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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Feb 13. 2024

6. 홀로 남겨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20240209 연화장에서 큰아빠... 를 생각하다

꿈을 많이 꾸는 편인 나에게는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할머니와 큰아빠다. 할머니와 큰아빠의 공통점이 있는데 술만 먹으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큰아빠는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했다. 큰아빠는 술만 먹으면 개가 됐지만 폭력은 나에게까지 오지 않았다. 큰아빠 집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시간과 상관없이 엄마 아빠는 큰집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그런 싸움은 우리 집안까지도 이어졌지만 아빠는 엄마의 편이어서 적당히 무마되곤 했다.



큰아빠의 기억


큰아빠는 아빠보다 키가 크고 힘도 셌다. 아빠는 큰아빠에게 덤벼서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섯 살이나 형인 큰아빠한테 아빠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큰아빠는 피부는 구릿빛이었고 세 명의 부인에게 술만 먹지 않으면 사랑꾼이었다. 첫 번째 큰엄마에게서 낳은 세 명의 딸이 있었다. 그중 막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항상 나와는 비교 대상이었다. 큰아빠는 당신의 막내와 나를 앉혀놓고는 수학 문제를 풀게 시키곤 했었다. 나는 문제를 풀었고 그 막내는 풀 수 없었다. 태어나서부터 보살핌이 더 필요한 친구로 평범할 수 없었다. 큰아빠는 그게 싫었나 보다. 자신의 딸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커가면서 알게 된 막내의 능력에 대해서 중학생이 되자 학업에 대한 비교는 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큰아빠에게 받은 사랑은 칭찬받았던 기억이었다.



큰아빠의 부탁


이번 꿈에는 큰아빠였다. 꿈속에서 큰아빠는 영화배우 설경구, 축구 국가대표 설기현을 닮기도 했다. 그렇게 좋은 얼굴로 좋은 차림으로 웃고 계셨다. 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꿈도 금세 휘발되어 일어나자마자 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아니 잊어버리라고 구석에 놔둔 것일 수도 있다.) 큰아빠가 나오신 데는 자신기억해 달라는 부탁이 아닐까.

오랜만에 들른 연화장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번 와 봤던 기억이 있다. 이 연화장 추모의 집에는 큰아빠가 먼저 들어오셨고 뒤이어 할머니가 모셔졌다. 호실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었고 찾아낸 번호 앞에서 묵념을 했다. 이곳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하지만 양손은 가벼웠다. 꽃을 사다가 꾸밀 수도 놓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꽃을 사 온 사람들이 둘 곳이 없어 들어가는 입구에는 생화 다발들이 여럿 놓여있었다.



모셔진 사람들을 기억하기


만화영화 코코를 보면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세상이 나온다. 살아있는 자들이 기억을 하고 있어야만 저 세상 사람들이 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설정이다.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내 꿈에 나타나셨나?

할머니와 큰아빠의 묵념 끝에 생각이 난 건 친한 친구의 아빠였다. 함께 계시는 것을 알고 있기에 번호대로 찾아가 세 번째 묵념을 했다. 요즘은 이름만 알면 입구에서 검색해 숫자대로 찾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추모의 집을 나와 잔디가 보이자 친구의 둘째 아이가 생각났다. 둘째가 너무 빨리 세상에 나와 연화장 주변 어딘가에 묻었다고 친구는 말했었다. 그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눈물이 고였다. 바람이 지나는 순간이라도 친구의 둘째를 기억하고 싶었다. 연화장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계속 생각나는데 내가 살면서 알고 지낸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많을까.

연화장은 그렇게 잊고 지낸 사람들과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알맞은 공간이었다. 가끔이라도 와서 기억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중경삼림의 금성무가 그랬다.


“난 고독이 두렵다.
그러나 홀로 남겨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지금 연화장에 모셔진 사람들의 심정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그들을 잠깐이라도 기억한다면 저세상에서 살 날이 조금은 어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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