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1장, '나'

by 마성

※ 이 글에는 정신질환의 증상에 대한 구체적이고 폭력성 있는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나는 조현병에 걸렸다. 정확히는, 조현병 또는 조현정동장애라는 2가지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조현병에 걸렸는가?"라고 하면 기억나는 사건은 하나다. 영화 <오펜하이머>. 당시는 내가 싫어하는 계절인 겨울이었고 대학 과제가 많았다. 코딩을 많이 해야 했다. 또, 졸업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자잘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때를 떠올리자면, 대략 '과제해야 하는데….', '졸업 작품 팀원들이 내가 일을 못 해와서 질책하면 어떡하지?', '아빠랑 엄마께 실망을 끼칠 순 없어.'라는 걱정들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다.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장관이었다. 폭발 뒤에 가려진 수많은 죽음은 생각도 안 날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폭발이 나에게도 일어난 듯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연인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고, 보이지 않는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어느새 시야엔 내 정수리가 보였다. 유체 이탈한 영혼이 껍데기뿐인 육신을 보는 것처럼….

환각, 불안, 공황 발작…. 모든 증상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눈 대화는 이랬다. 연인은 내게 영화가 정말 좋았다고 얘기했고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조금 과격하게 말이다.

"쓰레기 같은 영화였어."

내가 뱉고도 아차 했다. 영화가 아주 좋았고, 무척 마음에 들어서 두 번 봐야겠다고 한 사람 앞에서 '쓰레기 같다.'니. 그의 감상을 짓밟는 행위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연인은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흘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주워 담고 싶었다. 죽음으로 씻길 수 있다면 죽고 싶었다. 내 말로 연인이 받았을 충격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물론 남자친구는 '아니, 말을 왜 이렇게 심하게 한담? 섭섭하군!' 정도로 여겼을 테지만 당시의 나는 이성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변이 아주 짙은 아지랑이가 핀 것처럼 일렁거렸다. 위쪽과 아래쪽이 섞여 파도처럼 요동쳤다. 동시에 이인증을 겪었다.

이런 경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주위가 사뭇 다르게 보였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느리게 팔랑였다. 가로등의 불빛이 쭉쭉 뻗어갔다.

괴상한 광경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감각을 손끝과 발끝에 집중해 보았지만, 그조차 낯설었다. '팔다리가 달려 있는 게 정상이던가?' 싶었다. 뭐든지 간에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다음날도 기이한 일의 연속이었다. 멀쩡한 가로등이 사람 머리로 보였다. 목부터 발끝까지의 몸을 댕강 잘라버린 모가지. 피를 흘리는 듯도, 아닌 듯도 했다. 끔찍했다. 소리를 꽥 지르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고 싶었다. 몸이 발발 떨렸다.

인생을 20년 남짓밖에 안 살아온 나였지만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스트레스 받았나 보다.'하고 넘어갈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통각적 아픔은 없지만 고통스러웠다. 하루하루 악몽 같은 일상이 어서 끝나길 바랐다. 예약일보다 훨씬 빨리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 가 내가 겪은 괴상한 체험기를 털어놓자, 낙인이 찍혔다. '조현정동장애'라는 낙인이.

나의 증상은 어떤 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조현병이라는 이름 외에는. 그것만이 내가 겪은 기괴한 경험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줬다.

진단 기준에 명확히 부합하려면 6개월을 관찰해야 했으나, 나는 훨씬 더 빠르게 조현병이라는 꼬리표를 받게 되었다. 아마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게 서둘러 진단에 맞는 치료제를 주기 위한, 의사 선생님의 배려였을 터였다.

이 사회에선 비정상인이요 정신병자라는 낙인이었지만, 구원의 동아줄이기도 했다. 진단명에 따른 처방을 받으니 기괴한 일들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조현병이라는 것을 질병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F209라는 꼬리표가 달린 환자일 뿐이다.

내 행선지 불명 티켓의 꼬리표는 원할 때 토독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치 않는 순간에도 내게 새겨지듯 박혀 아릿한 감각을 선사했다. 그 존재감은 꼬리표보다 낙인이라는 명칭이 훨씬 적절할 것이다.

세상은 종종 낯선 이의 이상 행동을 보며 손가락질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식지 않은 낙인의 열기에 참다 못해 터져 나온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조심스레 부탁한다. 누군가 미처 숨기지 못한 낙인과 눈이 마주친다면, 그가 가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가려주는 친절까진 아니라도, 그 흉터를 파헤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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