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 이야기- 받아들이기

영원한 너의 집사이고 싶다

by 김양희


앵오는 집 안의 가장 높은 곳에서 동그랗게 웅크려 낮잠에 빠져드는 걸 좋아했다. 물론 낯선 사람의 방문으로 급히 몸을 숨길 때도 높은 곳으로 후다닥 뛰어갔지만 말이다. 앵오는 타고난 긴 다리와 튼튼한 뼈대로 자기 몸집보다 몇 배나 높은 책장이나 장롱 위도 가뿐히 뛰어오를 수 있었다. 여름이면 피아노 옆 시원한 창틀을, 겨울이면 내 방 옷장 위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었다.



학창 시절, 앵오의 귀여움을 자랑하고 다닌 팔불출 집사 덕에 친구들은 앵오가 아주 작은 아기 고양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 우리 집으로 놀러 와 길다란 몸을 쭈욱 펴고 가구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앵오를 보며 “앵오 사실, 고양이가 아니고 살쾡이 아니야? ” 하며 앵오의 ‘살쾡이 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처음 가족이 된 집에서 13년을 지내다 이사를 하게 됐다. 나는 안타깝게도 이사가 확정된 날 새 아파트로 간다는 설렘을 즐길 수 없는데, 예민한 앵오가 이삿날에 받을 충격과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가 너무 걱정됐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이사 날은 다가왔다. 내 예상대로 앵오는 약 3일간 식음을 전폐한 채 화장실도 못 가고 케이지 안에서 웅크려 지냈다. 그러다 호기심 많은 아깽이가 용기를 내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돌아다니자, 앵오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건강했던 시기라 무리가 없는 듯했다. 이사 온 집에는 방마다 붙박이 옷장을 놓았고 책장도 예전처럼 높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캣타워를 샀다. 천장에 닿을 듯 말듯한 높이의 4단 캣타워는 발톱을 맘껏 긁을 스크래치 기둥과 몸을 숨길 박스도 있어 반응이 좋았다. 캣타워 위를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높은 곳을 좋아하는 앵오가 캣타워 꼭대기에는 올라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대신 뚱보지만 젊은 아깽이가 짧은 팔다리로 캣타워 가장 높은 곳으로 껑충 뛰어올라 낮잠을 잤다.


그때 아깽이를 바라보던 앵오의 눈빛은 짧은 순간이지만 꽤 아련해 보였다. 오른쪽 귀 뒤에 흰 털이 몇 개 자라는 걸 본 순간 외에 ‘아, 앵오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인식한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좋아하던 일상의 즐거움을 내려놓던 순간에 앵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캣타워 꼭대기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앵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앵오는 자신이 예전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는 슬퍼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일상의 도구들을 사용해 앵오의 코가 분홍빛이 될 때까지 놀아주었고, 아깽이와 앵오는 캣타워의 저층을 오가며 우다다 놀이를 했다. 다행히 앵오는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새집에서 보내는 첫여름이 다가오자 앵오는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찾은 듯했다. 앵오는 나의 방의 허리만큼 오는 수납대 위에 올라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 높진 않지만 방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충분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앵오가 새롭게 찾은 낮잠 장소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포근한 방석을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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