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
ADHD! 생각만 해도 할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뭐부터 말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주의력 결핍 장애(ADHD)는 비교적 흔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서는 조현병, 조울증보다 괴로운 병이었다. 괴로움의 원인은 주로 '할 일을 미루고 안 한다.'는 점에 있었는데, 죄책감에 피가 말릴 지경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방문하게 된 건, 초장부터 조현병이 의심되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핫했던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본 어머니가 가라고 해서 갔다. 나보고 ADHD 같단다.
그 전에 ADHD란… 마치 '님프' 같은 존재였다. 어떤가? 우리나라 정서상 님프란 유니콘보다 이질적인 존재다. 뭐하는 녀석인지도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ADHD 역시 환상종이었다. 날 때부터 불성실한 나는 해당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뱉은 말 속에 힌트가 있었다. 날 때부터 불성실한 건 ADHD일 가능성이 높다.
ADHD 의심 증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을 잡고, 첫 진료를 보기 전까지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게으른 게 ADHD 탓이 맞을까? 병증인 걸까?'
이런 의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는 당시 내 뇌 속 프렌즈 사이에서 아주 큰 이슈였다. 수업을 들어야 할 때도, 불현듯 떠올라 마음을 잔뜩 흔들어놓고 갔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알고 보니 병증이 아니고 그냥 게으른 거면 어떡하지?'
나는 결국 '의지력이 부족한 나태한 사람'일 뿐인 거고, 나아질 여지가 없게 된다! '당신은 평생, 지금껏 게을렀던 대로 쭉 살아가면 됩니다~' 라는 의사의 친절한 공식 인정을 받게 되는 거다. ADHD가 맞았다면 갱생할 여지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ADHD 치료제를 준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도 간단하다. 나의 인생을 가리던 암막 커튼이 드디어 젖혀지고, 새로운 2막을 맞이하게 된다!
이 사태의 심각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ADHD 여부가 목숨까지 걸 정도인가? 그렇다! 확신의 YES다. 빠른 이해를 위해 일화를 소개하겠다.
나의 '깜빡' 증세는 누구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느 정도냐면,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들으러 가는 중의 이야기다. 강의실은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각과 정상 출석의 경계였기에 내린 후 걸음을 빨리 했다.
쉿! 교수님이 연구 중이에요. 조용히 해주세요!
팻말은 나의 힘찬 보폭을 지적하고 있었지만… 그런 게 알 바인가? 나는 더욱더 힘차게 걸어갔다.
저벅저벅 도착한 강의실에는, 분명 머리숱이 빽빽했던 교수님의 정수리가 텅 비어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산성비를 오래 맞기라도 한 걸까?
설마? 떠오른 의심에 강의실 창문 사이로 이래저래 각도를 틀어 얼굴을 훑은 결과…. 다른 교수님이었다! 의심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수업 정보를 살폈다.
내가 가야 하는 강의실은 3층이 아니라 2층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계단을 타고 한 층 내려가 제대로 된 강의 장소를 찾았다. 그런데 웬걸, 강의실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전혀 아니었다. 원래라면 5분 지각했을 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오늘 휴강이라고 하셨지!'
그렇게 열심히 강의실 산책을 마치고 뚜벅뚜벅 기숙사로 돌아갔다.
이뿐이라면 다행이다. 가장 괴로운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온갖 자책과 타책(?)에 못 이겨 '제발, 신이시여! 듣고 계신다면 제가 일어나서 과제를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안 한다. 시험 기간에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시험 시작 6시간 전에 벼락치기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 내가 30초를 집중할 수 있으니까, 30분 집중을 위해 총 60번 집중해서 목적을 달성하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당장이라도 총알처럼 자리를 쏘아나가려는 야생마의 혼을 잠재워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공부가 재미있겠는가? 고문이다. 그렇게 괴로우니 의자에 앉는 걸 미루게 된다.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딴생각의 동기는 늘 다르다. 하다못해 재생지에 박혀 있는 잿빛 무늬조차도 딴생각을 유발할 수 있다.
'오, 저 무늬는 꼭 내 허벅지에 있는 튼살과 닮았군.'
한 마디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네버엔딩 스토리를 쓰고 만다.
'튼살? 아, 그러고 보니 요즘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근데 어떡하지? 마라탕 먹고 싶다.'
이런 식으로 생각들이 겹겹이 물려 만리장성을 형성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러니 ADHD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지을 위중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첫 진료를 볼 때가 왔다.
"음…. 일단 검사를 해보고, 다음 예약 때 생활기록부 준비해 오실 수 있나요?"
나는 눈을 빛내며 가방 속 서류를 슬며시 건넸다.
"알아보니까 보통 생기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미리 뽑아왔어요."
사활이 걸린 문제다. 당연히 다 찾아보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 왔다. 그런데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 나 나름 엘리트였는데. 생기부에 집중 못 한다는 말도 없고. ADHD 아니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두근두근, 의사 선생님이 차르륵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시선도 그 손짓을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씀하셨다.
"ADHD일 가능성이 높네요."
"네? 나쁜 말 안 적혀있지 않나요? 왜죠?"
나는 당혹감 반 기쁨 반으로 물었다. 의사 선생님께선 내 생기부 줄글에 강조선을 그어 보여주었다.
"자기주도학습에 어려움이 있음, 이라고 적혀있죠? ADHD 환자분들 특징이에요."
생기부에 욕이 있긴 있었구나! 미사여구로 가려진 생기부 속 꼭꼭 숨어있는 한마디였다. 조금 민망했지만, 동시에 쾌재를 불렀다. 내색하진 않았다.
그렇게 ADHD 진단을 받았다. 약도 받았다! 내가 받은 치료제는 '스트라테라'였다. 하지만, 생명줄과도 같은 이 약은 1달도 채 가지 않아 빼앗기게 된다. 다름 아니고, 내게 ADHD를 진단해 준 바로 그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인생의 제 2막을 여는 커튼은… 앞의 사람을 인식하지 못해 민망하게 닫히는 자동문처럼, 열리자마자 스르르 잠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