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손흥민, 임영웅을 우리 축구장에서 보다

20230705 코 앞에서 손흥민의 페인팅을 본 이야기

by 끼우

“손흥민 온다니까 시간 되면 아이들하고 축구하는 거 보고가. 쉿!”

유소년 축구 수업이 끝나고 차에 오르는데 주차요원 아저씨께서 말했다. 어쩐지 우리 운동이 끝나니 카메라들이 이곳저곳에 설치되고 들어오는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축구장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2시간을 축구해서 힘들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가버렸다. 도착하자마자 여성축구회원의 전화가 왔다. “축구장에서 손흥민 봤어?”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다시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다시 축구장으로 갔다. 이미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있었다. 경기는 시작되고 있었고, 우리는 멀리서도 손흥민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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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린이의 우상, 손흥민


축구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영웅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가 우리가 뛰는 운동장에서 우리가 밟은 잔디를 밟고 뛰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섹스인더시티에 빠져있을 무렵 뉴욕을 밟았을 때,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이 된 느낌과 같았다. 그런데 나는 돈을 들여 영국에 가지 않았고 우리 집 근처에서 그가 뛰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그가 보이는 발재간의 기술들을 눈앞에서 본 순간, 황홀했다. 저 기술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연습해서 몸이 익혀지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이 날 골을 많이 넣었다. 그 골문 뒤에 있었으니 여실히 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골문 앞에서 상대방을 제치는 페인팅도 보았다. 물론 손흥민이라고 해도 당하기도 했지만 손흥민은 손흥민이었다.



어머님들의 우상, 임영웅


이 날 경기에는 임영웅과 손흥민이 같은 팀으로 윙을 맡았는데 그때는 임영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워낙 임영웅이 나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그가 슛을 넣고 우리 앞쪽에서 손흥민의 찰칵 세레머니를 따라 하는 순간 ‘쟤는 누군데 저러나’ 했다. 유난히 손흥민과 함께한 팀들이 분홍색 운동화를 착용한 임영웅에게 패스를 많이 주긴 했었다.

우리의 관심은 조금씩 다 다르다. 나는 축구에 빠져서 손흥민이 최고였고,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에게 이 소식을 말할 때는 임영웅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편협한 세계를 살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관심 있는 분야에만 호응할 뿐이다.



축구가족의 행복


우리 가족은 작년 국가평가전에서 손흥민을 본 적이 있었다.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멀리서 전광판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안 좋은 좌석이었다. 그렇게 보다가 코 앞에서 드리블하는 게 보일 정도라니 아이들도 신나 했다. 가족 모두가 축구를 배우고 있어서 우리는 비록 그물망 밖에서 손흥민을 바라보았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막내는 모기와 싸우느라 정신없었음에도. 그 뒤에 첫째, 둘째 아이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우리가 찍은 손흥민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남이 버린 운을 줍겠다


손흥민이 가고 2일 뒤, 같은 경기장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운동을 했다. 그리고 손흥민이 자주 찼던 코너킥 자리에 발과 손을 비벼댔다. 운동이 끝나고 뛰어다니던 그 운동장을 한 번 더 밟아봤다. 손흥민의 운이 우리에게 오기를 그런 방식으로 빌었나 보다.

최근 일본출신의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연봉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들썩였다. 그중에서도 그의 선한 성품이 드러난 일화가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오타니는 운동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주워서 휴지통에 버린다고 했다. “나는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다. 남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것이다.”

손흥민이 들어와 공을 찼던 운이 좋은 운동장에 쓰레기가 있다면 나도 그 운을 주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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