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들의 육아일기 2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Five Stages of Grief)라는 게 있습니다.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을 차례차례 겪는다죠. 저는 아들의 자폐를 진단받은 후 이 과정을 '먼저' 겪었습니다. 대부분의 자폐아 부모처럼.
굳이 이름을 바꿔 붙이면 자식의 '자폐'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5단계쯤 되려나요?
'사실일 리 없어'에서 시작한 마음이, 결국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로 된 순간부터는 숱한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선택은 '장애인 등록'입니다. 정말 하기 싫었어요. 제 아들이 자폐라는 걸 공인하는 거, 끔찍하더군요. 하지만 치료를 받으려면, 학교에 취학하려면 해야 합니다. 제 저항은 최대한 늦게 하는 거뿐이었답니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취학'입니다. 언제? 어디로? 할 것인가. '언제?'는 비장애아처럼 8살 취학인지, 1년을 늦춘 9살 취학인지입니다. '어디로?'는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통합학교 취학인지, 장애인만 모여 교육받는 특수학교 취학인지입니다.
첫 번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선택입니다. 워낙 검토, 고민해야 할 장점과 단점이 많고, 앞으로 자식의 성장을 좌우할 중요한 선택이기에, 관련 논문과 경험담만 수백, 수천에 이르는 화두죠.
'죽음의 5단계'는 2부를 통해 다시 말씀드리게 될 테고요. '장애인 등록과 취학'에 관해서는 3부에서 다른 기회를 찾겠습니다. 지금은 제 선택의 결과만 보고드릴게요. 제 아들은 9살 나이로 특수학교에 취학했습니다.
두 번의 큰 선택과 별개로, 장애자식을 키우는 건 생활이 선택입니다.
내 자식이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행동을 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선택이죠. '자식을 위한 선택'이라는 원칙 아래 크게 두 가지의 기준이 있더군요. 하나는 '아들은 좋아져야 한다'였고, 또 다른 하나는 '아들이 좋아해야 한다'였습니다.
지금 짧은 말로 설명 드리기가 몹시 어렵네요. 저는 처음에는 마땅히 전자를 선택했습니다. 자폐는 병이고 병은 나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세월이 쌓이면서, 점점 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기준이 옮아갔답니다. 이것 또한 대부분의 자폐아 부모처럼.
나홀로 아빠 이 년 후, 정말 어려웠던 큰 고민과 선택 끝에 '한국육영학교'라는 특수학교에 입학했죠. 1학년 첫 담임선생님과의 1:1 면담 때, 아마도 제일 마지막으로 준비된 듯한 질문을 제게 하더군요.
"학교가 제원이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세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습니다.
"신변처리부터 시작해서 모든 생활이 지금보다 나아지게 해주세요. 이 사회에서 모두와 더불어 사는 아들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뜻밖에도 선생님이 더는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저는 당황했고 짧지 않은 침묵이 의아해서 되물었죠.
"다른 답안이 있는 건가요? 다르게 말씀하시는 부모도 있나요?"
"아들을 학교에서 즐겁고 편하게 해달라고 하시는 부모도 있죠. 그리고 그런 부모가 더 많아요."
믿을 수 없더군요. 초등 입학 전부터 마음을 다 내려놨단 말인가? 그런 부모가 있다고?
하지만 저도 더는 묻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곤혹스럽게 느껴질 정도로요.
숱한 고민과 선택이 앞으로 아빠의 일상이 될 미래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던 아직은 2006년.
지난 2화에 이어 일곱 살 아들의 「육아일기」 두 번째입니다. 2006년 아들의 일기는 이번 화로 마감할게요.
오늘은 소풍날
10월의 두 번째 토요일. '선사문화축제'가 시작되는 날.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암사동의 선사유적지. 해마다 가을 끝자락이면 이곳에서 선사문화축제라는 게 열립니다. 우리 집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죠.
아들과 함께하는 가을소풍으로 일찌감치 마음을 이곳으로 정했고, 아침부터 명일역의 GS마트를 찾았습니다. 어라, 아직 문을 안 열었네요.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시장을 찾아갑니다.
불고깃감으로 썰어서 등심 한 근에 김밥용 햄과 단무지도 샀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소풍의 4대 먹거리는 김밥, 사이다, 삶은 달걀, 귤이라는 것이 아빠 기억과 지식의 한계입니다.
만약 기차를 타고 가는 소풍이라면 정말 최고의 먹거리 아닙니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아들이 제일 먼저 뛰어나와 반겨줍니다. 늘 그렇죠. 사실은 아빠보다 아빠 손에 들려 있는, 검고 하얀 봉투들을 훨씬 더 반기는 거지만요.
봉투를 빼앗으려는 아들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갑니다.
양파, 당근, 대파, 고추... 고기의 네 배 분량으로 채소를 잔뜩 썰어 넣고 불고기를 재웁니다. 불고기는 갈비와 더불어 아빠의 소고기 양념 재우기 주 종목입니다.
할머니나 아빠가 요리할 때면 아들은 늘 쉬지 않고 주변을 돌아다닙니다.
제육볶음이나 장조림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큰 소리로 웃어대고 몸을 양옆으로 흔들면서 엄청나게 좋아하죠.
가자, 축제의 현장으로
쌀 한 컵이면 밥이 몇 공기가 되며, 쌀은 몇 번 씻는 건지, 압력밥솥에서 물의 양은 어떻게 재는 건지를 어머니에게 물은 후, 밥도 처음으로 해 봅니다.
요리 좀 한다고 큰소리치는 대부분의 아빠들. 정작 밥은 거의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품 요리 한두 가지로 멋을 내지만, 구첩반상은 언감생심이고 1식 3찬 차리기도 버거운 아빠가 태반이 넘을 겁니다.
이례적으로 밥 짓기를 연습하는 건 이번 달 말에 어머니가 2박 3일의 해외여행을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두 아이를 온전히 저 혼자 책임져야 하는 거죠.
삼삼하게 재운 불고기를 두 덩어리로 나누어 볶은 후, 세 칸짜리 도시락을 꺼내 한 덩이는 그대로 넣고, 나머지 한 덩이는 잘게 다집니다. 햄을 볶고 지단을 부치고 김치도 가늘게 찢었습니다.
햄, 달걀 지단, 단무지, 찢은 김치, 다진 불고기. 다섯 가지 재료의 김밥 말기입니다. 여섯 줄 말았는데 두 줄이 터졌네요. 김밥도 거의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또 탈이 났던 딸의 한마디에 처음 해 봤었죠.
"엄마는 나 배 아프다 하면 김치김밥 만들어 주는데...'
김밥 초보 주제에 김발도 없이 마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혀를 차며 그예 한 마디 하십니다.
"김밥은 그렇게 마는 것이 아니다."
못 들은 체하며 김밥 네 줄을 썰어서 두 칸을 채우고는, 빈 곳에 흰밥도 넣을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만약 아들이 또 김밥 속만 빼 먹으려 들면 한판 하죠, 뭐.
아뿔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아들 옷을 입히고 나가려 하는데 배가 고프다고 난리입니다. 시계를 보니 1시를 훌쩍 넘겼고, 안 그래도 불고기 볶는 냄새를 잔뜩 맡아버린 아들에게, 나가서 김밥을 먹자는 협상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낭패로다... 이러다가 정작 김밥은 꽝 되는 거 아녀. 별수 없이 불고기 볶았던 양념에 밥을 한 그릇 비벼 먹인 후에 집을 나섭니다. 채소까지 잔뜩 다져서 섞어 먹였습니다. 그나마 아빠 기분이 흐뭇합니다.
도시락을 들고 선사문화축제의 현장, 암사 선사유적지로 출발합니다. 장사 좌판이 즐비한 앞쪽을 피해 뒤쪽 한적한 곳을 찾아 주차했습니다.
낯설은 선사문화축제
산책 삼아 아들과 종종 오는 곳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입장료도 받지 않네요.
'신석기문화 체험학교'라고 쓰여진 제일 큰 부스에 아이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습니다. 체험학교에 입학하려면 줄을 서랍니다.
한 장씩 나누어 준 작은 카드수첩에 이름을 적어야 합니다. 열 개 정도의 교실이 있는데 일곱 개 이상을 하면 수료입니다. 수료증도 주고 기념배지도 준다네요.
'이레유치원 전제원' 이라고 대신 적은 후 아들 손을 꼭 잡고 입학했습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기 보다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덩치는 아들보다 적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네요.
'뗀석기 만들기'. 그냥 돌을 깨면 되는 거. 그거 하나라도 시켜보고 싶었는데 끝내 한 개의 교실도 못 해보고 그냥 '자퇴' 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잘 산책하던 곳이고, 이번 주는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아침산행을 아주 씩씩하게 해치운 아들인데, 오늘은 보채는 것이 상당히 심합니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뛰어다니다가 매달리다가 하는데, 제대로 된 부스 순례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그냥 나가기는 넘 억울하던 차에 '황토체험'이라는 곳을 만났습니다.
각종 황토 옷과 수건, 베개 같은 것들을 팔고 있네요. 만 오천 원짜리 면 티셔츠 한 장을 '특별히' 구천 원에 판답니다. 비싸다 싶은데... '아토피에 완전 좋다'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한 장 샀습니다.
아들이 마침내 터졌습니다. 울고불고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업어 달랍니다.
아빠의 진단에 의하면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시끌벅적한 장소에서 아들이 잘 적응하는 것을 아직까지 아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절대로 업어줄 수는 없는 거고 손을 잡아끌며 황급히 철수하는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덕담' 한마디 합니다.
"아는 가기 싫다카는데 힘으로 델구 가니 아가 저리 울지."
산에 가나 들에 가나 한국 사람들... 참 친절하게 '참견' 많이 합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랬지? 그리고 사람 많고 낯선 곳 내가 싫어하는 거 그리 잘 알면서 왜 끌고 왔어? 나도 아빠 맘 알아. 어떻게든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으면 싶은 거지? 근데 포기할 건 포기해 줘. 그래야 나도 편하고 아빠도 살지."
낯익은 한강시민공원
차를 타고 한강시민공원으로 향합니다. 목표는 소풍 현장에서 꺼내지도 못한 김밥 먹어 치우기. 주차료는 삼천 원. '이 돈이면 김밥 이 인분은 충분히 사 먹는 거지?' 싶네요.
조금 전까지와는 완연히 달라진 아들. 물 만난 고기처럼 여기저기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아빠는 기진맥진합니다.
평소에 한강은 잘 안 나가려 합니다.
언제고 한 번은 물에 빠트릴 것 같아서입니다. 왜 그리도 한강 물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지, 모든 창문에 쇠창살을 두른 24층 아파트 생활만큼 아찔아찔합니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어느 매점 옆 파라솔에 자리를 잡았네요. 국물 삼아 라면도 한 컵 차리고 파라솔 원탁 가득 도시락을 풀었습니다. 어찌어찌 차려 온 음식들을 모두 비웠습니다.
사방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는데, 아들이 매점 옆 놀이터의 모래밭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다가 술 몇 잔 마셨다는 이쁘장한 여학생 대여섯 명과 부딪혔는데, 제원이가 너무 이쁘다며 손잡고 품에 안고 뽀뽀를 하고 난리가 났네요.
아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아들은 자기 또래의 이쁜 여자아이나 누나들을 보면 갑자기 잘 다가갑니다. 한가득 웃으면서 안아달라 하고 심하면 만지려 들 때도 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비일비재한 일인데... 느닷없이 그런 상황에서 아들을 맞닥뜨린 여자아이는 노골적으로 뿌리치고 밀어내며 거부감을 표시하고, 옆에 그 아이의 부모가 있는 상황이면 저를 향해 인상 쓰며 대부분 눈에 띄게 싫어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제 아들뿐 아니라 '자폐장애아'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아무튼 사람들은 그 특징을 아주 싫어합니다.
자폐아의 90%가 남자이기 때문에 더 주목을 받게 되는데, 제가 아는 한 다른 시도를 더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워낙 증상과 정도가 다양하기에 '자폐스펙트럼'이라고 부르지만, 제 경험 세계에서 자폐스펙트럼 속 어디에 걸쳐 있든, 대부분 자폐아의 이성에 대한 호감 표현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부디, 겁 내지 마세요.
어린 여학생들이 이렇게 술을 먹고 밤에 무리 지어 다니면 어쩌냐고 한마디 해야 마땅할 텐데, 아빠는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면도칼 맞을까 싶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고마워서.
오늘 유난히 아빠를 힘들게 했던 아들. 아빠는 완전 시어터진 파김치가 됐습니다.
차에 있는 빈 도시락이며 살림들은 챙기지도 못한 채, 간신히 아들 손만 꼭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어머니가 계십니다.
종일 아들 손을 쥐고 있느라 저릿저릿한 지 오래인 손부터 해방시킨 후, 탈진한 듯 거실에 주저앉아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운 아빠. 어머니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제원이를 부탁해."
2006년 10월 14일
선사문화축제 다녀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