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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un 29. 2021

재료비 과부하 주의! 맛있음 주의! 굴라쉬

피클 만들고 남은 샐러리에서 시작된'셀프 고생'요리의 서막

살구잼 샌드위치에 살구잼 얹은 두유요거트 까지. 오늘 아침은 살구로 시작해서 살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 맛이 강해 맛없다고 무시당했던 살구가 잼으로 변신하니 드라마틱한 반전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신데렐라처럼 한 순간에 신분이 상승했다. 


미간을 찌푸리게 했던 시큼함은 어느새 기분 좋은 새콤달콤한 맛으로 변해있었다. 샌드위치와도, 요거트와도 찰떡궁합을 이뤘다. 여기에 만만하게 자주 등장하는 계란 스크램블과 방울토마토, 과일주스를 곁들이니 간편하면서도 영양만점 아침밥 완성.  


전날 만든 살구잼이 열일한 아침밥상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은 출근하고(이를 '쓰리이 아웃'이라고 부름) 오래간만에 집안이 조용하다. 후다닥 밀렸던 일들을 처리한다. 집안일은 기본, 산책도 다녀오고,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책도 읽고 부지런히 글도 쓰고 하다 보니 어느새 훌쩍 1시. 곧 아이들 하교시간인데 어쩌나. 말차소이라떼로 대충 한 끼를 때운다. 강제 다이어트 식단이 따로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요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전적으로 가족들 덕분인듯하다. 혼자 먹을 때는 아무래도 먹는 것에 신경을 덜 쓰게 되고, 혼자 먹자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게 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이거 고마운 건지 안 고마운 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엄마 놀이터로 오세요!" 핸드폰 속 아이들 목소리가 한껏 들떠있다. 오늘도 역시나 아이들은 놀이터행이구나. 보초서는 심정으로 얼른 따라나선다. 언제쯤 놀이터 독립을 시킬 수 있을까. 그 시간이 지금은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곧 오긴 오겠지.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같이 저녁 메뉴 구상에 잠겨본다. 참, 오늘은 굴라쉬를 만들기로 했지! 사건의 발단은 '샐러리'였다. 피클을 담글 때 샀던 샐러리. 생각보다 소량 쓰기 때문에 아무리 적은 양의 샐러리를 사도 꼭 절반은 남게 된다. 여기에 파프리카도 아직 남았겠다, 버섯과 감자 그리고 토마토도 마침 있겠다, 그렇다면? 굴라쉬 당첨.


굴라쉬는 헝가리식 스튜로,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스프이다. 이 오묘한 맛의 매력을 알게 되면 번거로워도 종종 해 먹게 된다. 단순히 있는 재료에 '소고기만 사면 되겠지'라고 시작한 건 오산이었다. 그렇게도 여러 번 만들어 먹었으면서도 꼭 재료를 한 두 개 잊어버리고 일을 벌이고야 만다.


이 날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실은 어제 먹으려고 호기롭게 요리에 도전하였으나, 이럴 수가! 찬장에 홀빈토마토가 없음을 발견. 물론 없이 그냥 토마토만 넣어도 되지만 그래도 맛의 깊이가 다르긴 다르다. 어차피 만드는 거 제대로 먹고 싶기에 부랴부랴 로켓배송으로 주문을 했다. 자연스레 하루 미룬 숙제 같은 굴라쉬.

  

'이제 집에 가서 여유 있게 만들기만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아차! 와인이 없음을 자각. 이로써 재료비는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놀이터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고민할 여지도 없이 가장 싼 레드와인을 집어 든다. 하아, 샐러리로 시작된 굴라쉬 프로젝트. 그냥 마요네즈나 찍어서 먹을걸 잠시 후회가 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다. 뭐 하루 이틀일인가.   


굴라쉬의 필수 품목! 레드와인, 그리고 버터

굴라쉬에 빠져서는 안 되는 재료를 3가지 대보라고 한다면 레드와인, 버터, 훈제파프리카가루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다. 일단 와인은 고기 잡내도 잡아주고 깊은 풍미를 더해준다. 요리에 쓰는 와인은, 냄비 뚜껑 열고 한참 끓여주기 때문에 알코올 성분은 날아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는데도 문제없다. 그리고 버터는 올리브유로 대체해도 되지만 맛의 차이는 경험상 버터가 압승이다. 카제인 없는 기버터는 우리 집에 필수품. 그리고 훈제파프리카 가루를 반드시 영접해야만 굴라쉬의 품격이 상승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욕심부려서 과하게 넣으면 금물. 워낙 향이 쎄서 정량보다 많이 넣게 되면 안 넣으니만 못하다. 

굴라쉬에 필요한 재료. 이러니 내가 한두 개 꼭 빠뜨린다는 거. 


굴라쉬가 보글보글 끓는 동안 샐러드를 준비한다.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놓고, 상추에 오이에 파프리카까지 합체. 역시나 마무리는 견과류가 빠질 수 없다. 아몬드슬라이스 뿌려서 뚝딱 샐러드 완성.

호불호 없는 무난한 <닭가슴살 샐러드>


드디어, 굴라쉬를 맛보는 시간! 재료비를 굳이 계신해보지는 않았지만(현타 올까 봐) 그래도 사 먹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할 거라며 마음을 달래 본다. 여기에는 바게트나 깜빠뉴 등이 더 어울리지만, 더 이상 재료비를 추가했다가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냉동실에 있던 식빵을 꺼낸다. 아, 역시 맛도 비주얼도 살짝 아쉽다. 다음에는 꼭 빵도 제대로 구비하리라 다짐해보며.


그래도 굴라쉬의 맛은 역시나 온 가족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맛있다며 난리다. 한 그릇 뚝딱 하자마자 더 달라며 아우성이다. 오늘도 대 성공이로구나. 하지만 내일 점심에 남편이랑 한 번 더 먹으려고 분명 아주 넉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1인분도 안 되는 양이 남았다. 아! 너희들의 먹성이란.


그러고 보니 불현듯 친언니의 간곡한 부탁이 떠오른다. 다음에 굴라쉬를 만들거든 제발 조금만 남겨서 냉동시켜 놓으라고. 언니에게 연락해보니 쌍수를 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 라쟈냐를 얼려 두겠단다. 이거야 말로 완벽한 give & take. 먹는 거 앞에서는 척척 죽이 맞는 이 한 자매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점심에 주방에서 머물러있지 않았기에, 잔뜩 비축했던 힘을 저녁 메뉴에 다 쏟아부었더니 에너지 고갈이다. 굴라쉬를 먹기 전에는 왜 항상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재료를 준비할 게 한 둘이 아니고, 그 재료비가 꽤 비용이 들고, 재료를 다듬고 끓이며 한참을 서 있어야 한다는 고된 노동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그 맛이 너무도 황홀하기에 이러한 수고로움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게 아닐까 싶다. 


* 해당 글은 <Daum 홈&쿠킹>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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