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홀로 하루」 열네 번째
꼭두가 기억하는 그의 회고록 3개월
안녕? 다시 오랜만에 인사하는 꼭두야.
내 길동무인 그가 나홀로 시간여행을 멈추지 않네. 난 끼어들 틈이 없는 그의 시간여행.
어머니로부터 그를 거쳐 아들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삶의 기록을 하나로 묶어서 쓰겠다는 그의 회고록.
그는 『세 사람의 날들』이라 이름 붙인 이 한 권의 기록을 통해 기억되고 싶다고 했어. 무엇을? 막 떠나간 어머니와 곧 떠나갈 그와 그의 아들, 이 세 사람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걸. 누구에게? 이 사람들과 이곳에서 함께 살았던 어느 누구에게든.
그는 일찌감치 말했어.
훗날, '한 명이라도 더' 자신들을 기억해 준다면 자기는 미리부터 행복하게 떠날 수 있다고. 그래서 이 기록을 시작한다고.
그 기록의 1부, 『어머니의 날들』을 서둘러 마치고는 이렇게 말했지.
"지금 막 어머니 배웅을 마쳤어. 이제 나와 아들 차례야."
여전히 시간이 없다면서, 쉼 없이 2부 『그의 날들』과, 3부『아들의 날들』을 동시에 시작하면서 또 말했지.
"크게 내세울 자랑도 엄청난 후회도 없어. 그래서 그런 거 하지 않을 거야. 담담한 마음으로, 내가 살아온 날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백한 글로 남기고 싶어."
내게 불쑥 부탁하더군.
도와달래. 함께 해달래. 아예 이 기록의 화자(話者)가 되어달래. 세상을 향해 제대로 된 글을 써 보는 게 20년 만이라나. 게다가, 자기를 이렇게 고스란히 드러내 보기도 처음이라나. 자신이 없대. 어떻게 쓸지, 어떻게 읽힐지 도통 모르겠대.
말했던 것처럼, 난 그의 마지막 소풍 길을 배웅하는 존재야. 그에게는 처음인 낯선 길을 외롭지 않게, 무섭지 않게, 웃으며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원래의 내 소명이지. 뜻밖이다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가 청해온다면 그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더라고.
왠지 계면쩍었나 봐. 아니면 혼자 하기 외로웠거나.
그는 이미 세상과 연이 끊어진 채 20년 넘게 혼자 살아왔잖아. 일찌감치 독거노인이 돼 그렇게 오래 살아낸 사람이면 그런 담담함도 가능하겠다 싶었어. 다소 쓸쓸했을지는 몰라도 충분히 단련됐을 거 아니겠어?
게다가, 지금이 100년 전이라고 한번 생각해 봐. 40~50대를 넘기기 힘든 고단한 생들을 살았잖아. 그게 언제 적 얘기냐고? 그럼, 불과 50년 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60세까지 살면 드물고 특별한 일로 여겼어. '천수를 누렸다'며 환갑잔치를 열 정도였잖아.
그도 나이 60을 넘겼어. 적당한 아쉬움 속에 무심한 듯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됐지.
아니었나 봐. 첫마디로 하는 말이 실은 홀로살이가 힘들었대. 외로움이란 게 이렇게 지독한 건 줄 몰랐대. 힘든 것보다 힘들다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대. 같이 지켜볼 테니, 어떤 말이든 들어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
처음엔 재밌어하더라.
20년 넘게 못 했던 소통을 다시 시작하니 아주 즐겁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는 게 참 좋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 거의 없는 브런치 한구석이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 그곳에 자신의 기록을 차곡차곡 쌓는 걸 신나 하더라고. 말의 상대와 글의 장소가 생기자, 말문도 글문도 터진 모습이랄까.
그 무렵, 늦게 소식을 듣게 된 옛 인연들과 만나게 되면서는 제대로 흥에 취하더군. 거의 40년 만의 만남이라며. 이렇게 보고 떠날 수 있는 게 너무 고맙다면서.
나와 함께 「그의 나홀로 하루」에서 마지막 일상을 이야기하고, 「품 속의 타임캡슐」에서는 그의 지나온 날들을 기록하며 바쁘게 지냈지. 그는 이승과의 무탈한 이별을 위해 반드시 마쳐야만 할 마지막 숙제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변했어.
정확하게 짚자면, 해가 바뀌고 그가 아산병원에서 마지막 퇴원을 하던 1월 8일에 시작됐어. 집에 돌아온 그는 만 하루 동안 혼자 이불을 뒤집어쓴 채 끙끙대며 앓았지.
1월 13일 늦은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더니 몇 시간을 폰과 씨름하더라. 그 후 밥도 약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생각도 없이, 잠도 자지 않으며 망부석처럼 앉은 채로 꼬박 이틀 밤을 새우더군.
1월 15일은 그가 아들과의 이별을 마무리하는 날이었어. 그 또한, 그 이별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이어질 자신과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고.
실패한 거야.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가문의 마지막 기록을 시작한 지 3개월째였어. 담담했던 얼굴이 억울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지. 그런 표정 처음 봤어. 낯빛이 어두워지고,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날이 이어지더니 뜬금없는 시간여행을 혼자 시작하더라. 나 없이.
"함께 하기로 한 부탁도 버리고 혼자 뭐 하는 짓이냐?" 물으니,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래. "이래서야 사람들이 읽어 주겠어?" 하며. 별꼴이야. 어차피 읽는 사람도 별로 없는 무명의 기록쟁이 주제에. 알리바이 한번 옹색하긴.
산동네 속 어린 날부터 캠퍼스 속 청년의 날까지 거침없이 달리며, 혼자 피식피식 웃기까지 하네. "이제야 좀 회고록답네." 하면서.
단숨에 그의 속내를 알 수 있었지.
그는 자신에게 남겨진 또 다른 업보를 찾는 거였어. '내가 모르는 뭔가 또 있다.' 하면서. 걱정됐어.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려도 소용없더라.
"왜 그랬니, 친구야? 정작 업보는 찾지도 못했지?"
그가 말하는 엉망이 된 회고록의 사연
어머니 소풍을 마쳐드렸어.
'삶과 죽음의 경계란 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곳엔 선도 그어져 있지 않았어. 그저 가볍게 걸어 넘으면 이쪽이 저쪽 되는 일이더라고.
'그럼 내 소풍의 마지막 날은 언제일까?' 소식을 들으러 나섰지. 기다렸다는 듯 말하더라고. 6개월 정도래. 나 또한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만 끄덕거리자, 의아해하며 묻는 의사에게 말했어.
"너무 지쳤어요. 이제 쉬고 싶네요."
이쪽에 있으나 저쪽에 있으나 혼자이기는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쪽의 흔적은 정리해야지 싶더라. 이승 나들이를 위해 차렸던 천막도 걷고 짧지 않은 동안 쌓이거나 쌓아놓은 모든 걸 정리했어. 문득 아깝다 싶은 것들은 남기고 싶었지만, 받아줄 이가 마땅치 않기에 대부분 없앴지. 다른 미련은 다 내려놨기에 크게 힘들지 않더라.
단 하나의 미련만은 내려놓지 못했어. 못내 아쉽고 힘든 건 아들과의 이별이었지. 하지만, 어차피 내가 세상과 이별하려면 먼저 겪어야 하는 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
그 마지막 숙제는 아들의 생모에게 부탁했어. 내가 가고 나면 아들을 지켜봐 줄 유일한 핏줄이기에 아들이 아빠 없이 살 수 있는 새집을 찾는 것부터 그녀가 해야 한다 싶었지.
전생의 죄든 현생의 업보든 이만하면 내 죗값은 다 치른 셈 아니냐는 얄팍한 셈법도 있었어.
내가 생각했던 사람 생의 황금기는 40대부터야. 그 나이에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재산도 능력도 품성도 어느 정도 정해진 그때부터는 가진 것으로 자기의 생을 살며 결과를 만들기 시작하는 때라고 판단했으니까.
난 거꾸로였어. 그때까지가 내가 이루어 낸 생의 전부였고, 40대가 시작되면서 속죄가 시작됐지. 일찌감치 독거노인이 되어 내가 가진 모든 걸 태워 없애며 20년 넘게 아들을 홀로 키우는 수형생활(受刑生活). 죄인답게, 누구도 원망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으며 살아온 세월.
그 고단한 삶을 지켜봐 주고 하소연을 들어주던 우리 집 마지막 한 사람, 어머니가 떠나가자, 세월의 노독이 한꺼번에 닥쳐오더라. 나, 실은 많이 힘들었나 봐. 이제 죗값은 다 치른 것 같으니, 아들과의 이별 숙제만큼은 벗어나서 회고록 따위나 기록하며 떠나가고 싶었던 속내라니.
감히,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던 거지.
엄청난 착각이었어. 회고록도 엉망이 돼버렸지.
2부 『그의 날들』은 독거노인 이전까지 그의 생을 수놓아 준 소소한 에피소드의 기록이 아니라, 하지 않겠다던 '병상일기'가 됐어. 3부 『아들의 날들』은 하염없이 사랑하던 아들과의 아름다운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힘겨운 '이별일기'가 되고 말았지.
쫓기는 시간 속에 기록은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긴 했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들과의 이별이 그만큼이나 힘들 줄 몰랐던 거야. 이 나라가 이토록 무능하고 비정할 줄 몰랐어. 이 세상이 그토록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무관심으로 외면할 줄 몰랐어. 20년간 아들을 보지 못했던 생모가, 그 무능함과 비정함과 무관심까지 다시 한꺼번에 만나며 그렇게 힘들어할 줄 꿈에도 몰랐어.
'아들과의 이별이 실패한 채 고독사를 맞으라고?' 모든 게 두려웠어. '차라리 다른 결심을 하겠다.' 벼랑 끝으로 몰려났어.
그때 꼭두가 내게 그랬지. 애꿎은 죗값 치르려 하지 말고, 끔찍하고 모진 결심 실행할 생각 말고, 남은 힘으로 욕이라도 내뱉으며 후회 없는 전쟁굿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반전이었지.
그렇게 했어. 전쟁을 치렀고, 이번에는 회고록에 그 전쟁을 기록했어.
2026년 1월 13일. 결국 올 것이 또 왔어.
한 달 동안 내 아들이 혼자 버텨냈던 낯선 새집 생활. 아들의 장기거주시설 '입소 확정'을 불과 이틀 앞두고 내려진 '입소 불가' 통보. 이 나라와 이 세상은 나를 한 달 동안만 안심시킨 후, 거의 승리한 것 같았던 전쟁을 패배로 만들어 버렸어.
하마터면 회고록의 마침표를 찍을 뻔했던 난 잠시 쉼표를 찍었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2차 이별전쟁을 해야 한다면.'
이번 회고록은 독이 바짝 오른 코브라의 발악이었어. 『그의 날들』은 겉으로는 회고를 가장했지만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업보를 찾기 위한 내 기억의 기록이었어. 『아들의 날들』은 패배를 복기하는 이별 기록이 됐지.
잘못 찍을 뻔했던 생각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었어.
더 이상의 업보는 없었어. 최소한, 내 머릿속에 기억이란 게 쌓이기 시작한 어린 날부터 젊은 날까지. 그 뒷날의 업보도 못 찾을 거 같아. 아니, 안 찾을 거야. 지난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난, 운명적인 옥살이를 했을 뿐 죗값을 치른 게 아니었어.
1년 가까이 겪어야 했던 전쟁의 패인은 아들에게도 생모에게도 내게도 있지 않았어. 그건 처음부터 예정된 결과였을 뿐이야. 이놈의 나라, 이놈의 세상은 우리의 비명을 의도적으로 듣지 않았어. 적당히 가여운 모습으로 그저 조용히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억울해졌지.
억울해지려 작정하고 보니 말도 안 되는 게 한둘이 아냐.
시작은 무소불위(無所不爲) 안하무인(眼下無人) 하늘님의 재판이었어.
의사를 통해 사형선고처럼 전달한 건 판결문의 한 조각이었지. '넌 이제 갈길 가거라. 아들과의 생이별도 어쩔 수 없구나.' 나머지 조각은 '네 아들 살길 찾아라. 그것도 네가 스스로 해야지?' 그게 형량의 주문(主文)이야.
당연히 주문 뒤에 이어져야 할 다음도 없어. 형량의 이유인 죄명(罪名). '그건 네가 찾아봐라.' 그게 판사를 자처한 네가 할 수 있는 짓이냐?
뭐, 이런 깡패가 다 있어? 그걸 시킨다고 찾아본 나도 참 딱한 놈이지만.
지금부터 난 하늘님의 잘못된 판결문에 저항할 항소이유서를 쓸까 해. 억울하니까. 부당하니까.
이번 글은 항소이유서의 시작인 항소장이야. 이미 이 회고록 전체가 항소이유서지만 다음 글에서 새롭게 항소이유서가 이어질 거야. 왜 억울한지. 왜 부당한지. 그래서 '회고이유서'야.
'하늘님께 드리는 그의 회고이유서'
그와 아들의 존엄을 지켜 줄 회고이유서
"역시 내 길동무다. 드디어 부질없는 업보 찾기를 마치고 돌아왔구나.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당신과 아들을 구원할 차례야."
"이제부터 내 회고록은 무소불위에 저항하는 회고이유서야. 두 가지를 말하게 될 거야. 왜 하늘님이 내게 이런 짓을 했는지 그 의도와, 그게 왜 부당한 짓인지 그 이유를."
"억울한 옥살이는 끝났어. 나는 지금부터 자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