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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할 수 있는 책상 하나

- 직장인 꼬나루 일기 1.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난 죽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친구들이 다 내는 대기업에 이력서 1장을 내지 않으며 고집을 부렸던 터였다. 아빠한테 '거봐, 난 회사에 들어갈 능력이 안된다고요.' 를 보여 주기 위해 딱 한 곳 이력서를 내고 면접에 똑 떨어져 버리는 철부지 망나니 짓도 불사했었다.


그렇게 그렇게 하고 싶다던 음반기획사 일을 1년 만에 그만 두고 나와, 한동안 다시 비슷한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아빠의 엄청난 반대 속에 시작했던 일을 그만두고 난 뒤여서 용돈 받겠다고 손 내밀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풀 죽고 기 죽어 쭈그리가 되어 지내고 싶지도 않았던 25세 시절.


내가 일할 수 있는 책상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겠다.


생각하며  PC 통신 구인란을 헤매이고 있던 내 눈에 띈 엄청 엉뚱한 느낌의 구인 공고가 있었으니 ...


1. PC 통신에 능통한 자

2. 한글 워드 분당 1,000 타 이상을 치는 자


나잖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서
뭔가 음악 관련된 일을 찾게 될 때 까지 알바나 하자.


라는 못된 마음을 갖고 입사했던 회사가 나를 지금까지 IT 회사에서 일하게 만든 첫 회사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들어간 것 치고 나는 꽤 신나서 회사에 다니는 막내였다.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었고, 선배들, 사장님, 부장님한테 예쁨도 받았고, 정말 친한 친구도 생겼다. 딱히 특별한 Role 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약간 사장님 비서 같았던 것 같기도..  :)


홍보일을 시작하게 된 건 그로부터 3년이나 훌쩍 지난 뒤에서다. 이 회사에서 만난 부장님이 친구분이 하는 회사를 소개해 주셨고, 그 회사에서도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어느날 어쩌다 덜컥 홍보담당이란 직업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직장인이 된 지 2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보며 열심히 놀았고, 대기업이며 글로벌기업에 척척 붙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너 어쩌려고 그러니?' 소릴 듣는 문제적 졸업생이었다.


만약에 지금 내가 이렇게나 회사에 다니는게 즐겁고 일 하는게 신이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아직도 내가 회사에 신나서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계속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 같기에, 나는 정말 회사에 다니는 일이 즐겁다. - <꼬날이 간다> 32번째 brunch 끝.


내가 사랑하는, 일 할 수 있는 책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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