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기록 다섯 번째
아들의 인생밥상, '돼지갈비'
첫 김포 출정 때, 시설에 순순히 입장하고, 무사히 면담을 마쳐준 아들이 고마웠죠.
나오자마자 좋아 보이는 고깃집을 찾아, 아들에게 갈비를 양껏 구워줬어요. 왕갈비 3인분을 순식간에 감추고도 모자라는지, 아빠가 따로 시킨 뚝배기불고기와 엄마가 먹으려 한 냉면까지 모조리 빼앗아 해치우고 나서야 허리를 펴던 아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들의 '인생밥상'은 여전히 갈비입니다. 소갈비가 아닙니다. 맛깔난 양념에 살짝 재운 돼지갈비.
오늘은 그날과 비교 불가능한 '장한' 날입니다. 자그마치 26년 만에 병원에서 첫 건강진단을 해낸 아들.
아이 엄마도 같은 생각이군요.
"그곳에 또 가야겠죠?"
"아니. 오늘은 이놈이 제일 좋아하는 우리 집 근처 '인생갈빗집' 가려고. 내일 가면 또 언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명일동의 유서 깊은 먹자골목에서 30년 된 노포입니다. 아들이 유독 좋아하는 곳.
둘이 입장했고, 잔뜩 시켰습니다. 3인분 먹어 치우는 기세를 쫓아 2인분 추가합니다. 활활 타는 숯불인데도 그 속도를 감당하기 힘드네요.
원래 셀프로 굽는 곳인데, 놀란 직원이 한걸음에 달려와 도와줍니다. 고깃집에 단둘이 가면 늘 그렇듯, 정신없이 아들 고기만 챙기는 아빠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네요.
오늘은 마음껏 먹어도 되는 날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날입니다.
'장해서'뿐 아니라 '마지막'일지도 모르기에.
곰뚱의 '나홀로 패션쇼'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든 아들.
김포의 노독과 포만감 탓이겠지만, 오늘 새벽이 다 돼 불과 세 시간 자고 일어나서 겪어야 했던 전투적 강행군이었죠.
이 몸 상태면 최소 여섯 시간 이상은 자야 할 아들이 또 세 시간 만에 몸을 일으킵니다. 한동안 멀뚱거리더니, 갑자기 옷을 갈아입기 시작합니다. 속옷부터 겉옷까지 제대로 갗춰서. 이 옷 저 옷 혼자 풀세트로 코디하며 마구 입고 벗기.
혹시 '심즈'라는 게임을 아시는 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컴에서는 '심즈4', 폰에서는 '심즈프리플레이'라고 부르는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독거노인답게 별걸 다 알죠?
노인이 즐기기엔 다소 어색하지만, 스위트홈으로 진짜 산장도 만들어보고, 그곳에 살 '심' 패밀리를 키워내는 게임이에요. 반려동물도 반려식물도 키우게 하고, 옷도 다채롭게 쇼핑해 갈아입히면서.
제가 '곰뚱의 나홀로 패션쇼'라 이름 붙인 아들의 이 놀이는 심즈의 현실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언제부턴가 자기 혼자 시작한 패션쇼 놀이.
대부분의 자폐아에게 큰 문제는 놀이문화의 부재입니다.
소통 거부를 넘어 낯선 것들에 대한 경계심 탓에 마땅히 놀거리가 없다는 거. 결국 본능적인 '먹기 놀이'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집에서 돌보는 자폐아들에게 비만이 많아지는 사연이기도 합니다.
부모들에겐 큰 숙제죠. 장기 숙제는 놀이 개발이지만, 당장은 자식의 '먹기 놀이'에 맞서는 부모의 '막기 투쟁'이 꽤 힘들거든요.
급기야 20년간 양팔에 새겨 쌓인 부상 흔적으로 '마약쟁이' 의심받아야 하는 저처럼.
그 어떤 냉장고 잠금장치도 아들이 부숴내기 시작한 날부터, 온갖 먹거리를 집 구석구석에 감추고 살지만 늘 귀신같이 보물찾기에 성공하는 아들.
그 끝없는 줄다리기.
PX에 이어 패션쇼 무대가 된 '귀곡산장'
우리 때는 '군대 가면 돌아이 된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있었습니다.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건 주로 꼰대들이 하는 무책임한 말이고요. 당시 발음으로 '돌아이'도 아니고 '또라이'입니다. 전 그 말이 참 무서웠어요. 몸이 힘들 건 그다음 걱정이고요.
그때 휴가 나온 선배나 친구를 보면 젊음의 총기가 다 사라져 보이고, '짬살' 혹은 '짠살'이라고 부르던 통통함만 양 볼에 잔뜩 붙어 있더라고요.
그 모습으로 부대에서 축구차는 이야기나 해대니 듣는 사람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요. 왜 그들의 군대에서는 '공'을 차지 않고 '축구'를 찰까요? 정말 돌아이가 됐나?
다행스럽게도, 병장 만기전역을 한 제가 직접 겪어보니, 전혀 그렇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보던 풍경. 매일 축구를 찰 수는 없으니, 놀이문화가 마땅치 않은 젊은 병사들이 즐기는 게 'PX 놀이'더군요. 병장 월급 고작 5,100원 받는 처지면서, 매일 틈만 나면 PX 가서 먹고 또 먹고. 특히 그놈의 양념닭발.
전 쉼 없이 먹어대는 아들을 보면서, 새삼 PX 놀이에 몰두하며 양 볼에 발그레한 짠살을 키워나가던 젊은 군인들 모습이 겹쳐 떠올라 진저리를 치곤 했다죠.
아들의 비만 관리를 위해서라도 20년 넘게 아들의 전담 의사와 함께 머리 싸매고 놀이 개발에 몰두했지만, 실패만 거듭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놈이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내더라고요. '셀프 패션쇼'.
쫓아다니며 옷 정리를 해야 하는 제 일거리가 늘었지만, 아주 바람직한 놀이였어요. 시키지 않아도 아들 '심'이 스스로 하는 옷 갈아입기.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 '심'.
시작된 '곰뚱의 만찬'
아들의 패션쇼가 오늘 유독 심하긴 합니다.
아들과 함께 자는 방에 한 개. 엄니가 쓰시던 안방에 또 한 개. 우리 집에는 똑같은 아홉 자 옷장이 두 개 있습니다. 두 '장롱'을 채우고 있는 80% 이상이 아들 옷과 살림입니다.
그곳의 모든 옷을 다 입어볼 기세입니다. 내일 시설에 가져갈 겨울옷을 거의 이삿짐 수준으로 묶어놓고도 사계절 옷이 잔뜩한데, 한 벌도 거르지 않고 갈아입네요.
마치 언제 또 이 짓을 해보겠냐는 듯.
옷 입기에 지쳤나 봐요. 먹을 걸 찾기 시작합니다. 짧은 겨울해도 저문 지 오래네요.
원 없이 먹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숨겨두었던 식재료도 모두 꺼냈어요. 혹시 압니까? 이놈이 집에서 먹게 되는 마지막 밥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곰뚱의 만찬' 시작합니다.
냉장고 속 깊게 감춰둔 물만두가 제법 많군요. 떡국떡도 있고요. 가볍게 떡만둣국으로 시작합니다. 다시마, 국물멸치, 마른새우, 파뿌리 넣고 육수도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떡은 다 넣었고, 만두는 남겼습니다. 이따 기름 넉넉히 둘러 군만두 만들어 줄 겁니다. 아들이 참 좋아하는 디저트거든요.
애피타이저로 준비한 떡만둣국 2인분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제 아들의 인생찌개인 돼지김치찌개 순서입니다. 오늘 만찬의 메인 요리죠.
반드시 우리 종가 김장김치로 해야 합니다. 미식가죠. 저는 아들 살 곳 찾는 이번 전쟁을 마지막이라 결심하면서 장기전을 각오했었습니다. 이를 준비하는 전투식량으로, 2주 전 마지막 공주 종가 김장을 담궈 뒀었죠.
찌개에 넣긴 아직 이른 김장김치입니다만, 양념과 국물을 잔뜩 부어주고 이파리로 골라 김치도 가득 채웠습니다. 삼겹살과 앞다리 한 근씩만 남기고 돼지고기도 남김없이 넣었고요.
더 이상의 재료도 양념도 필요 없어요. 이제 아들이 참아주는 한 오래 뭉근하게 끓여만 내면 됩니다. 아들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시원하고 칼칼한 돼지김치찌개가 될 겁니다.
어쩌면 '최후의 만찬'
만둣국을 해치운 아들이 또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저는 두 번째 애피타이저를 준비합니다.
한 근 남겨놓은 삼겹살은 이따 만찬 2부에 제육두루치기로 탄생할 거고, 지금은 앞다리 한 근을 다져 튀김가루와 부침가루를 반씩 섞은 반죽에 넣고 잘 갭니다. 여기에도 빠지지 않는 건 김치 양념과 국물이지만, 액젓을 조금 추가합니다.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서.
새 밥도 안쳤습니다. 햅쌀로.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이미 자리 잡은 아들 앞에 바삭하게 부쳐낸 돼지김치전을 차려줍니다. 이어서 갓 지은 밥과 함께 오늘 만찬의 주인공, 푸짐한 돼지김치찌개가 등장합니다.
올 겨울 김장이 왜 아들의 전투식량이었는지 실감이 좀 오시죠? 게다가 제 아들 희한한 게 다른 곳 김치는 전혀 안 먹거든요. 하하.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들이 좋아 죽어요. 아빠의 평생 육아를 지탱하는 '하루 1분의 행복'은 곤히 잠든 모습, 그리고 저 천진난만한 웃음과 보조개죠. 이때만큼은 어느 집 아이 부럽지 않게 세상 이쁘거든요. '까르르~' 소리도 일품이고요.
아직 멀었습니다. 남겨둘 이유가 없는 식재료도 잔뜩입니다. 겨울의 밤은 길고요.
아들이 좋아하는 순서대로, 쟁여놓은 것들 다 접시로 만들어냅니다. 옥수수를 찌고, 고구마도 찝니다. 군만두도 튀겨내고요. 디저트가 끝났습니다.
자정이 넘었군요. 이제 만찬 2부입니다.
2부의 애피타이저는 라면부터 시작합니다. 메인은 김치부대찌개입니다. 쟁여둔 어묵도 다 썰고, 아들이 눈에 뜨이기만 하면 해치우는 스팸과 비엔나소세지도 다 때려 넣어 부대찌개도 끓입니다. 김치와 국물 빠질 수 없죠.
반찬은 돼지두루치기. 온갖 채소도 남길 필요 없습니다. 양파, 당근, 감자 가림 없이 썰어 넣고 고춧가루 듬뿍 뿌려 달콤 칼칼하게 볶았습니다.
디저트도 있어요. 버터와 땅콩잼을 바른 모닝빵이 수시로 제공됩니다.
길고 긴 하루, '이별 전야'
이걸 하룻밤에 다 먹냐고요? 여기는 살찐 피터 팬의 네버랜드입니다. 원래 아들의 무한먹방은 제가 저지투쟁을 하지 않는 한 길어봐야 한 시간 간격입니다.
오늘 좀 어리둥절하긴 할 겁니다. 저지투쟁은커녕 미리 알아서 척척 차려주는 건, 아마 살면서 첫 경험일 테니까요.
옷 갈아입고 먹어 치우고. 패션쇼 한 번 마치고 나면 또 세팅돼 있는 귀곡산장 심야뷔페. 벌써 몇 바퀴째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최후의 만찬'을 빙자한 아빠의 한풀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뇨식과 저염식에 이어 항암식 명령서를 받아 들면서 '병사 전 아사'에 직면한 아빠의 대리 만족이랄까요?
아들이 안 자요. 하하.
동이 터올 무렵까지, 피터 팬의 패션쇼와 귀곡뷔페 무한먹방은 계속됐고, 신새벽이 밝아 올 즈음이 돼서야 결국 아들이 항복했습니다. 안 그래도 지난밤부터 지금까지 불과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던 아들. 마침내 기절했어요. 먹다가 지쳐서.
아빠가 이겼어요. 통쾌합니다. 먹거리를 놓고 벌여야 했던 아들과 아빠의 26년 전쟁 피날레도 아빠의 승리입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혹시나 '마지막 패션쇼', 어쩌면 '최후의 만찬'인 걸요.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진짜 그럴 줄 알았으니까요.
2025년 12월 15일. 이제 몇 시간 후면 귀곡산장을 떠나 새집으로 떠나야 할 아들. 정말 길고 길었던 하루가 끝났습니다.
예상과 달리 전쟁은 일찍 끝났고, 26년 만에 처음으로 기약 없이 아빠 품을 떠나는 날.
그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