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를 찾아서」

새봄 만들기 첫 번째

by 꼭두

「네버랜드를 찾아서」

새봄 만들기 첫 번째


감사표(感謝表), "모두가 왕이십니다!"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사례(當選謝禮)'를 대필하는 마음으로 왕이 되신 모든 분께 삼가 감사 인사 올립니다.



저는 댓글성애자입니다. 변태죠.


뉴스를 볼 때도 헤드라인 찍은 후 댓글 먼저 봅니다. 그러고 나서야 기사를 볼지 말지 생각할 정도죠. 20년간 아들과 둘이 살면서 터득한 가로막힌 세상과의 소통법입니다.


작년 11월 5일, 우리 가문 마지막 기록이라며 역시나 20년 만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내심 설렜던 게 뭐였을까요? 제게도 내려질지 모를 댓글 세례의 목마름이었다니까요. 콩닥콩닥.


하지만, 관심소외지대의 무명 글노인에게 띄엄띄엄 찾아오는 방문객들은, 댓글의 축복까지는 아직이더군요. '독거 세상 밖으로 나와봐야 그늘은 똑같구려' 했을 뿐, 마음을 비워야 했죠.


"원래 그림도, 음악도, 그리고 글조차 사후에 명작이 되는 법."


"생전에 팔아본 그림은 단 한 점뿐이었다는 가난했던 반 고흐.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 글 『심판』도 사후가 돼서야 신화적인 초현실 서사가 됐고, 그제서야 지독히 고독했던 무명의 글쟁이가 거장이 됐다지? 내 회고록도 미필적 미완성 장편으로 남길 테야."


"어이, 피터 팬? 아빠의 유산 받아라!" 하하.


턱도 없는 혼잣소리만 했죠.


저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제게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어요.' 하며,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개씩 글쓰기에만 분주했답니다. 누가 '1962-2027' 뜻이 뭐냐고 묻기는 했어요. '그때까지 글 쓰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는 게 전부였죠.


나중에야 알게 되긴 했어요. 브런치라는 곳.


승인된 작가 수가 무려 10만여 명이고, 하루에만 최소 1,000개 이상의 글이 올라오지만, 관심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그림자 되어 묻혀가는 글이 80%가 넘는다는 걸. 빈부 격차 제대로인 엄청난 브런치 자본주의.


당연하게도, 세상 안이든 밖이든 한결같은 나홀로 귀곡산장 운명의 가여운 꼭두.


그래도 글 쓰기 시작 1주일 만에 첫 팔로워가 나타나 주셨고, 기다림 끝에 포기했던 역사적 첫 댓글은 글을 20개 넘게 쓰고서야 볼 수 있었어요. 눈물 맺혔죠.


연재 시작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예고 없이 나타난 써니.


발달장애 세상의 파워 인플루언서라는 그녀가 SNS 삐끼를 날리자 받아보게 된 첫 응원. 자본주의 숫자가 함께 표시되는 격려.


기대도 예상도 전혀 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눈물 터졌죠. 이때부터의 방문객에는 저와 같은 생을 살아온 분들이 나타났기에.


아들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비장애인들에게 '자폐의 이해'를 청하던 제 글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묘한 소명을 느끼기 시작한 때입니다.


아들 살길 찾겠다는 '1차 한국전쟁'이 패전으로 끝났던 때이기도 하고요.


제2차 전선의 시작, "안녕, 피터 팬!"


'독이 바짝 오른 코브라'를 선언하며 '2차 한국전쟁'을 준비한 지 3주쯤 지났으려나?


마침내 시작된 전선을 따라 어렵게 결정한 지면 인터뷰와 미디어 촬영.


하지만, '긴급요건 아닙니다.'라는 차가운 말을 듣고는 멍해졌죠.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대로 돌아설 수 없었기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1인시위라도 해야 하나?' '내친 김에 복지 행정의 총 지휘자라는 보건복지부로?'


그게 가능한 일인지를 심각하게 설계하던 어느 날 저녁 9시.


MBC 실화탐사대 본방이 지구의 모든 분 앞에 모습을 드러냈죠.


불과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공습을 넘어 폭격이 쏟아진 곳은 돌고 돌아 브런치였습니다. 처음, 제보를 받은 실화탐사대가 꼭두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내린 후 촉박하게 방송을 결정했던 그 '회고록'이 있는 곳.


브런치 속 꼭두의 페이지.


보시죠.


지난 14일의 첫 공습에 이어, 17일부터 사흘간 꼭두에게 쏟아진 꿈 같은 폭격의 기록을.



왕이 쏟아내신 댓글 세례의 폭격, '울음과 울림'


저는 처음부터 실화탐사대에 부탁했어요.


작가분께서 방송 제목에 적으셨듯 주연은 피터 팬이고 컨텐츠는 살길 찾기라고. 아빠는 최소한의 얼굴과 이름뿐 나머지는 모두 가려달라고. 피터 팬의 목소리를 대신해야 하는 나레이터 역을 벗어나 아빠의 신파가 돼서는 안 된다고.


왕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한 어설픈 바람이었을까요?


보시는 '꺽은 선'처럼 폭격의 정점은 18일입니다.


18일 하루에만 27,865명의 왕이 '브런치'와 '꼭두'를 찾아내서 저 검색어들을 만드신 후, 꼭두의 문패와 저 글의 주소를 포착하고는 화력을 집중하셨습니다.


나홀로 마음으로 사후를 기약했던 댓글이 제 생의 하루에만 1,000개를 훌쩍 넘겼어요.


글귀 하나하나 과분하지 않은 단어가 없습니다.


'황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조아린다 해도, 제가 받는 게 허락될 정도의 찬사와 격려를 넘어섰고, 제가 지닌 것들로 보답이 가능한 일인지 아찔하기만 합니다.


댓글 기록 1위 '펑펑'. 영상을 보다 눈물지으셨다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요. 글자마저 비슷한 '울음'과 '울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울음이 나더니 울림이 오고, 울림이 오더니 울음이 된답니다. 왜 이리도 송구할까요.


2위는 '미남'. 한마디로 '잘생겼다!' 물론, 피터 팬에게 매겨진 채점입니다. 이건 잘 보셨네요. 하하.


3위는 '기적'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왕의 포스가 묻어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선뜻 힘을 내기에는 왕의 교시에 담긴 명령이 무겁습니다.


자매품으로 꼭두에게 붙여주신 이름표도 꽤 있어요. 주연배우 피터 팬이 아이돌 되는 거야 막을 길 없겠지만, 나레이터를 향한 말씀들은 집계에서 뺐습니다. 부끄러워서요.


순위와 관계없이 함께하고 싶은 인상적인 번외편 몇 개만 보실까요?



꼭두에게 보낸 '첫 후원이 영광'이라는 고등학생분. 또 한 분의 피터 팬 엄마가 제 피터 팬에게 건네온 인사 '멋진 피터 팬에게'. 108배를 100번 한 후원금을 들고 축복해 주러 오신 분까지.


눈이 시려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넘나드는, 신기하고 단호한 왕의 포스가 이어지네요.


봄날 꽃구경은 물론이고 가을 단풍까지 사계절을 기록하라는 명령.


'항암 주사=피터 팬 주사'라는 명령.


'아타카마' 사막에 온통 가득 피어난 꽃처럼 네버랜드에 노란 꽃이 만개하기 직전이라며 2050년까지 글 계속 쓰라는 명령.


해마다 생일이면 오히려 꼭두에게 응원의 생일선물 가지고 올 테니 그때마다 새 글을 보게 해달라는 명령.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새로운 기록, "여러분이 왕이십니다"


작가들의 SNS라는 브런치.


폭격 전 50명이 채 되지 않던 꼭두의 팔로워가 단숨에 1,000명을 넘어서더군요. 무명 글노인이 브런치의 인플루언서 타운 초대장이라도 받은 느낌입니다. 그것도 생전에.


첫 경험은 저뿐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어린 학생분부터 나이 지긋한 부모님까지, 성별과 지역과 직업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 수많은 분이 찾아왔습니다. 낯선 이곳을 찾아온 것도, 누군가에게 격려의 댓글을 남기고, 그걸로도 성에 안 차 후원까지 하는 것도, 살면서 처음이라고들 하십니다.


'좋아요'와 '팔로워'를 누르기 위해, 심지어 유료 발행글 하나 없는 무늬만 '멤버십'을 구독하기 위해 회원가입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물어봤죠.


"그런데 말입니다. 브런치의 10만 작가 중 1,000명 이상의 구독자가 있는 분의 비율은 한 자릿수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보통 1-2년 이상이 걸리죠.


그런데 이 사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개월 정도랍니다. 게다가 불과 며칠 만에, 50명 미만이던 구독자가 단숨에 1,000명을 넘었습니다. 10년 넘는 브런치 사상 유례가 없는 걸 넘어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오랜 세월, 세상과 소통 없이 살아왔기에 무엇 하나 알려진 것 없는 초로(初老)의 무명 사내가 말입니다."


정작 현실감 없는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하나의 글에 단 3일 만에 후원금이 저렇게 쌓이는 걸 내가 본 적이 있나? 문득 도올 김용옥님이 떠오르긴 합니다. '또 다른 경우?'


김상중씨? 한 번만 더 부탁드려요.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에서 특정 글에 수천만 원이 몰린 사례는 두 번 있었습니다. 유튜브의 슈퍼챗이나 크라우드펀딩처럼 직접 계좌를 걸어 놓고 모금을 요청하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헌법 위반이라고 판결합니다. 조선시대 이래로 600년 전통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어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자 김용옥 교수는 이 재판을 통박하는 두 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연이어 기고합니다.


「가련하다, 헌재여!」 「그들은 왜 이런 바보짓을 했을까?」


사흘 만에, 네티즌들은 이 글에 자발적 원고료 1.000만 원을 후원합니다. 언론 사상 유례없는 대사건이라며 연일 오마이뉴스 기사로 장식되죠. 외신에서도 화제였고요. 후원이 2,000만 원을 넘기자, 파이낸셜타임즈 1면 기사로 보도될 정도였습니다.


2024년, 윤석열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합니다. 이번에는 사직 인턴의 류옥하다씨가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글, 「'비현실적'인 의대 증원 정책」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 이때의 원고료는 7,000만 원을 넘기며 단일 기사 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하죠.


자발적 후원의 세 번째라고 할 수 있는 '안녕, 피터 팬!' 경우를 볼까요?


네티즌의 마음이, 이전에는 오마이뉴스의 '원고료' 시스템을, 이번에는 브런치의 '응원하기' 시스템을 만났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국가 최대의 화두였던 '수도 이전' 논의 현장에서 이미 명망 인사인 김용옥 교수의 글은 오마이뉴스 헤드라인에 대대적으로 실린 기사였고, 류옥하다 전공의의 글은 온 나라를 흔들었던 의대정원 정책을 놓고 첨예한 갈등으로 맞섰던 의사 집단의 조직적 후원이었습니다.


이번 경우는 방송을 본 시민들이 한 무명 출연자의 흔적을 추적해 좌표를 찾아낸 후, 단 며칠 만에 쌓아 올린 아주 특이한 후원 사례입니다. 기간으로도, 금액으로도 유례가 없고요. 그는 후원을 요청한 적도 없고, 본인의 글 주소를 어디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왕이신 이유입니다.


과분한 격려와 응원, 정말 고맙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물 어린 감사표(感謝表)를 길게 써 올린다 해도, 그걸로 마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전해주신 뜻이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왕께서 교시(敎示)한 명령(傳旨), "가라! 꼭두"


제일 먼저, 제가 글로 기록한 제가 걸어온 삶과 마음을 인정해 주셨다 생각하니 그저 벅차오를 뿐입니다. 온몸으로 받겠습니다.


하지만, 후원은 또 다른 문제죠. '받아도 되는 걸까?' 고민했습니다. 저 혼자 특별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같은 어려움에 힘겨워하시는 많은 분을 위해 쓰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언젠가는, 이 땅의 '수많은 피터 팬이 함께하는 영원한 네버랜드'를 세우고 싶어집니다. 한국의 '로렌조 오일'을 만들고 싶어집니다. 압니다. 아직은 꿈이라는 걸. 하지만 이것도 다 왕들의 책임입니다. 제게 너무 심한 뽐뿌질을 하셔서 그만 이런 먼 꿈까지 꾸고 있으니까요. 하하.


그런데, 역시 왕이십니다.


어느새 왕들은 독 오른 코브라를 반려 도마뱀으로 바꾸셨어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온몸에 독을 채워 똘똘 무장했던 나홀로 독사가 그만 독이 다 빠지고 말았답니다.


고백합니다.


그 원망의 절정으로 완성한 하늘님, 그리고 하느님과의 법정기록,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제대로 된 맞짱'. 무죄한 욥이, 내가 왜 이 잔인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 한번 따져보자며 요구했던 항소법정. 채 완성하지 못했던 욥을 대신해 집행하려 했던 제 법정일지는 언제 올릴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지금 그 비장한 출사표, 더는 없습니다. 덮겠습니다.


제 항소법정을 포기시킨 수많은 왕께서 교시하십니다.


기적을 만들라 하시네요. 당장 피터 팬을 위한 새 네버랜드를 만들어내라 하십니다. 그 기적을 만들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그 기적을 아주 오래도록 기록하라 명령하시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미 신하가 된 저이기에 왕이 명령하시는 모든 것, 그대로 다 따르겠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절 말로, 이 많은 왕께서 제 '빽'이 되고 '뒷배'가 돼 주시겠다는데, 저는 그저 그거 하나 믿고 충직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신, 책임은 지셔야 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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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사표(出師表), '저는 네버랜드로 떠납니다'


왕의 명령 하나를 시작했습니다.


사흘간의 폭격을 겪고 난 다음 날 아침, 아산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넉 달 넘게 중단됐던 항암,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들과 둘이 지켜온 에덴동산이 피터 팬의 영원한 네버랜드일 줄 알았지만, 새 네버랜드를 만들어야만 하는 지금입니다.


제가 집사(執事)를 해야 할 때까지는 버텨야겠습니다. 굳이 숫자로 따지자면 최소 몇 개월 이상은 필요합니다.


비장한 출사표를 만들고 결기를 다지며 솔직히 제 몸은 그냥 냅두고 있었습니다. '알아서 버티겠거니' 하면서. 그런데, 실화탐사대 화면으로 새삼 보니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더라고요. '어쩐지 요즘 호흡이 부쩍 가쁘더라니.'


그래서 어제는 또 다른 복수천자 전문병원에도 다녀왔습니다. 늘 다이어트로 고생하시는 분들, 저 부러워하셔야 합니다. 그저 누운 채로 불과 2시간 만에 5kg을 덜어냈다지요.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고 정말 정말 오랜만에 허기도 느꼈지만, 그 대신 힘이 너무 없더군요. 일순간 내공이 모두 빠져나가는 게 이 시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어제 올려야 했던 이 기록을 오늘에야 올립니다. 송구합니다.


하지만 약속드린 대로, 코브라의 출사표와 경과를 기록했던 한 달은 덮고, 지금부터는 실시간으로 모든 걸 기록합니다. 불과 얼마 전, 한 달의 간격을 두고 올려드린 나홀로 패전의 복기 따위 더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왕들의 승전 기록만 있습니다.


연재일인 화요일만 기다리지 마세요. 명령이 이행될 때마다 날짜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올리겠습니다.


앞집 마당 백목련이 이틀 전 저녁 마침내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마치 새봄의 신호탄처럼.


새봄 맞이가 아니고 새봄 만들기입니다.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모든 사건이 터지고 있습니다. 곳곳의 왕들이 제 '빽'이 되어 나타나 힘을 보태주십니다. 오늘 현재 그 사건들, 그분들이 모두 모인 곳은 단 한 곳입니다.


2026년 3월 29일, 일요일.


저는 갑니다.


반도의 품속 '이슬푸른마을'로 갑니다. 산맥 자락이 요새처럼 감싸안은 땅, 깊은 호수와 맑은 바람이 넘치는 땅, 희망이 이슬 되어 풀잎마다 맺힌 푸른 마을을 찾아갑니다.


청년 김민기가 해 뜨는 묘지 앞에서 만들었다는 노래, '아침이슬'을 부르며 갑니다. 붉게 타오르던, 찌는 더위의 시련을 뒤로 하고 갑니다. 거친 광야에서 겪어야 했던, 나홀로 서러움을 모두 버리고 희망의 푸른 마을로 갑니다.


목련이 하얀 비명을 지르며 제 몸을 터트렸습니다. 이제 나의 피터 팬도 저 이슬푸른 네버랜드에서 오직 제 이름 하나로 단단하게 피어날 차례입니다.


새봄 만들기, 지금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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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