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피터 팬!' 이야기

마지막 겨울 세 번째, 끝

by 꼭두

'안녕, 피터 팬!' 이야기

마지막 겨울 세 번째, 끝


언론을 만난 사연


아빠가 아들 피터 팬의 새 보금자리를 찾겠다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하자, '써니'가 까치 되어 깍깍거렸어요. 그 울음소리를 듣고 언론이 찾아왔죠.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날 세 곳에서 말이죠.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호소해 볼까? 상상한 적이 있지만, 엄두 내지 않았던 일입니다.


원래 그런 거 잘하지 못하는 성격 탓도 한몫했죠. 하지만, 실은 그것보다는 말 많고 험한 세상을 상대로 뭔가 구차해지고 싶지 않았답니다.


'부모가 끝까지 가정에서 책임지면 될 일, 왜 나라한테 살려달라 하지?' '내 세금도 나라 예산도 부족한데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거 아냐?' '당신만 특별해? 우리나라에 발달장애인이 수십만 명이라며?'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에 겁먹었습니다. 무서웠어요. 이미 오랜 세월 세상의 외면을 겪으며 살아왔고, 최근 1년 동안은 그 절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피터 팬은 역시 힘이 셉니다.


아빠의 체면 따위는 가볍게 잊게 해주더니, 초라하고 병에 지친 얼굴을 드러내는 용기까지 줬으니까요. 아름다운 청년으로 남고 싶다며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이별 소식을 알리지 않겠다던 아빠를, 기어이 마이크 채워서 카메라 앞에 세운 건 결국 아들이었습니다.


신문 인터뷰는 할만했습니다. 하지만 방송 촬영은 말 그대로 장난 아니더군요. 오죽하면 이런 걸 체험한 사람들이 왜 '방송국 놈들'이란 소리를 하는지 실감했다니까요. 하하.


지난 목요일에 방영된 MBC 실화탐사대 '안녕, 피터 팬!' 꼭지는 30분 정도였지만 촬영은 무려 8일 동안 이어졌어요. 아침부터 심야까지, 촬영팀이 철수해도 꺼지지 않는 침대 머리맡 카메라. 20년간 독거노인으로 겪었던 '말 상대 없음'의 외로움을 단숨에 채워내더라고요.


예상하지 못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촬영하면서 세 가지를 얻게 됐죠.


첫 번째는 제 현실에 대한 '실감'이었어요. 두 번째는 기억 소환의 이벤트 속에서 '변화'를 체감했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MBC가 우리 부자(父子)에게 안겨준 '선물'들입니다.



실감, '이게 내 현실이로구나'


카메라에 담긴 제 모습은 과연 여명 넘긴 환자더군요.


도끼병 환자들의 영원한 자뻑 소품이 욕실 거울이라 했던가요? 제게는 더 이상 아니더군요. 촬영감독께서 유난히 집착한 욕실 속 부자의 풍경 속에서 저는 영락없이 일찌감치 완성된 노인이네요. 시커멓게 말라버린.


'아, 사라져 버린 80년대의 청춘이여. 아듀~ 테리우스!'


아들은요? 역시나 빼어나게 수려한 청년이죠. 촬영팀도 첫 만남부터 인정했답니다. 우리 부자의 욕실 속 모습은 정말 선명한 흑백의 인종 전시장 수준이더라고요.


제 지난날을 제가 소개하고, 지금은 생의 마지막 숙제를 하는 중이라고 제 오늘을 설명하다 보니, '아, 진짜 그렇구나!' 싶어지네요.


딱히 한 단어로 설명해 드리기가 힘든데, 객관화라고 해야 하나? 아님 '이게 초현실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자각이나 실감이랄까요?


카메라 앞에서는 마치 남 일인 양 여전히 무심한 척, 센 척하기 힘들더라는 말입니다.


제가 다니는 아산병원은 공교롭게도 원래 저를 전담했던 그 시크하고 잘나가는 소화기내과 교수가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고, 진료 일정도 맞지 않아 섭외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전문의의 한마디가 필요하다는 PD께서, 다른 병원에 제 아산병원 차트와 영상을 잔뜩 들고 가서 소견을 묻는 씬이 있었죠. '이 환자 통증도 심할 테고, 호흡조차 무척 힘들 텐데... 잘 살아있다고요?' 하는 걸 나중에 모니터로 보면서 또 한 번 실감 나더군요.


정말 약속된 날을 넘기고도 아들 때문에 버티고 있다는 걸. '아산병원 교수만 돌팔이면 되는 게 아니구나, 온 세상 의사가 다 돌팔이여야 하는구나,' 그것도 알게 됐죠.


진지하게 실감하는 거 들킬세라 그때마다 웃어넘기긴 했다죠.



변화, '어라, 모든 게 바뀌어버렸네?'


PD가 물어요. 아들 홀로 키우던 20년 동안 둘이서 뭐했냡니다.


단번에 답했죠. 초등 입학 전엔 동네 산마다 돌아다니며 산행을 했다고. 당시 '자폐 치료엔 산행과 운동이 최고다!' 이게 진리였거든요.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는 마라토너. 같은 2000년대 초반,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유명해진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였던 김진호 씨. '인간극장'으로 사연이 소개됐던 가수 이상우 씨의 아들도 수영 유망주. 저 또한 같은 무렵의 따라쟁이였다고.


1년 넘게 매일 아침 아들과 산행을 했다고.


초중고딩 때는 휴일마다 미사리 뚝방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을 답했고요. 지칠 때까지 걷게 한 후, 이에 대한 보상으로 짜장면 아니면 돼지갈비의 외식을 즐겼다고.


이 선명한 회상은 '방송국 놈들'에 의해 단숨에 복구됐어요.


아니, 호흡까지 곤란해진 환자를 끌고 고덕산 산행과 미사리 뚝방길 산책을 한 시간씩 했다니까요. 물론 짜장면과 돼지갈비라는 강화제도 함께 재현해 줬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 부자의 기억 속처럼 아들에게가 아니라 저를 위한 거였고요.


『아들의 날들』 2화, 「아들의 아침」(바로가기)에 기록한 고덕산 산행을 20년 만에 고스란히 재현했습니다. 감회가 새롭더군요. 이후, 저와 아들의 활동 무대는 미사리, 하남, 양수리, 퇴촌 일대였기에 당시에는 1년 이상 매일 걷던 이 산길을 그 뒤로는 찾지 않았거든요.


정작 방영 때 보니 불과 5초 정도였지만 한 시간 넘게 꽤 오래 걸었어요. 두 주연배우는 같은데 세월은 딱 20년 후였고, 역할은 완벽하게 바뀌어 있더군요.


당시 7살의 어린 아들. 갓 40대를 시작한 젊은 아빠는 벤치만 보이면 엎어지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이었죠. '산행이 머리 건강에 그리 좋단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려면 우리 아들 운동 좀 하자' 그 기세로.


오늘의 아빠는 60대를 갓 시작했지만 일찌감치 세상과의 이별을 기다리는 숨 가쁜 노인이 됐고, 벤치만 보이면 주저앉았어요. 힘들어서.


그런데 27살이 된 혈기 왕성한 청년 아들이 그대로 두지를 않습니다. 사정없이 일으켜 세웁니다. '나하고 둘이 오래 살려면 우리 아빠 운동 좀 하자.' 딱 그 기세로. 그것참, 덧없기도 하고, 세월이 흐른 오늘의 현실이 또 실감 나기도 하고.


미안해서였나? PD께서 또 물어요. "20년 만에 아들과 같은 곳, 같은 산행을 하니 감회가 어떠세요?" 불만을 터트려야 하는데 그만 솔직하게 답하고 말았네요. 지나간 기억을 되살리는 감회보다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둘만의 산행.


"기회가 없을 뻔했는데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미사리 뚝방길의 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득하게 앞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둘이 걸었죠. 지난 세월 지나온 길, 앞으로 헤어져야 하는 길이란 느낌에 이 길의 시작도 끝도 잘 모르겠더군요.


이번에도 '일찌감치 노인'의 체력 한계 끝에 오랜 산책을 마쳤죠. 그 씬이 예고편 썸네일이 됐더군요. 산책 후에는 12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유독 미사리에 많은 짜장면집 중 한 곳을 들렀는데, 기억 속 12년 동안의 감회보다는 둘만의 마지막 미사리 외식? 역시나 그 느낌이었다죠.


아무튼 고마웠어요. M.B.C.



선물의 시작, '나는 글 잘 쓰는 아빠'


저는 촬영 전 두 분의 작가와 전화 인터뷰를 먼저 했습니다.


첫 작가분과 한 시간 넘게 통화 후 그러시더군요. 저녁 회의를 통해 방영 여부가 결정될 거라고. 그런데 채 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고참의 아우라가 물씬 느껴지는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3월 12일 방영이 확정됐다네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저희가 작가인데... 참 글을 잘 쓰시네요." 제가 "브런치를 보셨나요?" 했더니 다 봤답니다. 아주 꼼꼼하게. 제가 썼던 글 대목들을 줄줄 읊어요.


바로 다음 날 일찌감치 촬영팀이 도착했는데 콘티를 슬쩍 보니 제목이 '안녕, 피터 팬!'입니다. 『아들의 날들』 4화(바로가기)의 제목이죠. 제가 4개월여에 걸쳐 기록했던 90여 화의 글을 거의 다 봤다더니, 제 회고록 3부를 바탕으로 콘티가 짜여 있더라고요.


20년 만의 글쓰기인 데다, 댓글도 '좋아요'도 거의 없는 관심소외지대였던 꼭두의 브런치 페이지. '한때 글빨도 이젠 끝났는갑네' 하고 있었죠. 나중에 한두 명씩 제 글을 본 지인들로부터 '너 좀 쓰더라.' 하는 소리를 듣긴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덕담이려니 하는 느낌이 더 컸었는데, 전 그만 교만해지고 말았답니다. '글 쓰는 게 업(業)인 기자와 작가들이 인정했다. 난 글을 잘 쓰는 걸로 하자!' 하하.


그래도 제게 작가라는 말은 하지 마시길요. 제가 생각하는 작가는 그게 부업일지라도 업이 돼야 하고, 그게 얼마일지라도 계속할 글쓰기로 돈을 벌겠다는 뜻이 확실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가문의 마지막 기록 오직 한 권만 쓰기 위해, 꼭두라는 시한부 닉을 정해 브런치라는 곳에 작가 신청을 했고 그 일을 하고 있을 뿐이죠. 그나마도 완성할 수 있을지 아슬아슬한.


프롤로그에서 고백한 것처럼, 고리타분한 충청도 종가, 마지막 3대에 걸친 세 사람이 한집에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저와 평생을 함께 산 어머니와 5대 장손인 저에 이어, 우리 가문 마지막 장손인 6대 장손 아들을 한 명에게라도 더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했던 책의 제목이죠.


『세 사람의 날들』


솔직한 마음으로는, 훗날 어쩌다 제 피터 팬을 본 누구인가 "네가 그 집에서 살아 남은 그 마지막 놈이로구나! 내 잘 지켜보마." 말해 주고, 그렇게 제 아들을 지켜봐 주고 살펴 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마치 브런치 룰처럼 따라온 작가라는 호칭이 영 낯설기만 해요. 작가들의 SNS라는 브런치, 자연스럽게 서로 작가로 호칭하는 모습이 참 독특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니죠. 글 제법 쓰는 걸로 마치는 게 황송할 따름입니다.


'글 잘 쓰는 아빠'라는 립 서비스를 1호 선물로 주신 작가님, 고마워요.


실화탐사대가 방영된 3월 12일, 미사리를 뛰어다닌 피터 팬


선물은 진행형, '실화탐사대의 유산이 곳곳을 공습 중'


아들이 보여준 뜻밖의 모습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네요.


진작 말씀드렸죠. "잘생긴 놈답지 않게 아마 촬영팀을 낯설어할 거예요. 거의 모든 자폐아처럼." 연출 PD가 그러시더군요. "아드님과 친해지려면 뭐가 좋을까요?"


"먹거리죠. 피터 팬은 초코홀릭이에요. 초코칩 한 무더기, 배스킨라빈스의 초코 아이스케익도 좋지만, 집 앞 카페 투썸의 티라미수 홀케익 시루떡 버전이면 끝납니다."


그 케익을 시작으로 명일 먹자골목의 돼지갈비, 미사리의 짜장면과 양장피를 선물로 받더니 급 친해지더군요. 미사리에서는 아예 제 손을 놓고 조연출 여 PD분과 손을 잡고 걷더라니까요.


실망했어요. 낯선 어른을 피해야 하는 피터 팬의 본분을 그깟 먹거리 선물 공세에 망각하다니. 미리 이해를 부탁한 아빠만 머쓱해지고 말았죠. 어이없는 놈.


방송국에서 전해진 소식도 빠트릴 수 없군요.


제작진에게 시설 소개 연락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네요. 고마운 일입니다.


신문에 이어 방송까지 이어지며 뭔가 후속 보도도 있으려나 봅니다. 제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 화두 '탈시설'을 포함해서 '장애인 복지'의 현주소를 둘러싼 보도나 방송.


저는 참여할 수 없지만, 앞으로 저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할 부모님들 위해서 이것 또한 고마운 일이 되겠죠. 저야 그만 시간이 당겨졌지만 지금 청소년기 이상의 자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다들 겪으셔야 하는 일이니까요. 길게 봐도 20년 후에는요.


꼭 이루어져야 할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다른 신문의 연락, 다른 채널의 모금 방송 출연 섭외도 있었어요. 보험 제외로 못 맞게 된 항암 주사도 이미 몇 달 전 일이고, 가빠지는 호흡과 아들 잠자리 찾을 때까지 아직은 몇 달 더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혹하기도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죠.


'결국 돈이냐?' 소리 나올까 또 무서웠고 그렇게까지 구차한 모습 남기고 싶진 않더군요. 다행스럽게 아들도 거기까지는 등을 떠밀지 않았고요.


목요일 방송 때, 긴장했던 것치곤 밋밋하구나 싶었습니다. 그저 신파로 만들지는 말아 달라는 제 부탁을 배려해 준 편집 덕분이겠거니 했지만, 제 이야기라 그런지, 들인 품이 아까워 그런지 허전하단 느낌까지 있었죠.


실화탐사대에서도 드물게 띄운다는 귀곡산장 드론샷도 사라지고, 촬영팀도 들인 노력에 비해 아쉬워하지 않으려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선물의 본격적 공습은 어제 토요일이었습니다.


갑자기 꼭두 페이지에 방문과 응원이 이어지네요. 폰에 브런치 알람이 있는데 새벽부터 소란하기에 열어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1년 그토록 외면하던 세상 사람들을 원망했었는데, 그동안의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송구했습니다. 고마움에 앞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과 소통이란 걸 시작하면서 20년간의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게 된 것도 행복했는데, 이제 내 편이 생긴다는 느낌, 아니 이전부터 내 편이 있었다는 느낌에 든든함과 따뜻함이 쌓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힘 더 내고 잘 버텨서 기어이 제 피터 팬 살리고야 말겠습니다. 아들의 내일을 찾아야 하는 혼란스러운 선택과 고민이 이어질 때면, '아들이 행복해야 한다'로 결정하던 마음을 다시 찾겠습니다.


누군가 타박하시면 자신 있게 답하겠습니다.


'부모가 끝까지 가정에서 책임져라.' 하시면 대한민국 헌법으로부터 시작되는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존권은 국민의 가장 원초적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하겠습니다.


'세금도 예산도 부족하다.' 하시면 장애인 복지를 위한 의무적 지출은 전 세계 모두가 하고 있다고, OECD 국가라는 이 나라가 아직 평균에도 못 미친다고 답하겠습니다.


'당신만 특별해?'라고 하시면 저와 같은 상황 모두가 특별하다고, 저 혼자만을 위한 복지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고 크게 외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집 마당 백목련이 잎사귀 엄호 하나 거느리지 않고 오직 하얀 진심 하나로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입니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던 겨울을 견뎌낸 피터 팬과 저에게, 가진 것들 다 태워 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줄 알았던 우리 부자에게, 선물처럼 많은 분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삼한사온도 지키지 않았다는 잔인했던 겨울이 끝나갑니다.


모두가 많은 분의 선물 덕분입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이 선물 받아 들고 이제 새봄을 맞는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봄 맞이, 곧 시작합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