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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지렁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by 슬기롭군

도로 위, 바람에 떠밀린 비닐 한 조각
차에 치이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작은 생명처럼.

“비닐지렁이다!”
아이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비닐은 정말 지렁이가 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길게 늘이고
차가 다가오면 움츠리며 숨을 고르는,
작지만 끈질긴 생명.

아이의 눈은 세상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쓰레기였던 비닐이
작은 생명이 되고,
도로는 거대한 숲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지막 바람 한 줄기,
비닐지렁이는 풀숲으로 몸을 굴려
사라졌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만 남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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