기분이었달까?


"원래 당신 소망이 생전장례식 아니었나?"


그랬지. 그랬던 이유도 말해줄까?


울 엄니가 최근 몇 년 늘 걱정하던 게 있었어.


"너 그렇게 세상과 담쌓은 채 사람들과 연 끊고 살다간 큰일 난다. 이리 산 지가 벌써 한 20년 됐지? 그러다 네 어미 빈소는 물론이고 네 빈소마저 썰렁할걸?"


"원래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감. 그려? 안 그려? 엄니."


겉으로는 별소리 다 한다는 듯 그리 말했지만, 속으론 신경 쓰이더라고. 그렇담 엄니 빈소는 엄니 두 딸한테 떠넘기기로 하고, 나는... 음. 이건 부고장조차 보낼 수 없겠구나 싶더군.


타개책으로 '부고자동발송시스템'을 개발해야겠다 싶었지. 본인 유고 시, 부고 보내 줄 사람도 없는 독거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그런데, IT법인 창업과 경영 25년 경력이 부끄럽게 채 완성되기도 전에 내게 비슷한 일이 발생한 꼴이 됐잖아?


"게다가 넌 확진 판정해 준 의사한테 마치 미리 답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처럼 즉시 치료를 안 받겠다 한 양반이잖아? 차라리 잘됐네. 미리 알게 됐으니 직접 미리 말하면 되겠네."


야, 의사가 무당이냐? 여명 말해주는 거지. 택일도 해주냐? 더 문제는 누구에게도 그러기가 싫더라고.


그냥 수십 년 전 수려했던 청년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고 싶더라고. 뭔 즐거운 소식이라고 예고방송을 하며, 그러다가 혹시라도 초라하게 아파하며 떠나가는 모습 보여주는 일 생길까 아찔하더군.


차라리 썰렁한 빈소를 감수하고 말자 했는데... 문득, 한때 유행하는 것 같더니 요즘은 뜸해진 '생전장례식' 생각이 나더라. 역시 한국 사람들 대단한 양은 냄비야. 그게 뭐든 순식간에 유행시키고 소리 없이 잊어버리는 놀라운 빨리빨리 문화.


기억나는 몇 가지의 조건과 규칙이... 첫째, 갈 날 받아놓은 사람만이 초대 가능하다. 둘째, 엄근진 분위기로 육개장 한 그릇 먹고 조용히 시간 보내다 가는 게 아니라 웃고 떠들고 춤추는 잔치다.


셋째, 따라서 드레스코드도 천편일률의 거무칙칙 조문복이 아니라 알록달록 밝고 이쁜 옷을 입는다. 넷째, 아직 한국에서는 리얼 빈소에도 아예 안 들를 수는 없으니, 조의금은 그때 내라 하고, 대신 모든 비용은 예비 고인이자 상주 본인인 생전 장례파티 초대자가 부담한다. 뭐 그런 것들이지.


늘 하고 싶은 거였는데 그걸 못 하게 된다는 게 오히려 좀 아쉽긴 하더라.


38년 만의 82 번개


암튼 그렇게 내 결정을 잘 실행하고 있었는데, 딱 한 명한텐 말할 수밖에 없었어. 아들의 생모.


그동안 유일 보호자였던 아빠 부재 상황을 해결해달라 부탁해야 했기에. 사정이 이러하니 아들 살 곳 찾아봐 달라 했지. 누구에게도 미리 알리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마치 이순신처럼.


그러다가 수개월 후 때가 돼서, 확진 후 처음으로 119를 타고 그 병원에 다시 가게 됐는데 그때 두 딸과 형제들이 알게 됐네. 근데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건지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됐고, 그제야 서둘러 내 흔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어.


다른 건 다 찢거나 태웠는데 대학 때 내 마지막 공연이었던 '태백산맥' 대본이 있더라. 신촌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새벽마다 손으로 꼭꼭 눌러쓴 대(大) 극작가의 육필 쪽대본. 하하. 그냥 없애자니 영 아깝더라고? 당시 그 공연을 참모처럼 함께 했던 후배에게 뜬금없는 연락을 했지.


"야, 내게 '그' 대본이 있더라. 이거 네가 가져라. 택배로 보낼 테니 주소 불러."


그런데 오랜만에 밥이라도 같이 먹고 내 얼굴 보면서 받아 가겠대. 부득부득.


만나서 밥 먹고 전해주고 일어서려는데 꼬치꼬치 물어. "건강하시죠? 뭔 일 없죠?"를 반복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음 몹시 유능한 고등계 형사 했을 놈 같으니라고. 나중에 말하길 영 이상하더래. 결국 다 불었어. 난 허술한 독립투사라 심문에 약하거든. 이어질 고문이 무서운 건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이순신 어록을 또 구사했지만, 그 후배가 또 다른 후배 두 명한테 말하고, 그 두 명 중 하나가 내 동기 한 명한테 말하고, 알게 된 동기가 또 다른 동기 두 명한테 말하고... 거기서 그칠 줄 알았지.


그런데 점입가경이라더니 며칠 전, 또 그 두 명 중 하나가 나머지 동기들에게 아예 번개를 때린 거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말이 폰을 타고 십리 정도는 갔구나."


그렇게 나를 포함해서 대학 시절 서클 동기 아홉 명이 어제 모였단다. 뭔가 면구스러운 나 황송하게도 내 유폐지인 귀곡산장 바로 앞 삼겹살집에서.


번개를 때린 친구는, 몇 달 전 내가 불쑥 "얼굴 한번 보고 싶구나. 밥 사줄게 먹어줄래?"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다른 동기들도 얼굴 한번은 보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채고 자리를 만들어 준 거야.


숫자로는 불과 아홉 명이지만 모두 입을 모아 한 말이 있어.


"야, 우리가 대학 시절 이후 이렇게 완전체로 모인 게 처음이야. 심지어 자진귀양 독거노인이라는 전경철마저 나타났잖아?"


그렇더라. 문득 헤아려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얼굴 본 친구를 기준으로 무려 38년 만이야. 사실 대부분이 그 세월만큼 이전에 마지막 본 얼굴들. 그러니 38년 만의 번개 맞아. 한 세대를 넘긴 세월이지. 명실상부한 '해후'야.


재밌는 게 말야. 38년 전 얼굴이 모두 그대로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물론 머리색이 여전히 검은 놈은 거의 없고, 소갈머리 훤한 놈까지 있지만 그래. 안 겪어본 분들도 함 겪어보면 뭔 말인지 실감할 수 있을 거야.


대화 수준도 똑같아. 아니지. 오히려 품질은 좀 더 떨어졌어. 별 시덥지 않은 소리 한마디에도 다들 박장대소를 아끼지 않아. 편하고 재밌지. 조금도 점잖지 않은 표현으로 과거를 마구잡이로 소환해도 그저 좋대. 시시껄렁한 놈들.


우리 청춘 때 자주 함께 놀았던 곳이지만 까맣게 잊었던 이름을 누군가 떠올려 말만 꺼내도 깔깔. "야, 너 여전히 이쁘구나. 넌 왜 이리 피부가 좋냐, 야." '내게도 똑같이 말해줘.' 하는 표정으로 서로 뻔한 덕담을 해도 낄낄. 어휴~ 변한 거 없는 수준들 하고는.


뭔 말을 해도 잔뜩 공감해주고 크게 웃어주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놈들.


그런데 말이지. '미혼은 외롭고 기혼은 괴롭다.'라는 명언이 있잖아. 맞는 말 같아.


진짜로 성별 구분 없이 외모 탁월한 것들 공통점을 보니, 부부의 알콩달콩과는 반비례하는 것 같더라고. 알콩이든 달콩이든간에 그걸 위한 고단함 때문인지 그렇지 않은 것들, 그니까 거의 남처럼 사는 것들이 외피는 훨씬 뛰어나더라고.


아예 혼인의 경력을 올리지 않은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걔는 진짜 대학 때와 똑같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더라니까.


"부럽다. 난 모르는 세상 이야기네. 그러니 내가 끼어들 틈도 없고."


2_07_2_04_6.jpg 38년 전 그와 친구들


하는 짓마다 온통 고마운 친구들


미리 걱정되는 게 어색함이나 엄근진이라 질문 예방 차원에서 그 번개 주최자에게 꼭두의 브런치 페이지 주소를 참석 예상자들에게 미리 보내주라 했었어. '모든 상황 이해는 이곳의 글들로 대신하시오.' 그런 용도로. 브런치, 제법 유용한 곳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


그럼에도 묻는 놈 꼭 있지.


"요즘 뭐하냐?"


"무언가 기록하고 싶었어. '종이책'으로 남기기를 바랬고, 그렇게 해준다는 곳 검색하니 브런치라는 게 있더라. 그곳에 틈나는 대로 글 쓰고 있어.


그런데 그러려면 유료멤버십을 해야 하나 보던데, 난 '작가'라도 말도 '독자'라는 단어도 여전히 듣기만 해도 닭살 돋아 죽겠는 마당에, 어찌 감히 '내 글을 보려면 돈을 내시오.' 하겠냐? 그럴 일 없다고 이미 글을 통해 밝혔어. 난 정치인이 아니니 공약은 지켜야지."


"유료멤버십이 종이책을 위한 유일한 로드맵인 건 맞아?"


뭔가 다른 우회로도 있긴 한가 보더라. 여전히 브런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지금껏 파악해 본 걸로는 그래. 암튼 그 친구에게 덧붙여 말했어.


"그 결과, 여기 브런치 자본주의가 글 노출 자체를 잘 안 시켜줘서 흥행 소외의 감옥에 갇혀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나 본데, 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한 올해부터 더 그렇게 된듯 해. 그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아무래도 종이책은 포기해야 할까보다. 뭐 내 글솜씨가 부족한갑다 해야지."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말하길 자기가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다면서 "얘들아, 얘 글 쓴다는 거 우리가 종이책으로 만들어주자." 하더라. 글쎄... 그것 역시나 면구스럽기도 하고, 어제 말한 것처럼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어.


무늬만 서울인 이 변방 구석까지 멀리 일산에서 파주에서 횡성에서 마산에서 와 준 친구들아. 너무 고마웠다. '번개를 호출한다고 기꺼이들 올까? 38년이나 지났는데.' 했던 내 마음이 무색하게도, 소식 듣자마자 한걸음에 와준 친구들아. 대단하구려.


"내게 남은 인기와 인심이 아직 있었구나?" 했더니 "우리 모이면 늘 네 얘기 많이 했어." 답해준 친구들아. 그동안의 미안함과 고마움에 너무 행복한 하루였어. 이런 상투적인 인사말 외에 더 좋은 감사의 단어를 찾을 수가 없구나.


'견우직녀'의 해후도 우리만큼 호들갑스럽진 않았을 거야, 아마.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쁜 카페 가서 따뜻한 커피와 케익 먹어보는 거라 했더니, 즉시 데려가서 그곳의 어지간한 케익 모두 사 먹여준 친구들아, 고마워.


어제는 말 안 했지만, 우린 어제 내 '생전장례식' 한 거고, 너희 모두는 그 파티의 VIP 주인공들이었어. 내 브런치북 회고록 「부치지 못한 편지」로 예약해 두었던 글 하나를 소진시켜 준 친구들아, 또또 고마워.


생전장례식의 규칙을 어기고 돈도 내 대신 다 내준 친구들아, 또또또 고마워.


어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내친김에 훗날 빈소에도 아주 잠깐씩만 얼굴 보여주면 말 그대로 '백골난망(白骨難忘)' 할게. 내 빈소 너무 쓸쓸맞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아직 남아있을 줄 나도 미처 몰랐다, 야.


미리 말한다. 또또또또 고마워.


"다들 고마워, 멋진 친구들."


2_07_2_04_7.jpg
2_07_2_04_8.jpg 38년 전 그와 친구들
2_07_2_04_5.jpg 38년 후 그와 친구들


복 받을겨, 친구들아


참, 끝으로 친구들한테 덧붙여 전하는 아쉬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봐.


어제 귀곡산장으로 돌아오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제 다 이루었노라.'였거든? 근데 놓친 게 있더라. 우리 모인 곳 바로 앞이 사진관이었어. 폰찍 말고 누구 전문가 하나 불러서 사진 한 장 제대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에 발바닥이 계속 간질간질하네.


우리가 또 만날 일은 없겠지? 어제가 되기까지 38년이 걸렸는데, 그러려면 또 38년 지나야 하는 거지?


문득 스치는 생각이 이 귀곡산장 수년 살 동안 여기 와본 내 피붙이 아닌 사람이, 말 그대로 게스트가 딱 한 명 있었거든? 장본인은 어제 아홉 명 중 한 명. 어제 아홉 명이 내 귀곡산장에 또 모일 일은 없겠지?


마지막 공주 종가 김장을 한 지 얼마 안 지났어. 내 김치 외엔 먹지 않는 희한한 아들놈 때문에. 그거 우리 아홉이 다 같이 먹으면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데 욕심이 과하지?


입맛만 다시기로 하고. 며칠 남지 않은 2025년, 우리 다 같이 송구영신(送舊迎新)하자.


2026년에도 복 까득 받을겨, 친구들아.


2_07_2_04_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