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하늘

이별 기록 여덟 번째

by 꼭두

사라진 하늘

이별 기록 여덟 번째


성모(聖母)에서 대부(代父)까지


"전 제 아들이 첫 밤만 이겨낸다면 계속 새집에서 지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래서 첫 밤이 그렇게 걱정됐던 거예요."


"첫 밤을 못 넘긴 경우는 저희는 아직 없었고요. 첫 주를 넘긴다면 거의 그럴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첫 주를 못 버티고 도로 귀가한 경우는 있었거든요."


"본인이 적응을 못 해서 버티지 못한 경우겠죠?"


"네. 더구나 아드님은 한 주 넘게 아빠를 보지 못하는 생활을 지금까지 해 본 적 없기에, 솔직히 저희도 걱정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한 주 넘겼잖아요."


"네, 그래서 계속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걱정 마세요."


"체험 입소 한 달을 잘 마치게 된다면, 그후 정식 입소 절차는 어떻게 되죠?"


"생활에 변화를 주면 안 되기에 아드님은 그냥 그대로 있고, 아버님은 서류 처리만 하는 거죠."


"저를 중간에 한 번이라도 보게 되면 그동안 애써온 게 다 '말짱 꽝'이 되는 거군요."


"그렇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당시의 대화입니다.


새집의 과장님, 어쩌면 이리 멋있는 말만 한답니까?


제 아들의 생애 첫 건강검진을 해내신 김포 시설의 간호과장님은 제게는 빈자의 성모라는 '마더 테레사'였죠.


이제 이곳의 선생님들, 특히 그 과장선생님은 제게는 고아의 대부라는 '페스탈로치', 어린이날을 만들었다는 '방정환' 이상이 됐습니다.


그때까지는 분명 그랬습니다.



엄마의 눈물


그동안 아이 엄마는 매일 제게 연락합니다. 별 소식 없냐고.


귀가시키라는 연락은 받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한 겁니다. 아니, 초조한 거죠.


"당신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면 돼. 아무 연락 없고요. 선생님이 큰소리 뻥뻥 치며 안심시켜 주고 있어. 난 그곳 선생님들이 믿음직하고 고마워 죽겠어. 아무튼, 아무 문제 행동 없대. 무엇보다, 뜻밖에도, 날 찾지 않는대."


그때마다 울어요. 긴장과 초조가 풀리는 안심의 눈물이죠.


지난 수개월간 그녀의 일터도 엉망입니다.


비록 20년 넘게 아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치열하게 일해서 그동안의 아들 외부비용을 모두 감당해 온 생모입니다. 아들에 몸이 묶여 번 재산 다 팔아먹고 제대로 된 돈벌이 못 하는 아빠를 대신해.


그 일터가 최근 10여 개월 거의 망가진 수준이랍니다.


"내 예지력 믿으라 했잖아. 그러니 그만 걱정하고 당신 일에 집중해. 소식은 들어올 때마다 톡으로 전할 테니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대답을 못 합니다. 아마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일 겁니다.


완전히 쓸모없어진 아빠


시설의 기준이라는 첫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 이제 두 주를 넘겼습니다. 아들로부터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이제는 정말 생이별이 현실이 되나 봅니다.


행복할까요? 그리도 간절히 소망하던 일이니까요.


그동안 아빠는, 빈집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딸이 아빠의 품을 떠날 때 체감했던 상실감의 재현입니다.


'아, 내가 또 한 번 쓸모없어졌구나.'


처음 쓸모없어진 건 사회로부터였죠. 그다음이 딸로부터였고요.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아아, 내가 마지막 쓸모마저 없어졌구나.'


드디어 완성된 건 독거노인만이 아니라 쓸모없는 아빠였어요. 그러자, 예상치 못했던 선택이 다시 생겼습니다.


처음의 결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애초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없이 떠나려던 사람입니다.


그래야 초라한 모습 없이 잘생긴 청년으로 남을 수 있단 얄팍한 계산, 마지막 욕심이었죠.


조건도 좋아요. 20년 넘게 세상과 담쌓고 살았기에, 다들 말도 많고 하는 일도 많았던 저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결정의 시간


이 나라에 아직은 내 아들 살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애초 치료 안 받겠다 했던 의사에게 부탁합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아들 살 길 찾을 때까지만 살려주세요."


제가 '마더 테레사'와 '페스탈로치'를 만나려면, 그 전에 '히포크라테스'나 '허준'을 먼저 만나야 했던 겁니다.


시크한 그 의사는 또 처음과 똑같이 말합니다.


"그러세요."


암것도 안 하면 6개월 정도 남았다 들었던 날이 2025년 4월 3일. 제가 살려달라 말 뒤집은 날이 9월 16일. 아들이 극적으로 새집을 찾아 첫 밤을 넘긴 날이 12월 16일.


이번에도 조건이 좋아요.


첫 밤으로부터 23일째. 아들과의 생이별이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던 2026년 1월 7일. 저는 오랜만에 아산병원 영안실 앞 마당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음 날 퇴원했습니다.


그 의사가 찾아낸 최고의 항암치료. 그런데 그 항암제마저 더 이상 보험 적용이 안 되자, 이제 할 수 있는 치료 찾기에 의사도 힘들어하고 있었죠. 제가 퇴원하던 1월 8일이 절정이었습니다.


하다 하다 이제 제가 '아, 이런 게 돈 없어서 죽는 거구나!'까지 실감해야 합니까?


'어차피 다 이루었노라. 이제 때가 된 거야.'


아들이 보고 싶어 미치겠다 하자, 그러려면 하루라도 더 살아서 뒤에서라도 아들을 지켜주면 된다고 아이 엄마가 제게 말해주던 때죠. 하지만, 그 마지막 욕심만 포기하면 됩니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연락


이제 아산병원 VIP도 그만이구나 싶던 그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심상치 않다네요.


첫 소식은 1월 8일. 아빠 없는 아들의 밤 24일째입니다.


"아드님의 문제 행동이 시작된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주저앉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외부 시설에서는 하지 않았던 행동. 마지막 보호자인 아빠에게만 하던 행동을 하고 있더군요. 우리 장한 아들, 2주를 잘 넘기더니 3주째가 되자, 더는 힘들었나 봅니다. 평생 첫 경험이니까요.


"제게 하던 짓을 하고 있군요. 지난 26년간 없던 일입니다. 아들은 자기를 달래줄 보호자, 자기가 풀어야 할 상대가 한 명은 필요한가 봅니다."


제 판단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아들 스스로 '이제 내게 아빠는 없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집이다.' 이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 하나는 그때까지 시설에서 의지를 잃지 않고 계속 아들을 보호하며 단련시켜 주는 것.


한마디로 시설이 포기하지 않는 것. 이 전제 속에서 아들이 시설을 받아들이는 것. 두 가지가 돼야 합니다.


'얼마나 함들었으면...'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리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내 피터 팬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안쓰러움에, 아들 바보 아빠는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기막힐 따름이지요.


정말 다행스러운 건 여전히 "어떻게든 해봐야죠." 하는 선생님입니다. 그동안 간호과장님이 제게 연락해서 지역의 전담 병원을 통해 복용약도 바꿔보겠다 했고, 전 당연히 마더 테레사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었죠.


제게는 마더 테레사와 페스탈로치가 여전히 위대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제 아들, 누구보다도 장한 피터 팬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아들, 제발 조금만 더 힘을 내줘.'


어쩐지 잘될 것 같던 예지력이 어쩌면 안될지도 모를 예지력에 눌리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새로운 짓을 추가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옵니다. 그분들 말대로라면 지금껏 아빠에게도 하지 않던 새로운 행동입니다.


살얼음 같은 날이 이어집니다.



2026년 1월 13일.


새집에서 살 수 있냐의 잣대. 아빠 기준 첫 밤도 지나고, 시설 기준 첫 주도 지나고, 체험 입소 마지막 날을 이틀 앞둔 늦은 오후.


김포로부터 연락입니다.


"마지막 평가 회의를 마쳤습니다."


내 영원한 피터 팬.


그곳에서마저

포기한답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