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의 새집, 행복의 시놉시스

새봄 만들기 두 번째

by 꼭두

피터 팬의 새집, 행복의 시놉시스

새봄 만들기 두 번째


왕의 교지(敎旨) "너를 네버랜드의 집사(執事)에 봉(奉)한다"


왕들께서는 저를 네버랜드의 집사로 책봉하셨어요.


피터 팬과 둘이 살아온 서울 도심 속 에덴동산.


기꺼이 독거노인 되어, 홀로 그 귀곡산장을 지켜낸 젊은 날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지만, 이제는 피터 팬이 영원히 머물 행복한 네버랜드를 찾아내라고. 그리고 남은 힘이 다할 때까지 그곳의 집사로 봉직하라고.


모든 왕의 염원이 담긴 '기적'을 만들라 명하셨습니다. 교시(敎示)에 담긴 '기적의 명령'은 모두 세 개입니다. 순서까지 정해주셨죠.


첫째, 건강한 일꾼이 돼라. 둘째, 그 힘으로 네버랜드를 건설하라. 셋째, 그 모든 여정을 오래도록 기록하라.


교시가 떨어지자마자 아산병원으로 갑니다. 교서(敎書)의 첫 줄을 기록하고 집행하기 위해. 순식간에 독사의 껍질을 벗고 환골탈태한 충직한 신하 맞습니다.


한 달 전, 진단서 최신버전을 발급받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서던 날. 참 허망했죠.


"그 교수님, 그만두셨는데요. 어디로요? 그건 저희도 몰라요."


지난 1년, 아마도 내 잘못된 여정 때문에 함께 고생해야 했던 그 시크한 교수. 가난한 독거노인을 일약 아산병원의 VIP로 만들어 준 사람. 처음 진단 후 흘려보낸 넉 달의 골든타임이 영 아깝다면서 입맛을 다시던 분.


항암주사 못 맞게 되자,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간동맥에 카테터를 넣어 암세포와의 탐색전을 가늠해 보던 그 교수.


졸지에 집사 잃은 마당냥 된 채, 허전함을 누르며 쓸쓸히 나와야 했던 그 진료실. 처음 보는 교수께서 앉아 계십니다.


"저, 작년 11월에 마지막 맞았던 항암주사 다시 맞으러 왔습니다. 지금 되죠?"


"그래요? 그런데 그게... 맞을 만한 몸인지 먼저 정밀검사부터 해야..."


저는 오늘도 시간이 없습니다.


"1년간 저를 치료했던 담당 교수께서 그러셨어요. 초음파, CT, MRI 다 추적해 보니 확실히 제 몸에 맞는 항암이라고. 다시 맞을 수 있다면 빠를수록 좋다고. 제 차트에 기록돼 있을 텐데요."


다음 주면, 네버랜드에 가야 합니다. 답사가 아닙니다. 아마도 입주입니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분에게 다시 졸랐죠. 어쩔 수 없이 이분께도 차트에는 없을 것 같은 제 형편을 짧게라도 말씀드려야겠네요.


"제가요. 꼭 마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갑자기 쏟아진 별똥별 쓸어 담아 가져왔습니다. 하루가 급하다니까요."


"그게요. 진열대에 있는 물건 그냥 집어 오듯 되는 일이 아니에요.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데스크 가세요. 간호사가 최대한 빠르게 일정 잡아줄 겁니다."


딱 1주일 후로 날 받았네요. 고사장 배정받은 수험생이라도 된 기분입니다.



나홀로 피크닉 "사계(四季)는 축복(祝福)이다"


오랜만의 아산 소풍날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참 한가해집니다. 익숙함을 넘어서는 편안함이랄까요. 내가 마지막으로 내릴 종착역이라 생각해서일까?


문득 짚어보니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인생전역 명령서」를 받아 들던 날 전야에 짧게 적었던 글이 있었죠. 폰을 열어보니 아직도 남아 있군요.


2025년 10월 1일

나홀로 피크닉


아산 입원 3일째 아침.


어제는 종일 응냉했는데, 오늘은 볕도 쨍하고 가을해가 참 밝고 따뜻하다. 어제는 온갖 검사로 참 길고 힘든 하루였는데, 오늘은 그저 결과를 보고 듣고 앞으로의 치료가 결정되는 날이라 한가로운 하루이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한 어제였다. 이게 혹 말기 암 환자 특유의 예민함일까 싶어 머리로 다스리려 애썼다. 검사 결과에 대해 교수로부터 비관적인 소견을 듣고, '내 소망이 다치기라도 한 걸까?' 싶기도 했다.


전해질 불균형이 올 정도로 처방 한계에 이른 이뇨제 투약. 어느덧 55일째인 알콜리즘 노년의 철저 금주. 큰 생활 스트레스가 된 엄격 저염식. 그 모든 오더 이행에도 불구하고 워낙 독한 암세포를 만났단다.


전이 준비 완료를 뜻하는 혈액 침범이 시작됐고, 전이가 가장 흔한 폐와 뼈를 포함해 암의 성장과 전이의 최종결과를 봐야겠지만, 4월 확진 판정 때 1cm였던 간암 세포가 벌써 3cm가 됐고, 이제는 한 개도 아니란다.


14일로 예정했던 색전술을 포함해서,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아직 갈피 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방사선과 색전술을 한 묶음으로 하는 목표 치료가 여전히 희망이라는 이야기.


마지막 숙제를 마칠 그날까지만 버텨내기. 참 힘든 일이란 게 실감난다.


암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전이고, 어쩐지 이번 입원 때 느낌이 영 좋지 않더라니 실망이 컸나 보다. 급기야, 이 소식을 같이 듣던 간호사한테 넋두리를 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보였다.


이래서 내가 처음 판정 때 일찌감치 치료를 안 받겠다 했던 건데.


새삼 30년 전, 아버지가 마지막 2년 동안 그러셨듯, 여명을 얼마나 늘리겠다고, 삶의 끝자락에 서서 자기 시간 하나 없이 고단하고 고통에 찬 환자로만 살다가 가야 하나 싶기도 했고, 복수 관리와 저염식에 대한 의욕도 일순 사라졌다.


셀프 저염식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으면, 입원하며 다시 먹게 된 병원 밥상이 그렇게 반가웠는데, 그것도 그만 시들해지고 말았다.


따뜻한 볕을 맞으러 병실을 나섰고, 아산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라는 베즐리 빵집을 찾았다. 진료가 아니라 빵을 위해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소문난 베이커리.


교수가 마땅치 않아 하기에 즐기지 못했던 빵 몇 조각,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는 나 혼자 정원에 앉아 뜬금없는 가을 피크닉을 시작했다.


소보로 한입, 페스츄리 한입,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모금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너무 행복해서 소리 내서 웃을 뻔했다.


어제의 실망과 낙담, 앞으로의 선택에 대한 불안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 큰 위로로 기억될 만한, 볕 좋은 가을날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나홀로 피크닉이었다.


사계는 축복이다.



그때부터 나홀로 피크닉은 볕 좋은 가을날뿐 아니라, 눈 내리는 겨울바람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만의 행복한 이벤트가 됐다지요.


아메리카노 한 잔. 두툼한 소보로가 거북 등껍질처럼 감싸고 있는 보름달만한 모카소보로 한 조각. 두 번에 나누어 먹어도 푸짐한 아산 피크닉장의 오찬 정식.


왜인지 모를 편안함에 설레는 아산병원 소풍날마다 늘 저를 기다리고 있는 그곳.


장례식장 앞 작은 정원의 소박한 나홀로 차림.


행복과 존엄을 인테리어하는 '큐레이터(Curator)' 집사


오늘은 다릅니다. 겨울바람 속 피크닉이 아니에요.


오늘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새봄의 피크닉입니다. 봄날이 다가올 때부터 매일을 축복하고 있는 백목련이, 꽃망울 터트린 지 며칠 만에 벌써 만개한 모습으로 오늘의 시작을 배웅합니다.



지난 1년, 쉼 없이 이어졌던 검사와 바늘 찌르기로 혈관이 제일 먼저 늙었다 했습니다. 조영제를 넣기 위한 큼직한 CT 검사 바늘이 점점 더 아파왔었죠. 그런데 몇 달 동안의 치료 중단 덕분인가? 혈관도 다시 젊어졌나 봅니다.


작은 대롱이지만 족히 열 개는 넘어보이는 채혈 통을 순식간에 채웠습니다. 추가의 검체 채취까지 빠르게 해치운 후 오늘도 베즐리로 갑니다. 피크닉 순서니까요. 오늘따라 더 푸짐해 보이네요.



익숙한 모카소보로를 집어 들고 피크닉 정원으로 갑니다. 가는 곳마다 저를 반기는 목련이 이 길목에서도 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1주일 만에 다시 만난 그 교수님. "그럭저럭 맞을 만하네요." 검사 합격입니다. 주사실로 올라가도 된답니다.


오랜만입니다. 남녀노소가 묘한 긴장감 속에 함께하는 항암주사실. 손바닥보다 작은 얄팍한 저 주사 팩 하나가 수백만 원이라니, 심평원의 야속했던 심사를 별똥별 한 바구니로 복수한다는 게 참 통쾌합니다.



오늘의 병원 투어는 하루 종일이었어요. 어느새 봄날의 해가 저물고 있는데, 이번에는 천호동의 소아청소년 정신과로 갑니다. 아들 네 살때부터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 함께 한 병원입니다.



지난해 끝자락, 12월의 어느 날. 오래 헤맨 끝에 겨우 김포의 한 시설로 떠날 수 있게 됐다며 한 달분의 약을 처방받으러 갔던 그날.


"아산 의사분 말대로라면, 이제 원장님과 한두 번 더 만날 수 있으려나요. 오랜 세월 참 감사했습니다."


복잡한 눈빛으로 저를 말없이 쳐다보던 그분. 숨을 고르며 일어서는 저를 천천히 안으십니다.


"제 마음이 참... 힘드네요. 그곳에서 아드님이 잘 지내게 되기를 빕니다."


처방전을 받고 진료비를 내려는데, 친숙한 수간호사분이 역시나 쓸쓸한 표정과 함께 그냥 가시랍니다. "원장님이 그러시네요. 아버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게 고작 이거뿐이라며 많이 미안해하십니다." 하면서.


입소 불가를 통지받은 아들이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며, 다시 아들의 약 처방을 받으러 갔던 날. 저만큼이나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그 원장님이 마치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말합니다.


"이번엔 두 달분이라고요?"


"네, 이곳에서는 아들이 최소 두 배 이상은 버텨줄 거 같아서요. 그곳에 전달할 처방전도 그곳 분들이 알기 쉽게 부탁드려요."


수간호사께서 저보고 또 그냥 가시랍니다. 몸 힘드실 텐데 어서 집에 가서 쉬시라면서.


못 쉽니다.


아들 손을 잡고 네버랜드로 떠날 날이 불과 이틀 앞입니다.


집사는 욕심이 많아요.


그저 '스튜어드(Steward)'만으로는 만족 못 합니다. 아들의 행복과 존엄을 설계하는 '큐레이터(Curator)'까지 할 겁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들을 책임질 새 옷과 살림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챙긴 후, 피터 팬의 새 방에 붙여놓을 이름표를 만듭니다.


다음 날, 아들과 함께 흐뭇하게 문패를 쳐다보다 문득 가슴을 치는 생각.


"어? 우리 방에는 뭐를 남기지?"



20년 만의 피터 팬 스튜디오


우리 부자가 27년 동안 함께 잠들던 에덴의 방에 남길 게 없습니다.


아들과 함께 한 우리 부자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걸 이제야 실감합니다. 그저 단 둘뿐이었기에 그게 누구든 찍어 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6대 장손 돌사진 찍던 날, 스튜디오에서의 기억이 아련합니다.


다른 아기들은 두 시간이면 끝나는 촬영을 세 배 정도의 시간을 들여가며 간신히 마쳤던 아들입니다.



결국에는 지쳐 잠든 아들의 모습을 찍는 것으로 그날의 촬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죠. '이거는 그냥 늦되는 게 아니다.'를 실감해야 했고, 본격적인 소아정신과 검사를 시작하게 됐던 그날의 기억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초등학교 입학 며칠 전, 아홉 살이 돼서야 힘겹게 이루어 낸 아들의 취학을 자축하면서 두 번째 스튜디오 촬영을 했습니다. 늦게나마 고백합니다. 솔직히 이때는 제가 이만큼 혼자 해냈다는 자부심을 스스로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이 정도면 장한 아빠 아니냐며 자축하고 싶었던 거죠.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아들은 한 번도 스튜디오에 가본 적이 없고, 어디에서든 우리 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게 영 허전하네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의 날입니다.


네버랜드에 입주하게 될 내일이, 이번에는 진짜 생이별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샛노란 꽃다발을 안고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곳에 급히 전화했습니다. "내일 혹시 아들과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을까요?" 떠나면서라도 찍으려 했죠.


"이를 어쩌나. 내일은 지방 촬영이 잡혀 있어서요."


힘없이 폰을 내려놓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오늘 저녁 늦게라도 오실래요? 원래 저희는 아이들 때문에 퇴근 시간을 지켜야만 하는데, 집에 가서 아이들 데리고 다시 올게요."


기적처럼 기회를 잡았네요. 5분 속성으로 부랴부랴 아들 머리 자르기를 마쳤습니다.


20여 일 만에 다시 만난 사진사 내외분이 말씀하십니다.


제 사진을 찍던 날, MBC로부터 어렴풋이 설명을 들었었는데, 어떤 사연의 사진이었는지는 방송을 보고 제대로 알게 됐다고요. 그러고는 꼭 한 번 제가 아들과 함께하는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었답니다.


요즘 제 주변에 기적이란 게 갑자기 흔해졌어요.


'서울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는 서울 전체에서 정원이 30명뿐이라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24시간 1:1 이용자격을 날짜에 맞춰 승인해 주셨고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네버랜드의 선생님들께 꼭 드려야 한다면서 급하게 '피터 팬 사용설명서'까지 만들어 줬다니까요.


아무튼 세상 곳곳에서 왕들이 나타나십니다. 마치 별똥별이 한날한시에 쏟아지듯.


하지만 20년 만의 스튜디오는 예상대로 난공불락의 고지전입니다. 그나마 건진 게 이 정도입니다.



또 한 벌의 준비된 세트룩이 남아 있어요. 일단 가까운 치킨집으로 퇴각한 후 긴급 지원을 부탁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출장 나오셨습니다.


겨우겨우 몇 개의 표정을 포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다시 혼자 돌아오게 되면, 마법사가 된 사진사 내외분의 명작이 이제는 아들을 대신해 저를 만나러 오려나요? 20년간 간절하게 직녀를 기다려온 견우의 마음으로 바랄 뿐입니다.


모두 이루었습니다.


내일이면 떠납니다.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갑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온 네버랜드 새 땅으로.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