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신드롬

평생 품 안의 자식

by 꼭두

피터 팬 신드롬

평생 품 안의 자식


네버랜드에 사는 마이클 잭슨


뒤로 걷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덕분에 더 유명해진 단어, '피터 팬 신드롬(Peter Pan Syndrome)'.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몸은 이미 어른인데 마음은 여전히 어린이이길 원했기에,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들. 어른이 되기를 거절하고 영원히 '네버랜드'에 살기를 원하는 어린이, 피터 팬.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마음을 피터 팬이라 불렀을 뿐 아니라, 여의도의 세 배가 넘는 거대한 땅에 '네버랜드'로 이름 지은 어린이 왕국을 자신의 저택으로 건설하고, 지구의 모든 어린이를 초대했다죠?


그러다가 아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고 재판까지 받아야 했지만, 모든 게 허위고 사기로 밝혀지며 무죄를 확인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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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때문에 '자폐' 공부를 해야 했던 2000년대 초반, 참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자폐를 병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걸로도 모자라,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의학적 연구도, 보고된 사례도 적었기에 제대로 배우려면 남의 나라 글로 된 원서를 봐야 할 정도로.


의학적으로 질병 연구의 시작이자 종점은 병의 원인과 기전(機轉)을 밝혀내는 일입니다. 그래야 치료 방법이 나오니까요.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2000년대 초반은 자폐의 원인부터 선천론 대 후천론이 팽팽했고,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결론난 상태는 아닙니다. 선천적 유전론이 우세해지긴 했지만요.


그때 인상적으로 발견했던 게 '피터 팬 신드롬'이란 단어였어요. 원래 심리학 용어인 신드롬을 의학에서 자폐의 원인으로 써먹으려 하더군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모든 사회적 소통을 스스로 차단하는 증상이 같다는 거죠.


'신드롬(Syndrome)'은 '증후군(症候群)'으로 번역되는 것처럼, 어떤 병적인 증후가 나타날 때 붙이고 보는 이름입니다. 아직 원인을 정확히 모르기에 일단 신드롬 딱지를 붙여놓는 거죠.


그러다가 원인 규명까지 성공하면 그 신드롬 명칭이 그대로 병명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자폐의 공식 병명이 '자폐스펙트럼장애'지만, 만약 피터 팬 신드롬 연구가 더 발전해서 원인 규명에 성공했다면, 지금 자폐의 공식 병명은 '피터팬스펙트럼장애'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어떤가요? 자폐스펙트럼보다 훨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그리 느꼈어요. 뭔가 판타지스러운 게, 그 삭막한 공부 와중에 신선하더라고요.


그 뒤로 종종 제 아들에게 "어이, 피터 팬~" 그렇게 부르곤 했답니다. 설마 아직도? 지금은 "곰뚱아~" 그러고 있습니다. 제 폰 빅스비 앱 호칭도 '곰뚱이'로 바꿔놓은 지 오래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제가 농담을 가장해 이웃들에게 곧잘 하던 말이 있습니다.


'육아는 23시간 59분이 고통이고 1분의 행복이다. 하지만 그 1분의 행복이 너무 크기에 기꺼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제게는 그 1분이 곤히 잠든 아기의 모습이더군요. 내 품이 꼭 필요한 내 아기.


참고로, 이런 건 '웬디 신드롬'이라고 하더군요. 이것도 병적 증후라네요.


3_04_7.jpg 20대 청년 '곰뚱이'가 자기 팔을 베고 잠든 모습.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아요.


23시간 59분의 고통은 대개 1~2년 정도로 졸업합니다. 이제 살만해지는 거죠. 그 뒤, 1분의 행복은 다른 모습으로 커져 가다가 영 빼앗기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데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입니다. 제게는 그랬어요.


고3 수험생이 된 딸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던 때가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이 어두워 보이길래 구청에 요청해서 가로등을 세우기도 했고, 한 달 단위로 식단을 짜놓고 새벽이면 일어나 소고기무우국, 김치콩나물국, 황태미역국 등의 아침 조리를 시작했죠.


학교 수업 마치는 시간이면 교문 앞에서 픽업한 후, 이동하는 동안 갓 지은 새 밥과 불고기로 밥을 먹인 후 학원에 올려보내는 생활을 일 년 내내 했어요.


딸은 '다른 학원 친구들은 배고파 죽으려고 하는데, 자기만 배불리 학원 수업을 시작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어른이 된 뒤에도 가끔은 아빠표 토스트와 오므라이스 맛이 너무 그립다고 하더니 지금은 들어 본 지 아주 오래입니다.


대학에 입학하더니 어느 날 그러더군요.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어 독립하겠다고요. 이미 계약을 했답니다. 저는 통보만 받았어요. 그 뒤로 딸은 영 제 품을 떠났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저 멀리 남쪽 끄트머리 어딘가에 있거든요.


좋게 말해주는 건지, 핀잔 묻은 말인지 모를 단어로 '딸바보, 아들바보'라는 말이 있죠. 병적 증후로 말하면 웬디 신드롬.


딸이 저를 떠날 때 제게 다가온 느낌은 '아, 내가 또 한 번 쓸모없어졌구나.'였어요.


그 상실감은 대단하더군요. 가끔씩 딸을 보고 "어이, 가출소녀~"하고 부르는 게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만 표시였습니다. 제 생각에 최고 수준의 갑을 관계는 자식과 부모 같습니다. 영원한 갑, 자식. 무력한 을, 부모.


평생 내 품 안에서 살 것 같은 자식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캥거루족'이라 부르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삼더군요.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청년 '캥거루'들. '자식은 나가 살면 그립고 같이 살면 괴롭다.'면서도, 그런 '늙은 어른 아이'를 여전히 품도 아닌 주머니 속에 넣고 키우는 부모. 부모와 자식의 심리 문제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좋지 않은 현상이라는 거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행복할까요? 어른이 돼서도 부모의 주머니 속에 살고 있는 '캥거루'가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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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 우리 부자(父子)의 생이별


그때 제게 큰 위로가 된 게 아들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이름 붙이길 '평생 품 안의 자식'인 우리 아들. 23시간 59분의 고통으로 표현할 수 없는 평생 육아가 확정돼 있습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돼야만 하는.


아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이 왔을 때 폭식으로 이를 달래려 합니다. 제가 저지하면 제 온몸을 뜯고 때립니다.


유아 때부터 아들을 전담해서 진료, 처방해 주고 있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의 분석에 따르면 조증 과잉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면 절대 맞서려 하지 말고 피하라고 합니다. 어차피 맞설 수도 없습니다. 이제 저보다 힘이 세진 아들은 제가 더 이상 힘으로 제압하지 못합니다.


최선의 대처법으로 찾아낸 게 문 앞 테라스에 피신해 있는 겁니다. 아예 멀리는 못 갑니다. 저러다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또 막아야 하니까요.


아들에게 맞고 쫓겨나 찬 바람에 떨면서 피가 흐르는 팔, 다리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어이없고 서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면 집으로 들어갑니다.


정말 웃긴 건요. 제가 피 흐르는 팔을 보여주며 "아빠, 너 때문에 아파." 그러면 "호~" 하고 불어줍니다. 거기서 반쯤 서러움이 풀리다가, 잠시 후 잠든 모습을 보면 세상 이쁜 품 안의 자식을 쳐다보며 웃음과 한숨을 동시에 쏟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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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이 바보. 나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겠어. 말을 한마디 할 수가 있나? 아님 수화(手話)라도 가르쳐 놓던가? 그럼, 그걸 미리 알아채야 하는 건 아빠의 몫이잖아. 탓하려거든 자기 탓을 하라고. 이 곰탱아."


아들은 힘센 피터 팬, 아빠는 바보 웬디. 우리 부자는 드림팀입니다. 사디즘, 마조히즘의 변태 조합으로까지 느껴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1~2년이면 졸업하는 육아의 고통을 평생 예약해 놓은 아빠는 행복했나 봅니다. 남은 1분의 행복도 함께 영원할 줄 알았기에.


3_04_6.jpg 20대 청년 '곰뚱이'가 하는 '이쁜 짓'. 이 짓을 지금도 합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평생 품 안의 자식마저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생이별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당분간 『그의 날들』과 『아들의 날들』에서는 그 생이별을 향한 제 힘겨운 여정을 말씀드릴 겁니다. 동시에 이 생이별을 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해 내는지 지켜보려 합니다.


3부 회고를 시작하자마자 20년 전 어린 아들의 육아일기를 올리더니, 훌쩍 세월을 오늘로 뛰어넘어 지금은 청년 아들과의 생이별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오늘도 뚜벅뚜벅 그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소망이 실현되는 기록이 될지, 또 한 번 좌절의 기록이 될지, 그 결과를 해피 엔딩으로 기억해야 할지, 새드 엔딩으로 기억하게 될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피터 팬 아들이 찾아간 곳은 네버랜드일까요? 더는 아빠 품이 아닌 험한 세상일까요?


저는 그곳이 부디, 아들이 원래 살았기에 지금까지 그리워하며 찾아온 네버랜드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요?


저는 행복했을까요? 지금은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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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