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날들』 시작합니다

3세대 회고록 프롤로그

by 꼭두

『아들의 날들』 시작합니다

3세대 회고록 프롤로그


세 세대 회고록 『세 사람의 날들』 3부 『아들의 날들』을 시작합니다.


아빠의 하루로 쌓아 올린 26년


제 아들은 '중증 자폐'의 장애인입니다.


아들 나이 네 살 때,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토록 미루었던 장애인 등록을 하니 '자폐장애 1급'이라고 적힌 카드를 주더군요.


그 이름표도 그동안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어요.


부드럽게 표현해 주고 싶었는지 '발달장애(Developmental Disability)'로 바꾸더니, 애매하다고 느꼈는지 지금은 도로 '자폐장애(Autistic Disorder)', 공식 용어로는 '자폐성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입니다.


영어로 들어보면 발달장애 쪽이 훨 부드럽죠?


'성'이란 글자를 첨가한 건 다소 완화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워낙 자폐의 증상이 다양한지라 폭넓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제 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던 무렵, 자폐의 다양한 증상과 정도를 설명하기 위해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라는 명칭이 등장하더니 지금은 의학계뿐 아니라 일반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자폐'라는 단어를 처음 알린 우리나라 영화는 2000년대의 '말아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업그레이드된 용어를 사용하게 한 우리나라 드라마는 2020년대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아들 일곱 살 되던 해,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싱글 아빠가 돼 있더군요. 아들의 연년생 누나까지 둘을 함께 키워야 하는 나홀로 부모. 뒤늦게 찾아온 '인생의 봄'을 만끽하고 계신 제 어머니까지, 당시 우리 집 우리 가족은 모두 넷.


아들은 2025년 현재 스물여섯 살의 혈기 왕성한 청년이 됐습니다.


남들은 이럴 때 '꿈만 같은 일'이라고들 하지만, 제게는 지금까지 아빠의 하루하루가 너무 고스란히 선명합니다. 하루마다 새로운 일을 겪어내야 하는 모두가 다른 날이었어요.


오죽했으면, 처음에 매거진에서는 3부의 제목을 『아빠의 하루』라고 붙였겠어요. 정신 차리고 브런치북에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답니다.


사정이 어떻든, 그 하루들이 쌓여 26년이 되었다니 제겐 꿈이 아니라 '기적'일 수밖에요.


고마운 영화, 레인 맨과 말아톤


자폐를 스펙트럼이라 부를 때 제일 증상이 가벼운 한쪽 끝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가장 정도가 심해 모두가 힘든 다른 쪽 끝이 있습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아스퍼거신드롬'은 덜 힘든 쪽의 끝이고요. 자폐를 알려주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서번트신드롬'은 스펙트럼 속 묘한 자리에 걸쳐 있죠.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폐를 알려 준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친형 더스틴 호프만이 선보인 '자폐를 앓는 천재의 능력'에 모두가 놀랐죠. 그 결과, 일반인에게 자폐환자는 마치 지구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인식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상상 불가능한 암기력이나 천재적 수학능력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그런 필름적 설정은 계속 이어져요. 말아톤의 초원이가 보여준 '백만 불짜리 다리'나, '이상한 변호사'지만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IQ 164의 비범한 자폐인 우영우나, 모두 고기능의 서번트신드롬 자폐인입니다.


제가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오해받기 딱 좋은 설정들이 있더라도 그 작품들이 끼친 착한 효과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레인 맨, 말아톤 이전에 사람들은 자폐를 병(Disease)은커녕 장애(Disorder)로 쳐주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장애인 등록도 할 수 없었다니까요. 그저 '동네 바보형'이나 '머리에 꽃 꽂은 처녀' 정도로 취급받았죠.


수많은 자폐아 부모들에게 레인 맨, 말아톤은 참 고마운 영화랍니다.



연기 천재 우리 아들


제 아들은 어떨까요?


인물로 줄 세우면 두말할 것 없이 제일 좋은 쪽입니다. 박은빈보다 천 배쯤 이쁘고, 조승우보다 만 배쯤 잘생겼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물은 자폐에 관한 어떤 연구에서도 언급되지 않네요.


하지만 아빠는 치료 현장에서 많이 느낀답니다. 현장 일선의 선생님들이 똘망똘망 잘생긴 우리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곧잘 이렇게 말하거든요.


"잘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 한번 해봅시다!"


제 눈에 고슴도치죠. 어디 우리 아들뿐이겠습니까. 특히나 어릴수록 멀쩡하고 이쁘장한 외모 덕분에 자폐아 부모들은 억울한 타박도 많이 듣는답니다. 특히나 식당처럼 대중이 많은 곳에서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는 자폐아를 본 부모들이 혀를 차죠.


"아이들 참 버릇없게 키운다. 저 딱한 부모 같으니라고."


수려한 인물이 아깝게도, 증상으로는 제일 안 좋은 쪽 끝에 있어요.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알아듣는 말은 쉼표 없는 한 두 단어 정도의 짧은 지시어입니다. 소통 불가라는 자폐의 대표 증상 끝판왕이죠. 말이 안 되니 글도 없고요. 저와의 대화는 당연히 제로입니다.


제가 20여 년간 포기하지 못했던 꿈이 아들로부터 '아빠'라는 말을 들어보는 거였어요. 단 한 번이라도.


이웃들에게는 그저 유치원 다닌다고 하지만, 자폐아가 유치원 전부터 다니는 곳을 '조기교실'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데려다주고는, 늦은 출근과 빠른 퇴근을 마치고 다시 아들을 만나러 조기교실 문을 들어설 때마다 기대에 부풀죠. 오늘 드디어 아들이 '아빠' 하며 내게 뛰어와 안기는 꿈.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요. 단 한 번도.


제 꿈을 너무 잘 아는, 아들보다 한 살 많은 누나가 10년 가까이 '아빠'라는 두 글자 한 마디를 연습시켰지만 소용 없었고 딸이 먼저 포기했죠. 저는 20년을 채우고서야 더는 그 꿈을 꾸지 못하게 됐고요.


가끔은 내가 연기 천재 아들에게 속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긴 해요. 너무 답답하고 힘들 때 그저 혼잣말로 아주 복잡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말 많은 할머니처럼.


쉼표를 한 10개쯤 찍어야 하는 긴 넋두리 끝에 "...에휴, 욕실 마르라고 문 좀 열어놓으면 어김없이 닫아버리는 청개구리 아들놈" 한다던가, "...난 누가 물 한 잔 떠다 주는 사람도 없구나" 했는데, 잠시 후 욕실 문이 열려있고 조심조심 물컵을 들고 오는 아들을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이놈의 천재 연기에 제가 무려 26년을 속은 겁니다. 그러다 제 눈에 딱 걸린 거죠. 아마 혼자 있을 때는 "아빠 바보, 아빠 바보" 소리치며 잘만 놀고 있을지도 몰라요. 언제고 제가 그 현장을 덮치고야 말겠습니다.


아, 제가 지금 말문이 잘못 터졌어요. 자폐 교양강좌와 영화 이야기에 이어 이런저런 에피소드까지, 프롤로그 글 하나로 3부 전체를 끝낼 기세네요. 수습할게요.


우리 집 회고록 보시는 분들 마음 꿀꿀하지 않도록, 시크한 척 간결, 담담하게 쓰겠다던 다짐이 막상 새끼 얘기를 꺼내자 흔들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자폐를 이해하면 '더불어 사는 세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그만 급해졌습니다.


회고록 3부는 '자폐의 이해'가 주요 내용이 될 것 같은 예감마저 드네요. 우리 아들이 아빠 없이 살아갈 날들을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바람 때문이랄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3부를 이어가면서 기록하기로 하고, 제가 아들까지 회고록에 끌어들인 사연, 이제서야 3부 프롤로그를 시작합니다. 서두를게요.



회고록의 시작은 '육아일기', 저작권자는 '아들'


나홀로 아빠가 된 후, 아들이 살아온 칠 년을 새삼 처음부터 또 걸었습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다녔던 병원마다 다시 찾아가 차트 모두를 복사해 오고 다녔던 치료기관들도 모두 짚어봤죠.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어요. 어느 곳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 온 아들이.


그중 제일 큰 안쓰러움은요. 아들이 자신의 우수한 능력과 존엄을 모른 채 살고 있고 끝까지 그럴 거라는 사실이었죠. 굳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지적 생명체인지 모른 채 살아야 한다니... 기가 막히더군요.


내가 아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 떠올린 단어가 '기록'입니다.


아들이 지구 한구석에서 무의식 속에 살다 떠나가 모두에게 잊혀지고 마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기록하자. 얼마든지 위대할 수 있었고, 누군가로부터 미치게 사랑받던 아들이 여기 살았었다는 걸 단 한 명에게라도 기억하게 하자. '유레카!'.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비싼 캠코더 장만해서 영상도 찍고, 다음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말도 글도 너무 아끼는 아들을 대신해서 아빠가 기록하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보니 제가 헌신과 부성으로 무장한 대단한 아빠가 돼 있더라고요.


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했을 뿐인데... 당황한 저는 그 게시판을 비공개로 돌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이 블로그 서비스 자체를 아예 폐쇄하네요.


이번엔 황당했죠. 백업을 할 수 있게 해줬지만 제대로 남겨지지 않더군요. 글 두 개와 사진 몇 장만 건졌습니다. 그때의 기록이 온전히 남아 있다면 1부 회고록에서 어머니의 구술처럼 3부 기록에도 큰 도움이 될 텐데, 이래저래 기록이란 역시 중요하다 싶을 뿐이죠.


당시엔 '회고록'이라는 단어는 전혀 떠올리지 않았고, 아들의 삶을 아빠가 관찰, 기록해서 남기기 위한 '육아일기'였어요.


그런데,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어머니 회고록이 필요했고, 이번엔 저를 배웅하기 위해 제 회고록도 필요해지면서, 아들의 기록까지 세 세대의 회고록으로 함께 묶이게 됐다는 사연입니다. 20년 전, 일찌감치 제 머릿속에서 시작된 세 사람의 회고록입니다.


불과 26세의 청년에게 회고록이란 단어는 가당치 않죠. 하지만 어차피 곧 생이별이 예정돼 있기에, 아들을 기억해야 하는 첫 사람인 저에게는 아들의 회고록이 맞습니다. 어쩌면 아들의 회고록은 아들이 아니라 저를 위한 회고록일 수도 있겠네요.


"악착같이 기록해서 한 명이라도 더 나를 기억하게 하려고요."


2부 프롤로그에서 밝힌 회고록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의 시작점은 20년 전 아들로부터입니다. 세 세대 회고록의 저작권자는 제 아들인 거죠. 만에 하나 이 글들이 '종이책'으로 만들어져 단 1원의 인세라도 얻게 된다면 그건 모두 아들 몫이어야 마땅합니다.


3부의 화자(話者)는 드디어 '아빠'인 저입니다. 말도 글도 없는 아들 때문에 그리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저는 재밌네요. 한집 세 사람 회고록의 화자가 다 제각각이 돼버린 게.


글은 일단, 매주 토요일에 주간(週刊) 1화(話) 발행하겠습니다.

2025년 12월 15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주간 1화 발행으로 변경했습니다.

2026년 1월 12일부터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주간 2화 발행으로 변경했습니다.

2026년 2월 9일부터 매주 화요일에 주간 1화 발행으로 변경했습니다.


1세대 회고록의 원칙이 '미화(美化) 경계'였고, 2세대 회고록의 원칙은 그에 더한 '병상일기(病床日記) 경계'라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아빠가 대필 기록하고 화자마저 아빠지만, 3세대 글이 회고록스럽기 위한 원칙은 '아들의 시점(視點) 찾기'입니다.


그런데 이건 원칙이라기보다 소망에 가까운 일인지라, 이번만큼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26년간 제대로 찾지 못한 아들의 마음을 남아있는 짧은 시간 내에 과연 제가 찾을 수 있을지요.


그래도 기죽지 않고, 비록 아들이 무려 26년간 저를 감쪽같이 속였지만, 알 듯 모를 듯 눈으로 몸으로 드러냈을 아들의 마음과 시점을 잘 찾아볼게요.


이제부터, 세 세대 회고록 『세 사람의 날들』 3부 『아들의 날들』을 만나보시죠.


2025년 12월 8일

꼭두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