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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Nov 09. 2023

1.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

내 옆에 있던 당연한 것들의 상실에 대하여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 때의 감정과 이것은 같은 감정이었다. 언제였을까.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당당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도 당당하게 받을 권리가 있는 것도.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었다. 사랑도 희생도. 인간관계는 영원하지 않음을 인지할 수만 있다면 힘듦의 감내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부모님, 아이들과도 우리는 언젠가 이별할 때가 있다. 당연한 것들,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 생각했다.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상실하고 나면 알 수 있을까. 상실이 부족한 나는 아직도 모자란 사람이다.

지난 주 북한산생태탐방원. 단풍이 들어 가을이라는 것을 느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1. 라디오 오늘 이것에 대한 감정


바느질을 하던 손이 멈췄다. 목소리가 달랐다. 항상 듣던 라디오의 DJ가 바뀌었다. 11년간 들어오던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억울했다. 지금껏 내 사연은 두 번 방송되었다. 앞으로도 신지혜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나의 사연이 읽힐 날이 많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 어떤 영화음악이 나와도 그 영화를 다 보고 자신의 생각을 얹어 지적으로 이야기했다. 내 옆에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던 친구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졌다.      


그녀가 읽어준 내 사연이 생각났다. 큰아이가 겨울왕국에 빠져있을 때 겨울왕국 ost를 신청했다. 엄마 잘하지 않았냐고 딸에게 사연을 녹음해 들려주기도 했다. 사연을 올린 날이면 내 글이 읽힐까 조마조마했다. 몸은 집안일을 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라디오에 꽂혀 있곤 했다. 사연이 당첨 안 된다고 투덜댔다가 집으로는 초콜릿이 온 적도 있었다.      


여행을 하는 날에도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FM 93.9로 주파수를 돌렸다. 안되면 어플을 켰다. 남편은 운전할 때 졸리다고 투덜댔지만 나는 좋았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영원할 거라 믿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마지막방송을 들었다면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못 들은 게 다행이다. 평소에 사연 좀 자주 올릴걸.  후회는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2. 낙서쟁이 할아버지 그 때의 감정


“이 분은 심정지 상태입니다.”

소방대원의 말에 너무 놀랐다. 집 앞에서 요란법석 소리가 끊이지 않고 끝내 사이렌 소리까지 나길래 나가봤다. 집 바로 앞, 이곳이 현장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현장에서 죽은 사람을 본 것이 두 번째였다. 이분은 우리 아파트에서 유명한 치매노인이었다. 아파트 내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낙서를 많이 하셨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끈에 걸려 넘어진다고 욕을 써놓기도 하고. 아파트 정자에 노인의자라며 한문을 적어놓기도 했다. 아파트 기물을 왜 함부로 훼손하시나. 미워했다. 하지만 정작 떠나가시니 내 충격도 작진 않았다.


우리 아파트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가 두 명 있는데 다른 한 분은 일명 ‘비둘기아줌마’라고 불리는 캣맘이었다. 아파트에 고양이 밥을 주는 분이다. 캣맘과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은 하루 한 번씩 우리 아파트에 왔다. 어느 날은 낙서쟁이 할아버지와 캣맘 두 분이 싸우는 소리도 들었다.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왔으면 저는 어제 프랑스에서 왔어요.”


티격태격했던 것도 웃으며 지나가던 나였다. 그러던 중 캣맘 아주머니가 이웃들과의 잦은 마찰로 이사를 간 지 2주가 안 되었다. 그렇게 다른 유명 인사 한 분마저 우리 동네를 떠나신 거다. 정이 들었나 보다. 한 번이라도 인사를 드려볼걸. 매일 보는 할아버지에게 매일 피하기만 했으니. 너무 죄송했다.


지나치는 인연을 미워하면 안 되겠다. 눈인사라도 한마디 말이라도 따뜻하게 했어야 했다. 축구복장으로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낙서쟁이 할아버지께서 문 앞에 서 계셨다. “너 복장이 특이하다” 그 말에 대꾸를 못하고 웃으며 지나쳤다.


“할아버지 저 축구 배워요”라는 대답을 못 해 드렸다.

이젠 하늘 위에서 맘껏 낙서하세요.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믿겠습니다.           




+축구일기가 잘 써지지 않아 오늘 아침 느낌을 그대로 끄적였습니다. 항상 부끄럽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글을 씁니다. 옆에 살아계시는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더 잘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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