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勝戰)의 북소리

이별 기록 네 번째

by 꼭두

승전(勝戰)의 북소리

이별 기록 네 번째


전운(戰雲)이 무르익는 검진실


3층으로 진격해 올라갑니다.


파죽지세로 보이지만, 아들의 걸음이 눈에 띄게 엉거주춤해지네요.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전투는 세 번입니다.


첫 현장은 3층 검진실에서 벌어질 채혈 전투.


시도부터 저항하는 탓에, 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전투. 이것 때문에 지난 일주일 동안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 헤맸던 것이죠. 마치 드라큘라처럼.


그다음이 PCR 전투. 굵고 긴 면봉을 콧속 깊숙이 찔러 넣어 목까지 도착시키며 검체를 채취하는 전투.


아들의 저항은 채혈보다 몇 배 이상이기에, 코로나가 기습 창궐하던 때에도 결국 자가진단키트로 버틸 수밖에 없었죠. 이번 건강진단에 추가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결국 시설 입소 자체를 포기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안겨줬던 최대의 고비.


만약, 두 전투 모두를 승리로 마친다면 마무리는 다시 2층에서 X-RAY 촬영.


시설 간호과장님이 제게 묻습니다.


"아드님이 제일 좋아하는 과자가 뭐죠?"


"초코칩쿠키요. 우리 아들 최고의 강화제."


"사 오세요."


간결한 지시.


이런 걸, 자폐아의 교육이나 치료 현장에서 행동 수정 등에 사용되는 '강화제(強化劑)'라고 합니다. 문제 행동을 멈추거나 이쁜 짓을 할 때 보상으로 주는 모든 것. 먹거리뿐 아니라 격려와 칭찬 한마디도 훌륭한 강화제죠.


자폐아만을 대상으로 한 단어는 아니고 교육 분야에서 두루 쓰이는 말입니다만, 유아기에 시작되어 성년이 된 지금까지 제가 아들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꿈에선들 알았을까요.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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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초여삼추(一秒如三秋)


즉시, 아이 엄마가 미리 준비해 온 초코칩쿠키를 잔뜩 꺼냅니다.


쿠키를 받아 든 간호과장님의 단호한 지시가 이어집니다.


"이제, 부모 두 분은 없어지세요."


"네?"


이미 낌새를 제대로 눈치챈 아들이 제게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면서 낮게 말합니다.


"아드님 시야에서 사라지셔야 합니다. 절대 눈에 띄지 않게 계시다 제가 부르면 오세요."


부모의 존재는 오히려 장애물입니다.


아이 엄마는 아예 밖으로 나갔고, 저는 복도 끝 비상구 계단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검진실의 모든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검진실 입구 맞은편 검은 벽으로 실루엣이 얼핏 얼핏 비치는 곳.


부드럽게 시작하는 듯했지만, 순식간에 아들을 제압하는 백전노장의 지휘관 간호과장님.


시설의 선생님 한 분이 뒤에서 아들을 꽉 안고, 양옆에서도 선생님 한 분씩 아들을 잡았어요.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춰본 듯한 병원의 간호사도 간호과장 지휘 아래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해치우네요.


PCR도 그렇지만, 특히 혈액 채취 중에는 아들이 절대 움직여선 안 됩니다.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라 했던가요? 제게는 지금 1초 1초가 그렇습니다. 듣고 있기 힘든 아들의 외침 속, 초침은 아주 더디게 지나가네요. 순간 벽에 비치는 실루엣이 전투라기보단 흡사 물고문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당하고 있는.


"아주 잘했어요. 이제 하나만 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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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을 기다린 26분


'어? 피를 뽑았다는 건가?' 잠시 후, 훨씬 더 큰 소리와 몸짓이 이어집니다. 그러기를 한참 만에 지휘관의 힘찬 소리가 들리네요.


"아버님? 나오세요. 잘 끝났어요."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상황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 멍한 표정의 아빠에게 한마디 더.


"우리는 다시 2층 방사선실로 갑니다. 그리로 오세요."


아빠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이, 다시 UN군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에 오릅니다. 아빠는 검진실의 간호사와 의사에게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소리친 후, 서둘러 계단으로 따라가고요.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병원이 순식간에 아들의 아우성으로 뒤집혔단 게 실감 납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앞서간 아들과 저를 쳐다보네요. '이 사람들이었군' 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비명을 지른 건 아들 혼자이기에 소리로만 체감한 다른 층에서는, 딱 독립투사의 고문 현장음인 거죠. 전쟁터의 마찰음이 아니고요.


전쟁터라기엔 너무 깔끔하고 넓은 병원. 그나마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아들이 나옵니다.


"다 끝났어요. 아주 잘."


본능적으로 시계를 봅니다. 2시 6분.


일일여삼추도 일초여삼추도 아니었어요. 260분으로 느꼈지만, 불과 26분 걸렸습니다. 26년을 기다린 아들의 병원 건강진단에는 단 26분이 필요했어요.


일분여십년(一分如十年).


심장 가득 울려 퍼지는 승전고(勝戰鼓)


아직 온몸 가득 남아있는 아우라를 내뿜으며 간호과장님이 밖으로 나가십니다. 따라 나가는 선생님 팔뚝에 핏방울이 보입니다. 다음날 보게 됐지만, 선생님 양팔에 시퍼런 멍 자국도 선명하더군요. 막강 아군도 피해가 있었던 거죠.


'어이없이 당했어.' 하는 표정의 아들을 데리고 따라 나갑니다. 아들을 차에 태워놓고 간호과장님을 찾는데... 안 보여요. 멀리서 엄청나게 밝은 빛만 보일 뿐.


누구는 머리 위로 형광등 백 개를 켜고 다닌다더니, 간호과장님은 등 뒤에 아예 조명탑을 세우고 다니시네요.


너무 밝아서 얼굴은 잘 안 보이고 형체만 보이는데, '마더 테레사' 아니면 '성모 마리아'입니다.


"간호과장님, 저는 정말 성공할 줄 몰랐어요. 만약 누군가 미리 확률을 물어봤다면 전 실패 예상 90%라고 답했을 겁니다."


옆에 계신 선생님께도 저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저는 포기할 뻔했다니까요. 어찌나 막막하던지요."


듣자마자 한마디하시는 테레사님.


"우리가 한다고 진작 말해드릴 걸 그랬지? 안 그래? 이과장님."


"제 아들이 병원 건강검진에 성공하다니...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훗. 제가 늘 하는 일인데요. 뭐."


아아, 거만합니다. 하지만 부족합니다. 조금만 더, 아니 한참 더 거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해냈으니, 시설의 첫 밤도 무사히 넘길 수 있겠죠? 저 기대됩니다."


선생님도 질세라 위대함에 못을 박습니다.


"오늘은 간호과장님이 해내셨지만, 이제부턴 우리 선생님들 몫이죠. 걱정하지 마십쇼, 아버님. 그럼, 내일 만나요."


그리고는 바람처럼 떠나가십니다.


수녀... 아니, 성녀 마더 테레사님과 세 명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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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5일.


시설 입소 전야에 거둔 빛나는 승리의 날입니다.


둥! 둥! 두둥! 두둥!


승전의 북소리가 아빠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네요.


비록 적군이지만, 계백의 장한 아들에게 최고의 강화제를 선물할 순서입니다.


"아들! 고기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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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