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받지 못한 나는 왜 배려를 해야 하지?

사소한 불만인가 평생의 숙제인가.

by 뿌리깊은

반백살 넘으신 엄마와 26살이었던 내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넘게 운영한 식당에서 5년간 엄마를 관찰한 내용.


밖을 다니다 오랜만에 옛 친구와 마주쳤다.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 느낌이 예전과 사뭇 달랐다.

그 만남을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나 오늘 오랜만에 친구랑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 친구 느낌이 좋더라. 말투, 표정, 제스처 모든 게 멋졌어.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예전엔 그런 느낌까진 없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변했나 몰라. 부럽다."


엄마에게 말할 땐 알아듣기 좋게, 이해하기 쉽게 말해야 알아들으신다.


배려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내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이여사님, 나 오늘 오랜만에 친구랑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 친구 바이브 완전 뿜 뿜인 거 있지? 완전 탈우주급.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예전에는 찔레이 같았는데 어떻게 그리됐나 몰라?"


당연히 엄마는 알아듣지 못한다. 2~3번 더 말해 드려야 할 테고, 중간중간 "어?", "뭐?" 등 반응을 보이실 테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겠지.



이제 내가 엄마의 눈높이에서 말해야 대화가 가능한 순간이 왔다.

내식대로 배려않고 대화한다면 엄마는 외국어를 듣는 것만큼 해석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가? No.

내가 설명을 쉽게 알아듣게 하기 위해 엄마는 부단히 애를 썼던가? 초등학교 전까진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설명이란 걸 할 때, 쉽게 이해시켜주신 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유난히 멍청했던 걸까.

엄마뿐만 아니라, 형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답답해하기만 했고, 아버지는 그저 귀여워하며 웃으셨다.

나의 말도 어리숙한 말로 들렸는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말해주려, 들어주려 부단히 노력하는 게 사회적으로 당연하지만,

우리 30대가 어릴 땐, 부모님들 마음대로 설명하는 게 사회적으로 당연했다. 엄하게 무섭게 얘기한다거나 이유 없이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셨다. 그냥 그때 저 시대가 그랬겠지.


지금 내가 예전 윗세대 처럼 "엄마 절대 하지 마! 내 얘기 들어!", "진짜 그거 사면 나볼생각 하지 마" 등 등 이유를 말하지 않고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협박하며 돌려줄 수 없다. 이렇게 말한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으시고 화를 내시겠지.


여하튼 부모님 세대를 미워하거나 욕하는 상황이 아니다. 여러 요인들로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이해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나는 어릴 적 배려받은 기억이 없는데, 엄마에게 배려해야 되는 상황이 온 거다.

내가 배우질 못한 배려를.

지금은 어른들 시점에서 대화하지 않으면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어른들은 우리들의 배려를 기대할까?



가끔 외로울 때가 난 배려받지 못하고 나 혼자 배려한다 느낄 때, 정말 세상에 혼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들 중엔 '아버지는 날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안돼' , '욕부터 하신다', '짜증부터 내신다' 이렇게 아직까지도 소통에 고통을 겪는 친구도 몇몇 있다. 내 눈엔 쌍방으로 배려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조금의 노력도 안 하시는 게 눈에 보이면 화가 난다.


그렇지만 노력하시는 분들도 꽤 보인다. 우리 얘기에 귀 기울이고 술자리에 어울리시고 이런 것 하나하나 신경 쓰는 분들도 계시더라.


엄마와 다툰 날 밤에 친구 아버지와 술을 마신 경우가 있다.

내 얘기를 짧지 않은 시간 들어주시고 동조해 주시더라. 아주 긴 시간 대화한 것은 아니지만 심심찮은 위로를 받았다. 묵은 체증이 내려갔고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카타르시스가 이런 것일까.


그래도 그분은 끝에 말씀하셨다.

"그래도 너희가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해 따라가기도 벅찬 세대다. 10%, 아니 단, 1%라도 따라가고 싶은데 잘 안된다. 너무 늦은 것 같다. 미안하다."

노력 안 하는 사람이 내게 이 말을 했다면 지금 이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다.

노력하는 분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다.

처음 알았다. 관련 있는 직접적인 사람의 사과가 아닌, 타인의 사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같이 일한 지 5년이 지나도 엄마와 나의 소통은 여전히 어렵지만, 나의 노력인지 엄마의 노력인지, 조금은 나를 배려하려 하시는 게 느껴진다.

업보처럼 돌려받게 될꺼라면, 윗세대든 밑 세대든 남에게 무신경하게 말해서 무신경한 말을 돌려받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배려를 통해 배려를 돌려받는 게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