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7 사진 앨범 정리를 하는 이유
찌지직. 전원이 꺼졌다. 아이들의 사진이 사라졌다. 10년 전, 핸드폰에 사진이 많아 옮기는 중이었다. 그때는 대용량 저장장치에 전원코드가 필요했다. 줄이 짧아 간신히 콘센트에 연결해 줄은 고무줄처럼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이는 그 선을 발로 밟았다. 아무리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물론 지금 주변에는 같은 사진을 서로 다른 저장장치 세 곳에 따로 저장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서버를 집에 구축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서버로 올라가게 만든다. 그 서버 관리회사는 1년에 한 번씩 앨범도 만들어 준다니 세상 편한 세상이 따로 없다.
세상은 물건을 버리고 디지털화하라고 하지만 사진만큼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매년 연말연시에 온 가족의 사진을 한데 모아서 사진을 빼내고 휴대전화 기능을 높인다. 그리고 그 사진을 하나씩 살펴보고 선택해 3X5사이즈 사진으로 인화를 한다. 그렇게 매년 나오는 인화지 수는 2000장이 넘는다. 온라인에서 가장 싸다는 인화사이트에서 알뜰상품권으로 사서 인화해도 25만 원 정도다. 게다가 대용량 앨범 한 권에 들어가는 사진은 600장이라 보통 1년에 네 권을 구매하는데 앨범값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매년 사진에만 쏟는 예산이 35만 원 정도다.(물론 시댁이나 친정에 보내야 할 아이들 사진액자, 가족사진 액자까지 포함하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게 10여 년 간 모아 온 앨범이 스물여섯 권이다. 그리고 작년 사진을 정리해서 넣어야 할 앨범이 네 권. 이제는 앨범을 쌓아 올릴 공간도 모자라다. 일본의 정리여왕 곤도 마리에가 본다면 당장 버리라고 했을 거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품값도 어마하다. 사진을 하나하나 보며 인화 여부를 선택하는 일은 내가 맡았다. 이 일도 3일은 걸린다. 그리고 인화해서 돌아온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사진 정리할 때 사진 구석에 찍힌 연도와 날짜를 넣어 인화한다. 문제는 유치원에서 주는 사진에는 사진정보가 없어서 그 사진들은 따로 모아서 집에서 매직펜으로 다시 숫자를 써넣고 날짜대로 사진 정렬을 다시 한다.
지난해는 유난히 많이 돌아다녔다. 남편은 언제나 여행지에서 아이들을 풍경과 함께 예쁘게 그리고 인화할 사진을 위해 어디인지 푯말 앞에서 찍곤 했다. 하지만 남편이 사진을 정리하는데 자신의 사진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한 소리했다.
“당신에게 사진정리 맡겨도 되는 거야?
내가 찍은 사진이 없잖아.
사진만 보면 애들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입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카톡으로 사진 보내서 받는 거 어려워. 매번 받아야 하잖아”
나는 대답했다.
남편은 참고 참아서 다시 말했다.
“그럼 다이렉트로 사진 보낼까?”
“응”
사실 카톡으로 사진을 그날그날 보내는 이유도 사진정보가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위해서 편리하게 노력한다고 한 일을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어렵다고 핑계를 댔다. 우리의 사진 작업은 당일 저녁, 카톡 가족방에 올려놓고 내가 바로 다운받는 시스템이다. 남편의 핸드폰에서 올려진 사진은 남편이 그날그날 지웠다. 사진정리를 하는 2월에서야 내가 남편의 사진을 매번 정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다시 받으려 해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려 받을 수 없었다. 내 게으름을 탓했다. 언젠가 하겠지 미루다 보니 못 받은 사진이 가득이었다.
남편이 왜 별거 아닌 거에 민감하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남편의 어릴 적 앨범이 시댁의 이사 실수로 거의 다 버려진 사실이 떠올랐다. 현재 남아 있는 앨범이 두 권이었다. 나도 결혼 전에 봤었지만 앨범이 꽤 많았다. 자신의 과거가 통으로 날아갔다며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남편은 사진 찍고 인화하기에 더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화가 나서 자신은 사진을 안 찍겠다고 했다. 사진 찍는 의미가 없다고. 분노했다. 나는 미안해서 할 말이 없어 그냥 자버렸다.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되는 일을 회피했다. 나는 모든 일에 회피하는 내 엄마 아빠가 미웠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책임에 회피하는 같은 인간이었다. 고로 나는 나를 부정하는 셈이 되는 일이었다.
나와 남편이 그러든지 말든지 아이들은 우리가 정리해 놓은 앨범을 보면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다른 가족들을 비교했다. 자신만 받지 못했다고 우기는 일도 앨범을 보면 사그라들었다. 자신이 받았음에도 기억에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앨범을 보며 배워가고 있다.
내가 앨범을 정리하는 이유. 어릴 적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는 너희 셋을 동등하게 키우려 노력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사실과는 다르다. 자신만의 눈으로 제멋대로 추억을 쌓는 게 기억이다. 사진의 기억은 사진을 보고 기억되는 느낌과 장면을 사진을 볼 때마다 다시 머릿속에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망각의 동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가끔 잊는다. 잃어버린 과거 기억을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하는 작업이 나와 남편에게는 앨범을 정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