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기록 아홉 번째, 마지막
입소 불가
좌절하기에 앞서 그저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 기막힌 사정 잘 아시잖아요?"
"회의 한 번만 더해주세요. 네?"
정신을 차려보니 하소연하고 있더군요. 몹시 구차하게.
그럴 만도 합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는 페스탈로치였고 방정환이었던 선생님입니다. 물론, 아빠 스스로의 생각이 그랬습니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하지만 요지부동입니다.
"불가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늘 하던 대로의 익숙한 일이고 그럴 때마다 겪으며 지나간 일입니다. 지금은 자신들의 '입소 불가' 판정을 아빠가 받아들이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한때 페스탈로치였던 선생님이 그 배역을 맡았을 뿐이고요.
"제 아들 26년 만의 생애 첫 건강검진 해내셨을 때, 선생님들께 절을 하며 감격에 겨워하던 저 기억하시죠?"
"한 주만 넘기면 그대로 입소라고, 그동안 늘 그래왔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는데 이제, 불과 이틀 남기고 이러시면 저는 어쩌라고요?"
어느새 원망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아주 부질없이.
말을 빼앗아 간 소망
"한 달 넘기고 불가 판정한 경우 꽤 있었습니다. 아드님보다 더 상태가 좋았지만, 불가 판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라? 말이 달라졌네요? 왜지?
"그럼, 제게 거짓말을 하셨다는 건가요? 저를 한 달 동안만 안심시켜 주려고요?"
'…'
"저 안 되는 일 떼쓰겠다는 거 아닙니다. 선생님들의 의지 문제 아닌가요?"
'…'
"그동안 제가 그곳 선생님들이 정말 위대하다고 얼마나 자랑했는지 아십니까? 캡처라도 해서 보내드릴까요? 통화 녹음도 함께 보내드려요?"
'…'
'그러셨군요.' '그렇게 됐네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정도의 흔하게 예의 차리는 거절 말이라도 하지 싶은데,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어서 빨리 포기시키는 게 그분들의 매뉴얼인가 봅니다. 원망을 듣는 것까지 포함된.
아빠의 간절한 기대와 감사를 한 달간 생생하게 지켜본 그곳입니다. 그럴 때마다 "걱정 마세요. 해낼 겁니다." 하던 선생님들입니다. 지금 아빠의 절망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냉정합니다.
구차하고 부질없는 하소연과 원망마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꼭 이루어져야 했던 소망이었죠. 지금 막 그 소망의 좌절이 아빠에게서 말을 빼앗아 갔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더 있던가?'
생각을 빼앗아 간 간절함
이제는 아무 생각도 못 합니다.
뭐든 생각만 하려 하면 이전의 제 말들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죠.
"여기가 우리나라 표준의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이야. 입소 정원 45명. 5인 1실. 야간당직 선생 2명. 아들이 살 수 있냐의 열쇠는 선생님들의 능력이 있는가? 의지도 있는가?인데, 이곳은 두 가지가 다 있어."
불과 오늘 오전까지도, 제가 아이 엄마에게 다짐하듯 한 말입니다.
"이곳에서도 만약 포기한다면 '우리 아들이 갈 곳은 이 나라에 없다'가 돼. 내 예지력이 결국 맞아가고 있잖아. 어차피 쉬운 일 아니었어. 그러니 이리 오래 걸렸지. 하지만 이제 내일모레면 한 달이야. 그곳이 해냈고 장한 우리 아들도 해냈어."
아이 엄마를 안심시키고 저도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면서요.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면서요. '간절함이 사무치면 전봇대에도 꽃이 핀다'면서요.
그런 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전래동화에서나 있는 일이란 걸, 그런 일은 성악(性惡)으로 가득찬 현실 세계에서는 없다는 걸, 60년 넘게 살고서야 깨우친 아빠라는 사람, 참 어리석고 딱한 양반입니다.
이제 꿈을 포기하고 사람과 세상을 원망할 순서입니다.
그러기 싫어서, 그러면 원망 다음 순서는, 끔찍하고 모진 그 결정을 이번엔 정말 실행해야 하기에 또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직 아닐 수도?'
'아, 돈 없어서 요즘은 항암주사도 못 맞고 있었지.' 잊을 뻔했네요. 제 교수도 '이제는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뭐가 남았을까?' 하고 있다는 걸. 그 의사도 아들 살 곳 찾을 때까지만 살려달라는 제 말에 '그러세요.' 한 책임감에 힘겨워하고 있단 걸.
이미 그가 말해준 의학적 통계적 평균 여명을 넘긴 아빠입니다. 아들 살길 찾아야 하는 제 삶의 마지막 소명, 그 간절한 소망이 저를 붙들었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제게 허락된 시간이 없습니다. 남겨진 방법이 안 보여서요.
지금까지를 되짚어보는 것도, 앞으로를 상상해 보는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저를 계속 붙잡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으니 생각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저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간절했기에, 그토록 간절해야만 했기에, 그 간절함이 포기당한 지금 생각의 갈피를 잃었습니다. 소망의 좌절은 제게서 말을 빼앗아 갔고, 간절함의 좌절은 생각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생각조차 포기당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동안의 '말없음표'
이틀이 지났습니다. 말도 없어졌고 생각도 안 하는데 이틀이나 지났어요. 밥도 약도 안 먹었고 잠도 자지 않았는데 날짜를 보니 그렇습니다. 시계를 보니 또 자정을 넘기고 있더라고요.
폰에 쌓인 알림을 봅니다. 브런치가 말하네요. '연재일입니다. 서두르세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은 성악이 아니라, 여전히 도도한 희망이 만개한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런 것도 몰랐냐는 듯, 잘난 척하고 싶었습니다.
어깨를 으쓱이고, '다 이루었노라.' 자랑하며 회고록을 마치고 싶었습니다. 만약 힘이 남아있으면 원래 쓰려고 했던 소소한 기록이나 더 남겨볼까? 싶었습니다.
38년 만에 쓴 내 생의 마지막 극본이 극적인 희망의 드라마로 남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 된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해피엔딩. 행복한 승리가 예정된 전쟁 기록을 막 쓰기 시작한 때입니다. 곧 자랑의 순간이 올 것을 믿었기에 미리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면서 교만하게 시작한 글.
그 글 제목이 '이별 기록 첫 번째, 「모세의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단 걸 알았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뭔가 해보려 하는 건 크게 잘못된 거라죠? 저는 힘이 모자란 걸 넘어 나쁜 사람입니다.
브런치의 글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결국엔 훈훈한 결말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빛나는 삶의 성취를 자랑하면 다들 흐뭇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는데, 저는 삶의 좌절을 전하며 구구절절 구차한 소리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사진조차 온통 칙칙하게 바랜 흑백사진뿐입니다.
저는 우울의 숙주(宿主)입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만에 하나 저와 비슷한 형편에 놓인 분들이 계신다면, 그곳에도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턱 없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제 기록이 그분들을 더 우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더는 그러면 안 됩니다.
'새글쓰기'를 클릭하고 한 줄 썼습니다.
"회고록을 마칩니다."
이유를 말해야 마땅합니다. 두 줄 더 씁니다.
"저는 실패했습니다."
"저와 아들의 회고록은 미완성입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틀간의 '말없음표'를 끝내고 '마침표'를 찍을 차례입니다.
이제 '발행완료'만 클릭하면 됩니다.
'마침표' 말고 '쉼표'?
새삼 꼭두의 글 목록을 다시 봅니다.
쫓기듯 써온 글들입니다.
1부 엄니의 회고록 때는, 이러다 2부와 3부, 정작 쓰려하는 나와 아들의 기억을 기록하기도 전에 '그 순간'이 오면 어쩌나 싶어, 시간에 쫓기며 하루에 몇 화씩 쓰기도 했던 회고록입니다. 그렇게 3개월을 꽉 채웠습니다.
저는 마지막 승부라고 생각한 전투에서 몇 번 이기며 감격했지만, 종국(終局)에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끝내 포기당했다는 걸,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인정하기가 갑자기 억울해집니다. 이 험하고 못된 세상에게 지고 만다는 걸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화들짝 깹니다. 그래봐야 고작 몇 시간 지난 새벽이군요.
아까의 포기 글은 놔둔 채, 갑자기 새 창을 열어 새 글을 씁니다. 패배를 확인하기 위한 복기(復棋)인가요? 패배의 원인이라도 짚어보겠단 걸까요? 바둑에서 패자의 복기는 승자의 복기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죠?
말과 생각을 잃어도 글은 된다는 게 신기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불과 세 시간 만에 다 썼습니다.
이제 전쟁 시작을 복기했을 뿐인데, 패배한 현실이 인정됩니다. 실은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고, 패배를 인정하기까지 이틀이 걸렸던 겁니다.
'해양천국'의 엔딩크레딧이 떠오릅니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모든 부모님들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저는 그런 말을 남길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 해양천국은 없습니다.
영화는 가상현실입니다. 그걸 확인해야겠습니다.
다시 생각이 시작됩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입니다.
말로도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약을 먹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뭔가 먹어야 합니다. 누룽지를 끓여 꾸역꾸역 먹습니다. 살기 위해 먹는단 말이 실감 납니다. 샤워도 하고 면도도 했습니다.
제가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을 수 있을까요?
그 새벽에 썼던 글 제목이 '이별 기록 두 번째, 「전투의 시작, 커지는 희망」'입니다.
이곳은 실제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