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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ul 05. 2021

누룽지백숙, 집밥으로 가능하다고?

직접 찹쌀누룽지부터 만들었던, 아무도 못 말리는 이놈의 도전 정신이란

팬케이크가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 덕분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요리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래서 평일 아침에는 피하고 싶은 그런 메뉴. 뭐 별 수 있나. 고객님이 원하시는데 해드려야지. 냉장고에서 아껴두었던 글루텐프리 팬케이크 가루를 꺼낸다.


팬케이크는 모양이 생명이다. 도톰하면서도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베이킹 틀 '무스링'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틀 주면에 기름이나 버터 칠 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깜빡 잊고 안 하는 바람에 떼어 내느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아,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프라이팬 크기가 작아서 한 번에 4개를 동시에 굽지 못했다는 것. 그러고 보니 허점 투성이인 요리였구나 싶다.

약불에 천천히 굽는 게 관건!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팬케이크


어쨌거나 결과물은 이 정도면 합격! 바나나와 건포도 그리고 아몬드슬라이스도 올려주면 브런치카페 부럽지 않은 비주얼이다. 주방에서 솔솔 풍기는 냄새에 아이들은 아침부터 환호성이다.

주문하신 조식 나왔습니다! <팬케이크>


건포도 대신 블루베리로 하면 더 좋았겠지만, 바쁜 평일 아침부터 이 정도면 훌륭한 편이라고 후하게 점수를 줘 본다. 한켠에는 샐러드도 곁들여본다. 사과는 슬라이스로 썰어서 놓으면 별거 아니지만 예뻐 보이는 효과는 덤.


이렇게 사과를 썰면 남은 부분은 어떻게 하냐고? 물론 바로 먹는 방법이 가장 좋을 테고, 냉장고에 킵해두었다가 샐러드에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알뜰한 한주부, 자투리 사과도 놓치지 않고 백 배 활용




혼밥은 어찌 보면 하나의 탈출구 같이 느껴진다. 주로 잔반 처리 시간으로 활용된다는 것은 비밀이지만(혼밥의 잘못된 예). 아무래도 혼자 먹는 점심은 메뉴 구성도 자유롭고, 밥시간도 자유로워서가 아닐까.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숙란도 있겠다, 브로콜리와 토마토도 있겠다 오늘은 샐러드로 당첨! 엑스트라버진올리브유에 발사믹식초로 드레싱도 후딱 만든다.


아니, 이렇게 다이어트식 못지않게 가벼운 점심을 먹다니 무슨 이유가 있을까? 정답은 저녁에 많이 먹으려고. 이미 큰 그림을 그려놓고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체 저녁 메뉴가 뭐길래?

다 계획이 있었던, 샐러드 점심 밥상



힌트는 찹쌀누룽지. 감이 오는가? 저녁 메뉴는 바로 보양식의 대표 주자, 누룽지백숙이다. 팔당에 유명한 누룽지백숙집은 우리 가족의 단골 맛집이다. 맛도 맛이지만 주변 풍경도 너무 근사하고 심지어 주중에는 카페에서 후식까지 무료로 제공되기에 서울 근교 나들이 겸 종종 들리는 곳이다.


이렇게 사 먹기만 했던 누룽지백숙이 한없이 그립던 어느 날, 멀리까지 갈 시간은 없고 먹고는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다면 배달로 해결해보자 싶어 검색을 해보니 아쉽게도 집 근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있긴 했지만,  '식은 음식은 안 먹으니만 못하다'는 평소의 음식 철학 덕분에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물론 꽤 높은 비용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어른만큼 아니 어른보다 더 잘 먹는 첫째 아이, 그리고 고기 종류면 뭐든지 잘 먹는 둘째. 머릿속으로 얼추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집밥으로 해결하는 게 이득이다 싶다.


'그래, 이럴 바에 까짓것 내가 만들어보지 뭐'라고 호기롭게 도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그럭저럭 할 만할 것 같았다. 대체 이런 호기심과 용감 무식한 도전 정신은 어디서부터 생긴 건지. 아무튼 누룽지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었다. 원하는 사양의 찹쌀누룽지를 찾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집에 찹쌀도 넉넉히 있어 결국은 누룽지부터 만들게 되었다.


아 어째 점점 일이 커지는 것 같은 이 불안감은 뭐지. 


먼저 찹쌀을 몇 시간 충분히 불려서 밥을 지었다. 그리고 살살 펼쳐서 약불에 구워주는 과정으로 돌입. 아무래도 팬 한 개로는 하루 종일 굽게 생겼다. 프라이팬을 하나 더 꺼내서 양쪽으로 풀가동. 이거 무슨 누룽지 공장이라도 된 기분이다. 2개의 프라이팬에서 2번을 구웠으니 총 4개의 누룽지 완성. 설마 이 많은 걸 다 먹을까 싶었지만,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먹성 좋은 우리 가족은 남김없이 클리어했다는 후문.


본의 아니게 강제로 자급자족하는 삶이란! 누룽지도 만들게 될 줄이야


생각보다 꼬득꼬득 하질 않다. 홈메이드의 한계란 말인가. 잠시 머리를 굴려본다. 아! 오븐 찬스가 있구나. 오븐에 더 구워주니 표면이 노릇노릇해지고 아까보다 훨씬 바싹 말랐다. 제법 모양새를 갖춰간다. 이럴 때는 스스로 감탄. 하지만 나는 도대체 주방에 몇 시간을 서 있던 건지. 뒤늦은 후회와 현타는 늘 있기 마련이다.



어느새 간식시간. 출출해졌는지 아이들이 맛있는 걸 달라고 재촉한다. 하아, 엄마는 좀 쉬고 싶은데 말이다. 찬장을 뒤져보니 먹고 남은 미니 뻥튀기 과자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다. 순간 머릿속에서 마카롱 꼬끄처럼 활용해봐도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현미쑥떡에 곁들여 먹는 볶음콩가루와 흑임자가루, 그리고 살구잼을 필링으로 채우기로 한다. 제법 근사한 뻥튀기 마카롱의 완성이다.   

마카롱st. 미니뻥튀기의 화려한 변신! 그리고 오늘도 열일하는 수제 레몬청


마카롱을 한 동안 못 먹었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생전 처음 접하는 특이한 간식이라 그런지 인기 폭발이다. 앙코르를 외쳤으나, 식재료 부족으로 여기서 마감. 다음에는 더 다양하게 만들어 주겠노라 약속했다.



이제 저녁밥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시간. 닭을 사면서 마침 세일하고 있던 한방 삼계탕 재료 팩도 같이 구매했는데, 완전 맛의 핵심이었다. 은은한 향이 기가 막혔다. 여기서 반전은, 백숙이라면 마땅히 백숙용 닭을 필수이거늘 이 날은 볶음탕용 그러니까 절단육을 사용했다.


워낙 평소에 닭을 무서워하는지라(하지만 먹기는 잘 먹는 이 모순적인 사람 같으니라고....) 손질할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 때 비주얼을 꽤나 신경 쓰는 편이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볶음탕용 닭고기를 사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결말이지만, 그래도 맛으로 승부하면 되는 거니까.


맛에서 패배한다면 남편이 반쪽짜리 누룽지 백숙이라고 두고두고 놀릴게 뻔하니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재료를 아낌없이 투하한다.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너 아니었으면 어쩔 뻔! 삼계탕의 품격을 높여준 그대 이름은 <한방 삼계탕재료>


아직도 냉장고에는 부추가 남아있다. 부추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 일단 반찬으로 오이 부추 무침을 만들고, 남은 부추로는 누룽지백숙에 사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발버둥을 쳤음에도 여전히 부추 재고는 쌓여 무려 3일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부추를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누룽지백숙! 그토록 먹고 싶던 너를 드디어 영접하게 되는구나.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 안았기에 완성된 메뉴를 보니 감개무량했다. 그 어느 때 보다 인내심과 공을 들여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부엌에서 찬란하게 불태웠단 말인가.  

백숙용 닭이 아니라 당황하셨죠? 이래 봬도 맛은 괜찮았던 <찹쌀누룽지백숙>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이들은 이 정도면 사 먹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엄치척을 날려준다. 의외로 고기보다 누룽지가 더 인기가 높다. 누룽지 리필 요청이 쏟아진다. 네네, 알겠습니다. 찹쌀 누룽지 대령이요~


아삭아삭한 오이무침도 찰떡궁합이다. 초등학생 입맛에 맞추느라 고춧가루를 살짝만 넣은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렇게 또 하나 미션을 마치고 나니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이걸 누가 시켰던가. 왜 나는 사서 고생하는 걸까?'라는 회의감.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주부 짬밥 14년이면 이제 불가능한 메뉴는 없구나'라는 뿌듯함.


어쨌거나 이 정도의 뜨거운 반응을 보니, 올여름 보양식으로 식탁에 자주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음에는 최소한 찹쌀 누룽지는 시판 제품으로 구매해서 만들어봐야겠다.



* 해당 글은 <Daum 홈&쿠킹>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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