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 이야기- 준비된 이별

영원한 너의 집사이고 싶다

by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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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나는 새 학기를 앞두고 1년간 정든 수업을 마무리하는 날이면 교실에 앉아 꺼이꺼이 눈물을 터트리곤 했다. 그동안 매일을 함께 하던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제는 같은 반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학교 안에서 또 만날 수 있지만, 한 교실에서 수업하고 웃으며 일상을 나누던 것과는 다르리란 걸 알아서였다.


대학생 때는 휴학을 선언한 과 친구에게 전화해서 “왜 갑자기 휴학하고 그래. 이제 자주 못 보잖아. 나랑 계속 같이 다니자. 꺽꺽..” 하며 울어 친구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숙한 사람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마지막이 보이는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힘들었다. 아마 ‘끝’이라는 선언 이후에 찾아올 일상의 변화가 두려웠던 것 같다.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처음 앵오가 아프던 기간에 내가 많이 슬퍼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운을 잃고 야위어가는 앵오를 보며 온종일 심장이 콩콩거리고 눈물샘이 울렁거렸다. 누구나 지구에 온 생명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지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초대장을 받는다. 하지만 어느 보통의 하루에 내가 아끼는 이의 초대장을 받는다면 “이렇게 행복한데 왜 하필 지금일까. 내가 뭘 잘못했길래.” 라며 발신자를 원망하고 주저앉고 말 것이다.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현실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시공간의 공기를 마시는 일이었다.

앵오가 아픈 후로 3년쯤이 지나가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할 뻔한 일이 있다. 만약 앵오가 처음 위험했던 순간에 내 옆을 떠났다면 나는 오랫동안 상실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다. 그때는 앵오가 꽤 노묘라는 사실도 잊고 살아 나의 고양이를 보낼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언젠가 다가올 결말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만약 반려동물이 나이를 먹어 기운을 잃어 가고 아픈 모습으로 나의 곁에 있다면, 집사에게는 슬픈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준비 없이 떠나보낸 뒤 밀려오는 후회와 자책으로 오랜 시간 슬퍼하지 않게, 고양이들이 집사에게 허락해준 시간임이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후회 없이 사랑한다고 말해 줄 수 있도록.

내가 앵오를 잘 알듯이 앵오도 나를 잘 아는 게 분명하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느린 나에게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과정의 하나임을 천천히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작은 몸으로 버티며 내 옆에 있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