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들의 육아일기 1
2006년. 여덟 살 딸과 일곱 살 아들의 나홀로 아빠시대가 열렸죠.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아들의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한 그해의 「육아일기」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 된 아들. 이제는 『아들의 날들』이라는 새 표지로 갈아주기 위해, 너무 오랜만에 그때의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보다 여전한 게 훨씬 더 많네요.
제가 이웃들에게 잘 해온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요. 일 년에 한 달씩 자란답니다. 무한장수가 확정적이죠."
사회의 나이가 26살이니, 아빠가 계산한 나이는 26개월, 그러니까 2살 2개월이네요. 제 셈법이 맞다는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남성 자폐아는 청년이 될 때까지 두 번의 정밀 진단을 받게 됩니다. 한번은 장애인 등록과 등급을 판정하기 위해. 또 한번은 입영 시기가 다가올 즈음에, 군 입대 여부 등 등급 판정을 다시 하기 위해.
내친김에 자폐의 성별 비율도 말씀드릴게요. 『아들의 날들』이 가지는 의미 중 하나가 '자폐의 이해'니까요.
남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90% 내외입니다. 놀랍죠? 그나마 다행이고요. 왜 성별 비율에 차이가 나는지, 왜 여자의 발병 비율이 남자에 비해 훨씬 적은 게 다행인지는 다음 기회로요.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두 번째 진단 때 의사가 진단서에 이렇게 적었어요. 우리 아들의 '사회성 연령은 2.3세'라고. 제 계산하고 얼추 맞아떨어지는 거 맞죠? 그러니 일곱 살 때나 스물여섯 살 지금이나 여전할 수밖에 없고요.
그때는 '아빠의 아침'으로 이름 지었던 '아들의 아침' 에피소드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한 화만 더 올리는 것으로 2006년 아들의 일곱 살 육아일기는 마감할게요.
새벽부터 시작된 아침
새벽에 눈을 뜨고는 결국 아침까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아빠 옆에 포개진 채 곤히 자고 있습니다.
새벽이 아침으로 밝아오는 시간쯤에,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알림판에 꽂혀 있는 종이들을 살펴봅니다. "제원이와 운동하기"라는 제목의 큼지막한 종이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수시로 산책하기, 자전거 함께타기, 주말에 등산하기'.
그러고 보니 지난주부터 시작된 아들과의 아침 양치질 씨름에, 요즘 아침산행을 거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제 며칠 만의 아침산행을 하고 난 아들이 확실히 좋아 보였던 기억도 나고요.
마음이 바빠집니다. 안방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깨서 혼자 놀고 있습니다.
"아이구, 아들 깼네? 잘 자서 기분이 아주 좋구나!"
아들을 안고는 여기저기 몸을 살핍니다. 오늘은 또 어디 물린 데 없나... 아침의 아들을 확인하는 첫 번째 일과입니다.
"휴~ 깨끗하네."
7시 30분. 아직도 잠에 취한 누나를 깨워 학교로 보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8시 5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아들과의 아침산행을 성사시키려면 서둘러야 하거든요.
소란스러운 욕실 풍경
일곱 살 아들은 아침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전날 저녁을 많이 먹고 난 아침이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요.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의 시작이 식습관일 텐데... 조금이라도 더 먹여보려 하지만 오늘도 딱 두 숟가락 먹고 끝났네요.
욕실로 끌고 갑니다.
치약 짜는 것을 보는 순간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제발 오늘만은 순순히' 했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고,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입을 벌릴 때까지 부탁할 것인가, 힘으로 제압해서 해치워 버릴까.
'아! 이! 에!' 아무리 소리쳐 본들 이를 앙다물고 벌리지 않습니다. 아빠가 눈을 부릅뜨면 마주 부라리며 '악!'하고 덤비기까지 합니다. 단호하게 싫다는 의사표시지요.
힘으로 몸을 억누르는 게 좋지 않은 영향과 기억을 남길까 봐 길게는 40분 정도를 씨름하지만, 아침산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은 힘으로 제압하기로 합니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빠에게 눌린 채 꺽꺽 서러워하며 당하던 양치질이었는데, 그렇게 아빠의 마음을 안쓰럽게 하던 아들이, 이제는 확실히 제압당한 것을 느끼고 나면 체념한 듯 입을 벌립니다.
완벽한 협조는 아니기에 아직 꼼꼼하게 양치질을 시키지는 못합니다. 아빠가 아직 서투른 이유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거부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입을 헹굴 줄 알면 참 좋으련만... 아무리 시범을 보여줘도 주는 물을 치약과 함께 꿀꺽꿀꺽 먹고 난 아들을 씻깁니다.
머리만 감기려 했는데 결국 또 전신샤워가 되고 말았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혀주는 것에도, 샤워기 물을 몸에 맞는 것에도, 무척이나 인색한 아들. 오히려 신생아 때는 머리 감겨주기가 훨 쉬웠다는 기억이 아련합니다.
"이러니 부모라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야. 그저 '먹고 자고 싸고' 이게 신생아 감각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 우리도 생각이 복잡해. '나 지금부터 삐뚤어질 테다' 작심하면 과연 이 바보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오늘은 당해주지만 내가 아빠보다 힘이 세지는 날을 한번 기다려보자구."
대문 밖으로 출발
아토피하고도 아주 친한 아들.
확실하게 촉촉함을 유지한다는 아토피 전용로션을 구석구석 바른 후, 산행과 조기교실 생활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옷을 고릅니다.
'조기교실'은 자폐아가 유치원 전부터 다니는 곳을 부르는 말입니다. 장애아들의 발달을 비장애아들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1:1 맞춤형 치료에 집중하죠.
벌써 10월. 이즈음의 아들에겐 붙지 않는 긴 바지와 얇은 긴팔 옷이 정답입니다.
게다가, 산행에서 따라붙을지 모를 벌레까지 고려하면 더욱 긴팔 옷이지만, 워낙 땀이 많은 아이인지라 교실에서의 하루를 생각하면서 그냥 반팔 옷을 입히기로 하고, 얇고 긴 겉옷 하나를 따로 챙깁니다.
혼자 옷 입게 하기도 발달 프로그램의 하나지만, 해야지 하면서도...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 때문에 잘 안됩니다. 인내심 속에 오래 지켜만 보는 것도 솔직히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아들은 아빠와 둘이 집을 나서는 것에 이제 아주 익숙합니다. 양말을 혼자 신도록 두면, 아빠가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앞장서서 신발장으로 가죠.
마지막으로 알림판을 다시 보며 오늘 준비해야 할 간식은 혹시 없었는지, 가방에 알림장과 여벌의 옷은 있는지 또 확인하면서 함께 집을 나섭니다.
8시 50분입니다.
고덕산 흙길
처음에는 우연히 시작한 아침산행입니다.
주말등산 외에 일일 아침산행은 엄두를 못 냈는데, 아이들 방 도배공사를 하던 때에 일꾼들을 피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시작됐죠. 생각해 보니 별 의미 없이 집에서 소모되던 시간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근린공원 놀이터도 가고 천호동공원, 상일동공원 산책 정도로 했는데, 상일동공원 뒤 얕은 야산의 산책로가 아주 좋더군요.
다양하게 즐기라고, 강동 근처의 공원이란 공원, 야산이란 야산은 다 돌아다니다가, 요즈음은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 고덕산 산행으로 거의 굳어졌습니다.
집에서 이레를 가는 코스로도 아주 딱입니다.
'이레유치원'. 아들이 다니는 조기교실의 이름입니다.
산행로 입구에 주차를 하고, 아빠 먼저 운동화로 갈아신은 후 문을 열자, 아들이 기분 좋게 뛰어내립니다. 역시 아침에 차를 타고 처음 내리는 곳이 유치원이 아닌 것을 훨 좋아하는 아들입니다.
겉옷을 입힐 뿐 오늘은 바르는 모기약을 생략합니다.
산속으로 들어선 순간 꼭 잡았던 손을 놓습니다. 아빠에게도 아들에게도 엄청난 해방감이죠.
어디를 가나 꼭 잡고 있어야 하는 아들의 손입니다. 어디를 가든, 한사코 손을 빼려 기운을 쓰는 아들과, 그 손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 아빠를 쳐다보는 사람들. 그 불안한 시선에 이제는 제법 익숙합니다.
안개가 조금 끼어있는 아침, 고덕산의 흙길이 참 상쾌합니다.
좋은 가을숲에서 배어 나오는 시원한 향기도 좋고, 바람이 불 때면 가랑비처럼 아카시아잎들이 쏟아집니다. 얼핏 시간을 보니 9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너 왜 학교 안 갔어!"
'아토피가 좋아진 것도 이 숲속길 산행 덕이 있을 거야.' 괜히 혼자 자찬도 해보면서 편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갑니다. 아들은 앞장서고, 아빠는 뒤따르며.
아들도 산행에 정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업어주기. 집에서도 없어진지 오래지만 산행이 길어지며 조금이라도 가파른 길이 계속되면 업어달라던 요구가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조금 불편한 것도 있습니다. 아빠 특유의 '눈치보기'입니다. 운동과 산행으로 워낙 알려진 곳이다 보니 이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 노인과 아줌마들이죠.
그 사람들 눈에는 이 부자의 산행 풍경이 참 이상해 보입니다.
저 젊은 아빠는 회사에 출근했어야 할 시간이고, 저 튼튼해 보이는 아이는 등교했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아들 몸집이 꽤 좋거든요. 게다가 아빠는 저 큰 아이가 걸음 좀 걷는 게 뭐 그리 대견한지 계속 크게 이야기합니다.
"잘한다! 어이구 잘 걷네. 하낫 둘 하낫 둘."
"아, 참 시원하고 좋다. 그렇지, 제원아?"
흘끔흘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가끔 호통치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너 왜 학교 안 갔어!"
어색한 아빠는 "네, 할아버지" 하면서 그냥 웃고 맙니다.
"눈치 보지 마. 신경도 쓰지 말고. 난 괜찮아!"
늦게 끝난 아침
아빠를 닮아서 땀이 참 많은 아들. 이제 10여 분 좀 넘게 걸었을 뿐인데 땀방울이 머리 여기저기를 타고 흐릅니다. 조금 힘들어진다 싶으면서 중간에 나무벤치만 있으면 가서 엎어집니다.
다양하게 코스를 고를 수 있는 고덕산 산책로. 30분 정도로 정해서 이렇게 저렇게 돌아다닙니다. 잠깐씩 벤치에 엎어지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1분 정도씩의 시간 외에는 거의 쉼 없는 30분간의 아침산행이 끝났습니다.
내려오는 길 약수터에서 물을 한 컵 먹이고 세수를 시킵니다. 역시나 약수를 받으러 줄서 있는 사람들이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9시 40분. 옷을 털어주면서 다시 손을 꼭 잡고 차로 갑니다.
9시 50분이 다 돼서야 이레유치원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등원하는 엄마들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참 어색했던 엄마들과의 인사. 지금까지 3개월여, 아빠와 함께 오는 아이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어정쩡하게 웃기도 하면서 먼저 인사도 건네지만, 아이들을 올려보낸 후 나누는 수다에는 감히 끼어들지 못합니다.
오늘, 아들이 참 기분 좋게 유치원에 들어섭니다. 어느새 아들의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아빠,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마침내 혼자가 되어 드디어 일터로 향하는 아빠. 이제서야 일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급해집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부쩍 길어진, 아들과 아빠의 아침이 끝났습니다.
2006년 10월 10일
추석 연휴를 마친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