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냥자- 노묘, 서른, 꿈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by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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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른들이 사랑하는 소설 어린왕자는 어릴 적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세계 명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무엇을 담은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악당도 공주도 등장하지 않고 큰 교훈도 없어 보이는 줄거리. ‘어린 왕자가 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별들을 여행하더니 지구로 내려와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하는 책.’ 이것이 소설 어린왕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돌아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학교 앞 분식집에 서서 떡볶이 300원 치를 먹고 돌아오면 하루가 마냥 즐겁고, 여름방학 숙제를 빠짐없이 완수해 가는 게 인생의 큰 책임감이었던 그 시절. 비추어볼 인생의 큰 낙오와 좌절의 경험이 없던 순진한 아이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야만 했다.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책 ‘어린왕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어린왕자를 다시 접한 건 앵오와의 이별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나서부터였다. 이제 어린왕자의 이야기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장미를 위한 어린왕자의 책임감, 진정 소중한 것에 대한 여우의 대화, 사막의 낮과 밤을 함께한 비행기 조종사 아저씨와의 이별. 이 모든 게 마치 나와 앵오를 위한 동화인 것만 같았다. 한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의 이야기가 글 위로 내려앉더니 마음으로 다시 날아들어 왔다.


아이가 영원히 아이로 남을 수 없는 이유는 자라는 몸만큼 마음에 묻어야 하는 이야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간절한 소망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많이 웃었던 만큼 눈물이 마르는 시간은 길어진다는 걸 알아버린 나는, 어느새 어른이 돼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 집사계의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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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왕자와 인생의 비밀을 아는 여우의 대화에, 나도 이들과 함께 사막에 서 있는 듯 귀를 기울였다.


“어린왕자야, 이제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해.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왕자는 여우의 말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돌아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늘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서른이 먹어가며 행복해지는 일을 찾겠다던가, 좋은 제안에도 방 안에 웅크리고 있을 나이 든 고양이를 먼저 떠올리는 나였다. 누군가 이유를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이 시원치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조차도 꺼내 볼 수 없는 그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곤 했다.



#3


어린왕자는 의자를 몇 칸만 옮겨도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조그마한 별에서 장미를 돌보았다. 앵오와 나는 18년 동안 작은 방에서 함께 볼을 부비며 잠이 들었다.


나의 고양이가 소중한 이유는 긴 시간 동안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햇볕을 쬐고, 밥을 먹고, 서로의 체온을 마주하는 시간은 어느 화려한 외출보다 특별했다. 나이 든 고양이를 돌보기 위한 나의 노력은 그 시간에 대한 책임이자 사랑이다.


지구에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어린왕자에게 의미 있는 꽃은, 늘 그를 기다리던 까칠하지만 여린 장미 한 송이뿐이었다. 나의 흔한 털옷을 입은 늙은 고양이는 5억 개의 별의 무리 중 단 하나의 빛나는 별일 테니.

우리는 우리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다. 누군가 작은 별에 핀 장미 한 송이를 돌볼 유일한 사람이라면, 그는 그 장미를 결코 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영원한 너의 집사이고 싶다

18살과 10살 고양이와 살아가는 꿈많은 집사

노묘와 아픈 고양이를 둔 집사를 위한 글과 그림을 그립니다.


@ssong2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