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기록 여섯 번째
두려운 아들의 '첫 새벽'
어제는 세 시간, 오늘도 세 시간. 이틀 동안 짧은 잠만 자는 아들과 함께 세 번째 김포행입니다.
그동안, 마치 침묵의 약속처럼 아이 엄마와 제가 꺼내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입소 첫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게 간절함이든 두려움이든 관계없이.
비슷한 게 딱 한 번 있었네요. 김포 시설에서의 첫 면담 때, 의외로 잘 마쳐 준 아들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제가 그랬죠.
"아, 정말 입장부터 못 할까, 얼마나 걱정했는데. 잘 마쳤다. 그치?"
아이 엄마가 단칼에 제압하더군요.
"영월에서도 입소까지는 아주 잘했어요."
강원도 영월의 시설에서 쫓겨나며 새겨진 상처가 생생한 겁니다. 더구나 그때 저는 응급 입원으로 북망산 언저리를 혼자 헤매는 중이었죠.
긴박한 심정으로 기적처럼 입소를 시켰지만, 새벽 2시에 긴급 연락을 받고는 다시 그 강원도 산속을 찾아가 아들을 데려오는, 무박 2일의 전투를 온전히 혼자 겪으며 생겨난 트라우마가 깊은 거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때는 건강진단을 일단 입소 후로 미룰 수 있었단 거.
그때로부터 5개월 만에 다시 마주한 입소 전투죠. 강원 영월에서 경기 김포로 무대를 옮겨.
첫 밤,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이 낯선 곳에서 맞이할 첫 새벽에 대한 두려움.
오늘도 김포 가는 차 속은 조용합니다.
아들의 '수석 표창장' 수여식
어제의 건강검진 전투 현장을 들르는 게 먼저입니다.
24시간 만에 다시 만난 원무 데스크.
"상장 찾으러 왔습니다."
"여기요. 수석이네요."
시설의 중증 장애인 전담병원답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뭔 뜻인지 찰떡같이 알아듣네요. 덤으로, 직원 눈에도 어제 이곳을 소란스레 뒤집어놓은 제 아들의 모습이 생생한 거죠. 지금 제 옆에 함께 있습니다.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혈액이든 코로나든 모든 검사 항목에 '이상 없음'이 선명하게 찍힌 완벽한 표창장. 이걸 금박 액자로 만들어 귀곡산장 한복판에 걸어 놓아야 할 텐데, 시설에 원본을 제출해야 한다는 게 원통할 따름입니다.
어제 승전의 감격이 다시 차오르고, 상장까지 받고 나니 흥이 오른 아빠가 침묵의 약속을 처음으로 깼습니다.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히 오늘 밤을 버텨줄 확률은 50% 아래라 답할 수밖에 없겠지. 그보다 훨 아래라고 해도 할 말 없고. 하지만 말야. 왠지 난 이번엔 느낌이 좋아. 알지? 최근 자라나는 내 귀신같은 예지력."
아빠가 하는 말이 예지인지 희망인지, 아무 응답 없는 아이 엄마의 침묵은 동감인지 초조인지 잘 구분이 안 됩니다.
가까운 곳 일산에 친구가 있어요. 여기는 자기 나와바리라면서 오늘 꼭 함께 밥을 먹고 가라 하더니, 확인 전화가 옵니다.
"그래, 고맙게 먹을게. 메뉴? 암거나 골라. 오늘만큼은 교수의 오더 따위 잊을란다. 근데 아들하고 어떻게, 얼마 동안 이별을 하게 될지 전혀 몰라. 암튼 마치면 연락할게."
어느새 시설 정문을 지납니다. 가슴이 콩닥콩닥합니다.
순식간에 겪은 '생이별'
명실상부한 이삿짐입니다.
담요, 이불, 베개. 모두 겨울용이기에 이것만도 한 보따리. 그리고 속옷부터 겉옷, 양말에서 잠옷, 재킷과 패딩 역시 겨울용으로 또 한 보따리입니다.
전동 칫솔과 면도기 포함 대용량 세면용품도 따로 한 짐이고, 각종 서류에 복용약과 처방전. 초코칩쿠키도 잔뜩 따로 챙겼습니다.
주기 아까운 게 딱 하나 있습니다. 건강진단서.
선생님들께 이삿짐을 건네는 손이 덜덜 떨립니다. 아산병원에서 제 주 종목인 소화기내과 외에 협진 종목이 '심장내과'입니다. 제게 '부정맥'이 있거든요. 맥이 가쁘게 뛰었다가 멈췄다가 하네요.
갑자기 아들이 소변을 터트리더니 괴성을 지르며 제 품을 향해 달려듭니다. 발달연령 3세의 피터 팬이 이별을 체감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새로 배정됐다는 담임선생님이 아들을 세게 안습니다. 어제 병원에서도 아들을 제압하던 아주 젊은 선생님. 양 팔뚝에 어제 생겨난 멍자국이 시퍼렇게 선명합니다. 또 다른 고참 선생님이 다급히 제게 소리칩니다.
"어서 사라지세요. 그래야 아드님이 진정됩니다. 우리한테 맡기고 어서 나가세요."
아들의 비명이 저를 붙듭니다. 선생님 품에 안긴 채 있는 힘껏 버둥댑니다.
"저희를 믿으셔야 합니다. 어서 사라지세요."
이렇게 떠밀리듯 순식간에 쫓겨날 줄 조금도 몰랐습니다. 돌아보니 바로 문을 잠그네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말로만 각오했던 생이별. 이제는 손뿐 아니라 다리까지 덜덜 떨립니다. 아들 눈에 안 뜨일 곳까지는 어떻게든 걸어왔는데, 더는 발이 안 떨어집니다.
'다 내 탓이오'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끝나지 않는 심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이 모든 게 다 아빠의 큰 탓이로소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제 죄가 도대체 뭐길래, 심판할 현생의 업보가 도대체 뭐가 더 남아있길래, 제가 아들과 이렇게 잔인한 생이별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무려 26년간 단둘이 하루도 빠짐없이 한 이불 속에서 함께 잠을 잔 부자입니다.
예비군 동원훈련 다녀와 본 남자분들. 군대까지 다녀온 생면부지의 어른 남자끼리 며칠만 함께 자도 이별이 아쉬운데, 저는 아들과 헤어질 날이 이미 정해져 있던 무려 26년짜리 동원훈련이라도 했단 말입니까?
제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을 다시 볼 날이 있을까요?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최소 6개월은 지나야 한다 말하고, 누구는 아빠를 완전히 잊어버릴 때까지는 얼굴 볼 꿈도 꾸지 말랍니다.
6개월이라고요? 이미 의사가 말한 여명도 넘겼고, 더는 언제까지 버텨낼 지 전 모릅니다. 6개월 넘게 무사히 기다릴 보장이 있었다면 당장 이리 절박하게 이별 전쟁을 하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지금의 제 간절한 소망대로 아들과의 이별에 성공한다면, 이 모든 게 다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시설 정문 앞에서 하릴없이 건물만 쳐다보며 서성거리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깁니다.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요. 아이 엄마의 차가 제 발을 따라 느리게 따라오다 말다 합니다.
그때 폰이 울립니다. 친구로부터 또 연락입니다. '"지금 아무 생각도 안 나. 밥 생각도 전혀 없어. 그냥 갈게." 했는데, 제 목소리를 듣더니 안된답니다. 무조건 보잡니다. 아니면 자기가 이리로 당장 오겠답니다.
그때 폰에 사진이 한 장 뜨네요. 제 이별 모습이 눈에 밟혔던지 과장 선생님이 보내온 아들의 사진입니다.
"지금 선생님과 함께 자기 옷 정리하고 있어요. 아무 걱정 마세요."
기어이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저 아들의 뒷모습일 뿐인데 그냥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도저히 이대로 아들 옆을 못 떠나겠습니다.
과연 저는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