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

머리말

by 마성

'이렇게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성인이 된 후 나의 모든 인생을 관통한다. 내 4년은 이 물음을 정의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을 미리 스포일러하자면, '아니오'다.

초장부터 파격적인 스포일러를 해버렸다. 이에 에세이를 끝까지 읽어야 할 의미가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아마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결말을 아는 작품을 수차례 정주행하게 되는 이유는, 엔딩 자체에 의미를 두어서가 아니지 않은가. 주어진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 자체에 흠뻑 젖는 것이다.

절망과 시련은 한 끗 차이다. 내가 '절망 및 시련 학과' 교수였다면 시험 문제 최상단에 절망과 시련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었을 것이다. 둘은 말로가 다르다. 만약 절망을 견뎌냈다면 시련이 되고, 견뎌내지 못했다면 절망이 된다. 나는 모두에게 닥친 절망이 시련으로 남기를 바란다. 주제넘게도 그렇다.

한 가지 더 말해두자면, 앞으로의 글에서는 검열 없는 표현이 종종 등장할 것이다. 그건 '이렇게 쓰다간, 사회적으로 위험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어. 매장당할지도 몰라!'하는 두려움을 감수하고 꾹꾹 써내려간, 나름의 용기였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뜬금없지만, 기도할 때 나만의 고정 멘트가 있다. 그건 바로,

"이겨낼 힘을 주세요."

이겨내게 해주세요, 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처한 상황이 어물쩍 좋은 쪽으로 흘러가서 '만세! 끝났다!'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극복할 힘과 의지가 주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내겐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해결할 용기’ 만큼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용기를 가진 것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 근거를 묻는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과 내게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우리의 닮은 부분은 남은 글을 읽으며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빈약한 근거지만… 공감되는 바가 있어서 이 글을 읽게 된 당신에게, 당신이 처한 절망을 이겨내리라 믿는 사람이 1명 정도는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 바란다.

그림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