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제 법정에 출두하세요!"

마지막 겨울 두 번째

by 꼭두

"하느님? 제 법정에 출두하세요!"

마지막 겨울 두 번째


2주일 동안의 쉼표


제가 「'쉼표'의 시작」이라 했던 건, 이대로 입 다물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였죠.


잠시 쉼표를 찍은 후, '그 길을 또 걸어보겠다.'는 각오. '결국 또 좌절하게 되더라도, 이대로 내가 이 비정한 세상에 지고 말지는 않겠다.'는 다짐.


'끝내 또 실패하게 되더라도, 그 모든 걸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기겠다.'


내 마지막 남은 힘을 다 태웠기에, 내게는 '한(恨)'조차 남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불행하게도 앞으로 나와 비슷한 일을 해야 할 분들에게는, '나처럼 잘못된 길을 따라 걷지는 마시라.'의 증명. 내가 기적처럼 아들 살리기에 성공한다면, 그분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첫 길잡이가 되리라는 욕심.


아둔한 저였지만, 지금까지 1년간 걸었던 길이 잘못 접어든 길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2주일이면 충분했습니다.


2주 동안 뭐했을까요?


제일 먼저, 시설 소비자인 '갑'으로서 시설 생산자인 '을'에게 통지했습니다. 귀하들이 한 달 동안 나를 안심시켰다가, 체험 소비 마감을 불과 이틀 앞두고 더 이상의 소비 '불가'를 통지했지만, 갑이 대체 상품 찾을 준비를 해야 할 2주 동안의 대기 기간을 확약받았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정중하게 설명했죠.


아들 귀가시키러 가는 날, 김포의 시설 생활 3주 차부터 아들이 얼마나 어떻게 망가졌기에 포기해야 했는지, 아빠의 짐을 나누어지려 했던 보호자 입장에서 말해달라고 마지막 부탁도 했어요. 제가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이없었죠.


그 마지막 날, 머리를 흔들고 진저리 치며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던 '자칭' 사회복지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 후 며칠 동안 저와 제 아들은 블랙코미디를 넘어 거대한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될 뻔했습니다.



어이없는 부조리극


제가 보고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그 상황만 요약드립니다.


정부의 '탈시설' 정책에 저항하는 일부 시설과 장애인단체에서 우리 부자의 사연을 내세우려 했더군요. 제게는 아무런 사전 '동의' 없이. 게다가 '과장'까지 곁들여서.


현재의 탈시설 정책과 감시 아래서라면 도저히 시설 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인으로 설정해 놨더라고요. 27년간 아들을 홀로 키운 저도 모르는 수준으로.


탈시설을 제대로 빨리하라는 '전장연'의 시위 현장 전위에 내걸리는 장애인의 영정이 있습니다. 저와 제 아들이 그렇게 이용될 뻔했습니다. 이번엔 반대 진영에 의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사전에 기획됐든 사후에 결정했든, 그들에게는 탈시설 정책의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김포의 불가 통지가 예정된 것이었나 봅니다.'라고 제가 말했던 건 그런 뜻이었습니다. 비정함을 넘어 너무 무례한 세상 아닙니까?


도움이 간절한 사람의 비명을, 그저 호기심을 채우려는 '가십거리'를 넘어, 이제는 '희생양'으로 이용이라니요.


저는 장애인 복지정책의 화두라는 '탈시설' 싸움에 '지금' 끼어들고 싶은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물론, OECD 국가의 위상에 완벽하게 뒤떨어진 장애인복지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아무런 인프라도 마련해 놓지 않고 'K-복지'라는 브랜드만 탐하는 '현재의' 탈시설 정책이 저와 제 아들의 살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탈시설이 더 행복한 장애인에게는 자립 인프라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설 생활이 간절한 장애인에게는 지금 있는 시설을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정책을 동시에 펴는 것이 마땅하다는, 너무 당연한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탈시설 정책의 성과를 숫자로 과시하기 위해 멀쩡하게 있는 시설을 없애면 안 되니까요.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 5%라는 250만 소수 장애인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장애인 정책이, 소수 중의 소수인 0.5% 25만 발달장애인을 포기하는 정책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95%의 절대 다수 비장애인이 구경거리 삼는 게, 절대 소수 장애인끼리의 복지예산 빼앗기 vs 지키기 싸움이고, 가성비 계산을 마친 정부가 한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이라면 너무 참담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에 고발해서 나라 망신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제가 왜 이 상식적인 논쟁에 끼어들 엄두를 못 내는지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남겨진 시간이 없는데 갈 길은 너무 험하고 바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논의에 관심쏟지 못했던 제 지난날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와중에, 기어이 우리 부자를 끌어들여 그 싸움의 도구로 삼으려 했던 기막힌 상황만 어설프나마 막아둔 상황입니다.


여기까지만 보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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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걱정되는 아들의 마음


저는 그 후폭풍을 겪으면서도 2주라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바쁜 시간입니다. 2주일로는 사실 모자랍니다.


쉼표를 찍는 동안 김포 입소 이전의 상태를 회복해야 합니다. 패전의 상처가 나아야 새 전쟁을 또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당장 입소 이전까지 다니던 주간 돌봄시설마저도 다시 받아준다는 약속을 보란 듯 깨버렸기에 그것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아들 마음의 안정입니다.


태어나서 27년 만에 처음으로 아빠 품을 떠나 홀로 낯선 시설에서 한 달 넘게 버틴 아들입니다. 그 상처를 지우고 다시 처음이 돼야 합니다. 김포 시설 입소 전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시설에 가던 날. 그동안의 생이별이 제게도 너무 힘들었기에 그리움 끝 품었던 해후의 기대감이 점점 무서움으로 바뀌고 있었어요.


문득, 아산병원에 죽으러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던 날. 태어날 때부터 제가 주는 밥만 먹으며 제 품에서 살다가 일주일 넘게 굶어야 했던 기묘한 인연의 마당냥 겸 집냥이 '후크'. 저를 다시 만난 기쁨은커녕 저에 대한 배신감에 고개를 돌리더니, 급기야 귀곡산장을 떠나갔던 기억이 순간 떠올랐거든요. 하하.


아빠를 못 본 지 일주일 만에 가야 했던 영월에서 하루 만에 쫓겨온 새벽. 아빠를 다시 만나자, 그토록 반가워하며 품속을 파고들었던 아들이 오늘은 어떠려나? 그날처럼 반가워할까? 설마 외면하려나?


처음엔 아빠를 힐끔 쳐다보더니 차에 올라타서도 한참 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더군요. 차라리 때리지. 이전처럼. 그런데 달랐어요. 집에 오더니 빠르게 안정을 찾습니다. 아빠가 차려주는 수라상을 다시 받으며 말이죠.


저는 천만다행이다 싶었지만, 밖에서는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아들 마음의 상처는 컸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0일 현재까지도 아빠를 떠나 외부 돌봄시설에 있으면 많이 예민한 상태입니다.


미안해, 아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이 나라의 복지서비스


주민센터의 '그분'과 함께 하는 이 일은 갈수록 힘들군요.


그분이 그러셨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강동의 행정력을 다 써서 이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모두 이용해 보겠다고요.


당장 다가오는 일요일 새벽, 도대체 제가 왜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밝히려는 아산병원 정밀검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다 깬 아들이 뛰쳐나가기라도 하면 안 되기에 '긴급돌봄서비스'를 이곳저곳에 요청했지만, 끝내 들었던 대답은 활동지원사 찾기에 실패했다는 센터의 연락이었죠.


강동에 등록된 단기보호시설을 모두 접촉했지만 죄다 실패했어요. 자리가 없어서, 혹은 힘들 것 같아서. 매번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지만 가까운 송파까지 훑었습니다. 늘 그래왔듯 당장 어떻게 해줄 것처럼 해놓고는 만나면 엉뚱한 소리만 합니다.


약을 한번 바꿔보라는 둥, 멀리 지방까지 거주시설을 찾아보라는 둥, 명함 첫 줄에 '사회복지학 박사'라고 박아넣은 전문가 양반이 딱하다는 표정 반, 진지한 표정 반으로 건네주는 무책임한 조언입니다. 제가 27년간 뭘 안 해봤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 비굴한 을이 아니라고 했었죠? 네, 저는 이제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불평할 수 있는 '투덜이 스머프' 갑입니다.


저는 아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조기교실 원장부터 지금 만나고 있는 사회복지학 박사까지, 소위 전문가 양반들로부터 도움의 유산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신처럼 떠받들어 모셨지만, 결국엔 그들로부터 타박과 꾸지람과 무책임한 덕담만 들어왔죠.


지금 부모가 잘못하고 있다면서요. 결국엔 다 잘될 거라면서요.


저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자식은 부모가 제일 잘 압니다. 그래야만 하고요. 부모의 희생과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전문가는 만나지 마십시오. 비굴하게 섬기면서 희망고문 당하지 마십시오.


저절로 잘 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우는 아이 젖 주고, 목마른 사람이 샘 팝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는 자들이나 정책은 가짜입니다.


면담처라도 확보해 두려고 접촉했던 전국의 장기거주시설 또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알리바이가 더 늘었죠. 시설에서 두 번이나 퇴짜맞은 전과까지 생겼으니까요. 아, 물론 한 가지 더 있죠. 신규 입소 받지 말라고 감시하는 나라와의 싸움에 자기들이 너무 힘들다는. 해가 바뀌면서 더 심해졌다고요.


나라가 무능하거나, 제가 미련하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가 확실합니다.


그 무렵에, 어느 날 갑자기 '써니'가 나타났습니다. 아주 시끄러운 모습으로. 네, 영화 속 그 써니 맞습니다. 고삐리 칠공주파 써니요.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돌이켜보면 생뚱맞았던 써니의 암약에 대해서는 흔적이 드러날 때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항소이유서


아들과의 생이별 기간 겪었던 공허함과는 별개로, 27년간의 중증장애인 돌봄노동에서 잠시 해방됐던 아빠였죠.


다시 아들과 둘이서 끝없이 이어지는 돌봄생활에 여명 넘긴 아빠의 비명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저는 스스로 27년의 인연을 찾아 헤맨 끝에 주간돌봄을 찾아냈습니다. 온전히 제힘으로.


긴급돌봄은 써니가 해결했습니다. 공적 기관에서 결국 못 한다고 통지한 일을 개별 인연의 전문가 인맥이 성사시켰어요. 불과 세 시간 만에.


40여 년 만에 제 앞에 나타난 대학후배 그녀는 제 아들과 동갑의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다가 발달장애 전문가로 인생 배역을 바꾸게 됐다고 하더군요.


페스탈로치를 만났다는 기쁨이 탈시설 싸움의 희생양 위기로 바뀌며 끝났던 거주시설 찾기는 여전히 미궁의 화두인 상황.


이 모두가 제가 법의 대원칙인 '당사자주의'를 새삼 자각하고 무장하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


저는 국가가 은총이라도 베푸는 듯 던져주는 복지서비스 관리 대상이 아닙니다. 저와 제 아들이 장애인복지의 주인입니다. 따라서 제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의 시작과 끝은 오직 당사자인 저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주의도 필요 없다. 나는 정책 싸움의 도구가 아니다.'


중증장애인과 함께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제 60년 넘는 삶과 목소리가 가장 우선입니다. 당신들의 실무 매뉴얼조차 내 권리를 나를 대신해 결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저는 항소장을 제출하게 됩니다.


이 회고록 전체가 당사자가 기록한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항소이유서를 따로 제출합니다.


무소불위에 취해 무도한 판결을 내린 깡패 재판관 하늘님, 제가 마련한 법정에 출두하십시오. 죄목도 고지하지 않고 저와 제 아들에게 사형을 언도한 부당한 형량에 대해 따져보십시다.


저의 날과 아들의 날을 아무리 복기해봐도 더 이상의 업보는 없었습니다. 우리 부자는 무죄라고요. 당신은 죄형법정주의를 비웃었고 지은 죄만큼 벌받아야 하는 책임주의도 어겼습니다.


게다가 국가는 무능죄를 지었고, 시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시스템 권력의 과오죄는 덮었죠? 죄는 국가가 지었는데 이따위 현실에서 저보고 살길을 찾아보라고 벌을 내려요? 저에 대한 사형은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내린 살길 찾기 형량은 못 받아들입니다.


안 될 일일 줄 다 알면서 선고한 실현 불가능한 형량 맞죠?


도대체 왜 그랬어요?


무신론자인 제게 무소불위의 재판관은 우리나라의 하늘님뿐인 줄 았았어요. 그런데 달나라 옥토끼가 노를 저어 찾아간 서쪽나라에서, 기원 전 하고도 한참 전에 절대권능에 취한 하느님이 이미 똑같은 짓을 했더군요.


무죄인 욥에게 부당한 형량을 선고했던 하느님부터 먼저 출두하셔야겠습니다.


50년 전 어린 날에 구약성서로 읽었던 '욥기'를 이번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詩) '욥의 노래'로 다시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하늘님, 당신은 서쪽나라 하느님을 수천 년 만에 그대로 따라 했더군요.


독이 바짝 오른 코브라가 당사자주의에 입각해서 제출하는 항소이유서입니다. 이곳은 항소 재판정입니다.


"하느님, 나오세요. 공동정범 사탄도 나오세요. 증인 욥도 나와주세요."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