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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ul 09. 2021

익숙한데 색달라! 반전 매력폭발, 스프카레

자꾸만 생각나는 마성의 맛

일찍 눈이 떠지는 아침에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요리를 하는 편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그랬다. 스프카레를 만드려고 사놓은 단호박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차피 통째로 다 필요하지는 않으니 절반은 다른 요리에 사용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바로 단호박스프가 아침 메뉴로 당첨되는 순간이다.


단호박은 딱딱해서 다루기 꽤 힘든 편이다.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려주어 그나마 조금 부드러워졌을 때 낑낑대며 겨우 반으로 갈라 본다. 씨를 파내고 나머지는 작게 잘라 쪄 준다.

단호박, 오늘 아침 메뉴를 잘 부탁한다.


양파를 슬라이스 하고, 버터를 소량 넣어 열심히 볶아주다가 쪄 둔 단호박과 무가당 두유를 넣고 믹서기에 갈아준 후 끓여주면 완성! 과정이 번거로워서 그렇지 맛은 참 평화롭다. 노란빛의 색깔도 어찌나 고운지~ 여기에 빵과 과일, 야채샐러드를 곁들여주면 훌륭한 아침식사 완성.

조식 나왔습니다! 단호박스프가 주인공인 오늘 아침밥상


각자의 취향이 있는지라 늘 미세하게 메뉴 구성이 다르다. 한 녀석은 토마토가 싫대고(그래서 딱 하나만 먹기로), 한 녀석은 잼은 싫으니 딱 1개에만 발라달라고 하고... 하여간 요새 애들은 본인 주장이 뚜렷하다.


밀가루를 피하고 있는 아이들은 아몬드가루와 두유요거트, 차전자피 가루로 만든 홈메이드 빵을 먹고 어른들은 시판용 빵을 먹는다. 아이들을 위해 혹은 취미생활로 베이킹을 종종 하지만, 역시 사 먹는 빵이 최고이긴 하다.



굴라쉬와인에이드를 먹고도 아직 잔뜩 남아있는 와인 처분이 시급하다. 이럴 땐 뭐다? 바로 뱅쇼! 하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오렌지나 레몬 등 시트러스 종류의 과일과 배, 사과 등은 기본이요 계피, 팔각, 정향 등 정말 여러 가지가 재료가 들어간다. 당연히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때 있는 재료로만 대충 만드는 편이다.


이 날은 오렌지 대신 오렌지주스를 선택하는 과감함은 기본, 생레몬 대신 레몬청에서 몇 개 건져서 사용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향신료는 계피대표로 넣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당황스러운 조합이다. 이게 무슨 뱅쇼란 말인가.


그래도 다행히 사과는 있었다. 껍질을 깨끗이 씻고 쓴 맛이 날 수 있는 씨를 제거하고 얇게 썰어준다. 야매 요리는 늘 이렇게 탄생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오합지졸 뱅쇼의 탄생


알코올 성분이 휘발되려면 뚜껑을 열고 팔팔 끓여줘야 한다. 온 집안이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하다. 막상 끓이고 나면 절반 정도밖에 양이 남지 않는, 그래서 더 귀한 한 방울 한 방울이다.


뱅쇼가 만들어지는 동안 남은 호박은 저녁에 먹을 스프카레를 위해 손질해둔다. 이 중 일부는 언젠가를 기약하며 냉동실에 쟁여둔다. 이렇게 손질해 놓으면 남은 재료가 상할 걱정도 없고, 한 동안 재료 수급 걱정 없이 편하고 좋다.

다음에는 어떤 요리로 탄생하려나?


드디어 완성된 뱅쇼! 비록 재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뱅쇼'라고 부르기도 차마 민망하다. 뱅쇼계의 이단아라고 해야 하나. 다행히 그래도 맛은 그럭저럭 괜찮다. 꿀을 소량 넣어주어 달달함이 느껴져야 더 입에 착착 붙는다.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도 한 잔 대령한다. 그렇지 않아도 뱅쇼 향이 방 안에까지 풍겨서 이미 눈치챘다나 뭐라나.

전기세 과부하 주의! 만들어 놓으면 순삭되는 인기만점 <뱅쇼>


아침부터 단호박스프도 끓이고, 뱅쇼도 끓였더니 설거지가 한가득이다. 이게 무슨 일? 설거지 한바탕을 끝내 놓고 한숨을 돌려본다.

여기 무슨 잔칫집??



점심밥 준비를 하려니 아무래도 에너지 고갈이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게 있으니~ 바로 육개장! 반조리 식품이라 그냥 끓이기만 하면 된다. 이럴 때 보면 세상 참 좋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남편을 위해, 얼얼해진 입을 중화시킬만한 반찬을 하나 준비한다. 마침 햄도 한쪽 남았겠다, 감자 풍년이겠다, 메뉴는 감자햄볶음. 여기에 커리파우더가 키 포인트다. 톡톡 뿌려주면 향긋하니 훨씬 고급스러운 맛이 완성된다. 별거 아니지만 한 끗 차이로 평범한 요리에서 특별한 요리로 격이 상승한다. 물론 대부분의 한식이 그러하듯이 참깨를 솔솔 뿌려 마무리는 과정은 필수.

맛의 비결은 바로 이 커리파우더!


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밥그릇에 옮겨 담기도 귀찮은 관계로 밀폐용기 그대로 상에 올린다. 설거지도 줄이고 좋은 거 아니냐며 위로하면서.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 역시 하루에 한두 끼는 한식을 먹어야 속이 편하긴 한 걸 보니 나이 든 걸 실감한다.

아침은 양식, 점심은 한식, 저녁은 일식 예정



내일은 첫째 아이의 생일이다. 평소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가 좋겠다 싶어 미리  구워본다. 자투리 반죽으로 만든 초코찹쌀브라우니는 아이들 간식으로 당첨.

견과류 올린 초코케이크와 초코찹쌀브라우니


케이크 위에 각잡힌 견과류 토핑과는 달리 머핀틀 위에 견과류 토핑은 유독 자연스러운 이유는? 바로 둘째 아이가 요리를 돕겠다며 나섰기 때문. 뭐 선물용도 아니고 본인들이 먹을 거니까 실컷 마음대로 꾸미라고 허용해주니 함박웃음이다. 비록 모양은 살짝 아쉽지만, 아이가 만족해하니 그걸로 나도 오케이.

쫀득쫀득~ 찹쌀가루 특유의 식감과 달달한 맛의 콜라보



저녁 메뉴는 그토록 고대하던 스프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일본 여행에 갔을 때 멋도 모르고 처음 먹어봤다가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동이란!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내 그 맛이 잊히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합정동에 유명한 스프카레 맛집이 있다는 소식들 듣고 가봤는데 이거 웬걸, 본토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색하게 어느 날 그 식당이 사라졌다. 얼마나 아쉽던지.


아무튼 맛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집에서 흉내 내 보기로 했다. 들어가는 재료가 꽤 만만치 않다. 야채란 야채는 총집합시킨 후 올리브유와 허브솔트로 뒤적뒤적한 후 오븐에 구워준다. 단호박과 브로콜리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려준다. 물론 스프카레 육수도 팔팔 끓여주고 면도 삶는다. 완전 주방 조리기기 풀가동이다. 나도 덩달아 정신이 없다. 잊지 말고 반숙란도 미리 준비해둔다.

이렇게나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스프카레>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은 기분 탓 이려나? 알록달록한 색감은 어찌나 영롱한지~ 하지만 요리를 완성하기도 전에 벌써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왕이면 닭다리가 하나 들어갔으면 더 든든했을 텐데, 그리고 가지도 좀 사놓을걸 싶다. 꼭 이런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후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다시금 만들어보게 되는 습관이 있다. (실제로도 며칠 후 또 만들어 봤다는 후문)


어디서 또 본 건 있어 가지고 야채 꼬치부터 야채 배치까지 열심히 흉내 내 보았다. 비슷한 맛을 내보기 위해 훈제 파프리카 가루를 넣고, 야채 육수도 넉넉하게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프카레 본연의 맛을 내기는 역부족이다. 시판 카레의 한계란 말인가, 나의 요리 솜씨의 한계란 말인가.


아무래도 직구로 스프카레 재료와 향신료를 더 사야 하는 건가싶다. 그래도 절반이라도 그 맛을 비슷하게 재현해낸 것만으로도 자체 감격이었다. 호로록 떠먹는 국물은 감칠맛이 나고, 생면도 제법 잘 어울린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격이었던 카레스프의 맛


이 날 후로 다시 만들어 본 스프카레. 닭다리를 추가하고, 육수도 좀 더 맛을 가미했더니 조금 나아졌다. (이런 도전 정신과 열정으로 공부를 했었더라면....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


비록 완벽하게 현지의 그 맛을 복붙 하지는 못했지만, 주로 카레를 덮밥으로만 먹다가 색다른 요리 방법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야매요리 치고는 이 정도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요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틀린 그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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