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겨울을
누군가 “여름하고 겨울 중에 어떤 계절이 좋아요? ” 하고 물어보면 늘 일말의 고민 없이 “여름이요. 겨울은 너무 힘들어요.” 하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외투를 껴입어도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나와 겨울 사이를 갈라놓았다. 나에게 겨울은 늘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계절이었다.
그래도 겨울의 끝에 기다리는 새로운 한 해라는 존재는 왠지 모를 설렘을 주었다. 제야의 종 앞에서 첫해의 얼굴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행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축제 같은 분위기에 은근히 물들어 조금은 나아질 새 해를 상상하기도 했다.
나이를 더 먹고 난 뒤의 겨울은 새해의 설렘보다는 한 해의 막바지에서 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나름 한 해를 꽉 채운 나의 노력과 보람들이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 것들인지.
마음의 준비 없이 이십 대에서 서른이 되었을 때, 나에게는 마흔이 10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마흔은 모든 면에서 어른이어야만 할 것 같은 나이인데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겨울은 나에게 외적으로는 추위와의 싸움을, 내적으로는 한 해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담은 계절이었다.
앵오가 아프고 나서 몇 해가 지났다. 금방이라도 내 옆을 떠날 것 같던 앵오와 벌써 세 번의 겨울을 함께 보내고 있다.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겨울을 세어보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잊을만하면 돌아오던 겨울을 굳이 세어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의 겨울’ 외에 다른 겨울들도 세어보았다. 소중했던 사람들과 보낸 겨울은 몇 번이었는지. 내가 지금껏 지내온 겨울과 앞으로 보낼 겨울은 몇 번일지. 그중 인자한 노인의 모습으로 보낼 낯선 나의 겨울도 떠올려보며. 뭐, 인생이 내 생각대로 된다면 말이다.
겨울을 세기 시작하니 무한한 사계절의 반복인 것 같던 겨울이 희소하게 느껴졌다. 그중 앵오와 함께 보낸 겨울은 무려 17번이나 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겨울은 몇 번일까? ’ 손가락 몇 개를 하나씩 접어내려 보다 겨울 세기를 멈추고 손을 내려놓았다.
추운 겨울, 집으로 돌아와 차가워진 몸을 녹이며 따뜻한 온수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너와 널브러져 보내던 일상. “엄마. 고양이들은 너무 따뜻해.” 하며 온기를 느끼기 위해 너를 꼬옥 안던, 나도 미처 몰랐던 내가 좋아하는 겨울의 모습에 늘 네가 있었다.
‘앵오야. 다음 겨울에도 함께하자.’
어느 순간 나에게 돌아올 겨울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가 생겼다.
노묘와 아픈고양이를 둔
집사님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은 그림과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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