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by 뿌리깊은

2015~2020년 엄마와 식당 운영 중


여기 공부 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는 공부를 너~어무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았던 선생에게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그러자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수락했고, 성적이 엄청나게 오를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이게 웬걸? 어느 정도만 올랐을 뿐, 고득점을 받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선생은 자신이 그냥 풀어지는 문제를, 자신은 절대 틀리지 않는 문제들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난 그냥 풀리는데? 10x10=100인데 왜 이걸 모르지?'


자신이 체득한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생은 그런 부류였고, 별로 좋은 선생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가 이렇다. 자기는 그냥 하면 되는 요리인데, 설명하기 어려워하신다. 좋은 요리사 일지언정 좋은 요리 선생님은 못된다. 식당일을 돕는 나는 요리를 익히고 싶었고 배움의 도중, 나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엄마의 설명이 있었다. 음식의 간을 맞추려 소금 넣을 때, '적당히', '조금만', '어느 정도만', '쪼끔만'이렇게 주문하시는데 아마, 엄마에겐 이 4 단어가 미묘하게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쥐뿔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저 단어들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엄마의 친절하지 못한 설명에 화가 나서 그냥 막 소금 들이부어 버린다.



우리 가게는 한식당이고 메뉴가 다양하여 그 재료들도 다양하다.(고기 종류 6~8가지, 채소와 야채는 셀 수 없다) 당연하게 냉장고가 많아 5대 보유 중이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회사 손님이 많아, 손이 아주 부족한 상태에서 엄마의 '냉장고에 있다'는 한마디는 내게 사형선고와 같았다. 지금이야 그 한마디에 소싯적 챙겨본 명탐정 코난의 영향으로 추리하여 찾아내지만(사실 위치를 외었다) 엄마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던 시절, 내겐 너무 가혹한 말로 받아들여졌다. 코난의 마취총을 갖고 싶었다. 그 말 말고도 '여기', '거기', '거 있네' 등등 명확한 지시가 아닌, 뭉뚱그려 설명할 때, 많은 혼란을 겪었다.



당연히도 같이 일하기 전 나는, 엄마의 이런 점이 나쁘다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집이 넓은 것도 아니라 집에서는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예전 다니던 직장에서는, 명확하지 않게 또는 불친절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정말 불편해했었고 이런 사람을 회피했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고 주인장이기도 하시니 '내가 참자'거나 '엄마의 이런 점을 고쳐볼까?' 생각하게 됐다.



"엄마, 듣는 사람을 초등학생이라 생각하고 알려줘야 해"


인내심이 많이 필요로 되는 작업이었다. 길게 내다보고 설명해드려야 했지만 당시에 나는 내적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었다. 반복되는 엄마의 불친절한 설명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고, 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은 물음표가 대다수였다. 나는 쉽게 지쳤다. '왜 금방 이해 못하지?', '내가 얼마나 잘 설명해줘야 하는 거지?' 생각하기 일 수였다. 자주 부딪혔고 우린 서로 상처 받고 상처 입혔다. 사소한 걸로도 싸우고 기분 나빠하기 시작했다. 이토록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 평소 하지 않을 언행도 하게 만들었다. 엄마와 싸우면서 지낼 바에 가게 따위 없애고 싶다고 생각했다. 같이 일할 필요도 없어지면 부딪힐 일도 없어지니까. 정말 수 없이 포기했었고, 수 없이 다시 노력했다.


그땐 이런 일들이 쌓아져 나를 성장시키는 줄 꿈에도 몰랐다.



계속 참아서 그런 건가?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내 오해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 왔다. 지나고 보니 엄마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되고 있는 거였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 이상을 받고 계셨기 때문에 나의 말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엄마의 하루 노동시간은 12~16시간가량 됐다. 일하는 시간 동안 쉬는 것조차 마땅히 허락되지 않았고 나는 내 시간이 부족하다는 명목으로 8시간가량 일하며, 권리란 권리는 다 누리면서 엄마에게 잔소리하고 있는 형태였다. 엄마에겐 엄마를 지적하며 엄마를 더 좋은 사람을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단 걸 몇 년이 지나야 점점 깨닫게 되었고, 지금은 엄마의 짧은 말도 알아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해석한다. 그렇게 엄마어 고급이 되었고, 나보다 엄마 말 더 잘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참는 것은 몸에 해롭다' 했던가,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아닌 점도 있다는 걸 엄마와 일하며 느꼈다. 어른들에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고, 젊은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반복이 요구된다고 느꼈다. 나는 참을 필요가 있었다.


주변 어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주변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건 어른들의 잘못도 우리 젊은 사람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고, 어른들이 세상을 따라갈 힘이 부족한 탓이 크다.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안 따라 준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애당초 우리 젊은 사람들은 윗세대를 이해할 마음이 없다. (나도 같이 일 하기 전에는 어른들에 대한 불평만 있을 뿐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빨리 젊은 세대들이 우리 윗세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계기를 얻는다면, X세대와 Y세대 간 아름다운 소통이 가능해질 거라 감히 예측해본다.



"엄마 좀 앉아요!! 서있어야 되는 병 걸렸어? 좀 쉬었다 하세요"



쉬었다가 하라는 말을, 오늘도 못난 아들은 장난스레 돌려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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