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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ug 07. 2021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장어구이

이래서 사 먹는 음식이었단 말인가!

새벽 5:30 눈이 번쩍 떠졌다. 그 이유는? 바로 빵! 뺑오쇼콜라가 너무 먹고 싶던 터라 생지를 사서 냉동실에 쟁여두었으나, 밀가루를 자제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애들이 자고 있던 시간을 공략했다. 이렇게 전투적으로 빵을 먹을 일인가. 물론 고칼로리도 망설이는데 한몫했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저녁보다 아침에 먹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으로 서둘러 빵을 구웠다.


실온에서 30분 해동하고, 에어프라이어에 15분 정도 구워주니 갓 나온 따끈따끈한 빵이 눈앞에 있다. 아! 행복하도다. 빵순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행복 모먼트 아니겠는가. 커피 대신 오르조라떼도 곁들이니 아아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설마 이 시간에 일어나진 않겠지 싶지만, 괜히 또 불안한 마음에 침대방의 눈치를 살핀다. 다행히 아이들은 7시가 훌쩍 넘어 일어났다. 

아침잠을 단박에 물리치게 해 준 너란 존재, 빵!


슬슬 쓰리이의 아침밥도 준비한다. 그나저나 내 배가 부르니 만사 귀찮다는 게 문제. 불 안 쓰고 적당히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과일 야채 탈탈 털어 아무샐러드와 시리얼을 준비한다. 여기에 달콤한 복숭아도 한 개 썰어준다. 너무 대충인 것 같아서 뜨끔한 마음에 드레싱은 그래도 제대로 만들어본다. 두유요거트에 올리브유, 아가베시럽, 소금, 후추, 그리고 레몬즙을 넣어 주면 끝.

조식 나왔습니다~ 아무샐러드와 시리얼


시리얼도 그냥 주자니 뭔가 양심에 찔려서 견과류를 섞어주니 제법 그럴듯해졌다. 건강도 더 챙길 수 있고 말이다. 평소보다 간소한 밥상에 아이들은 어리둥절이다. 이럴 때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야 한다.


"금방 또 점심시간인데 아침에 너무 많이 먹으면 점심을 맛있게 못 먹잖아 그렇지? 

너희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해줄 거니까 아침은 적당히 먹자."


휴, 다행히 아이들이 수긍해주어서 한 숨 돌린다. 안 그랬으면 "엄마 배고파요, 더 주세요"를 쉴 새 없이 외쳤을 텐데 말이다.

갖은 핑계를 같다 붙인 시리얼 + 견과류




약속한 대로 떡볶이를 만들어 주기로 한 점심시간이다. 아침에 오래간만에 큰 맘먹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같이 그림도 그리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불태웠더니 벌써 기진맥진하다. 배고픔이 극에 달해 과정 컷 따위 쿨하게 생략하고 전속력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뿐.

어른들은 라뽂이, 아이들은 당면 사리 넣은 간장 떡볶이


두 가지로 떡볶이를 만드려다 보니 정신이 없다. 우리 집은 하이브리드 전기레인지라 한쪽은 인덕션, 한쪽은 하이라이트라서 화력도 다르다. 게다가 라면과 당면은 삶는 시간도 다르다. 그리고 당면은 특히 국물을 많이 잡아먹으니 애초에 물을 넉넉하게 넣어야 한다. 두뇌를 풀가동하며 불을 요리조리 옮기기도 하고, 타이밍을 잘 계산해서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완성한다. 역시 살림은 과학이구나.

매콤매콤 라볶이 VS 단짠단짠 간장떡볶이


튀김이 또 빠질 수 없지. 김말이 튀김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준비한다. 만두까지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에어프라이어 용량 부족으로 일단 김말이까지만. 라볶이는 역시나, 입맛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라면에 들어있는 라면스프를 넣었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텁텁한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만 넣고, 설탕, 간장, 마늘, 후추까지 적당히 넣어주니 진짜 입에 착 붙는다. 제법 매콤해서인지 콧물이 다 줄줄 난다. 스트레스도 저만치 달아나는 이 기분이란. 


라면을 넣으니 역시나 분식집 느낌이 제대로 난다. 아이들은 매운 떡볶이를 부러워하면서도 차마 도전하지 못하는 그 아쉬운 표정이 너무 귀엽다. 간장 떡볶이에도 고춧가루를 넣어주었다니까 그제야 무너진 자존심이 조금 회복되었는지 의기양양해진다. 자기들도 곧 매운 음식도 잘 먹을 거라면서. 

코를 풀어가며 먹었던 라볶이




틈새 노동으로 쪽파를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오이를 꺼내서 오이 겉절이를 담근다. 오이를 반으로 가르고 길쭉하게 채 썰어준다. 긁은 소금에 30분 정도 절여주었다가 오이를 구부려보았을 때 흐물흐물해지면 물에 헹군다. 정확한 레시피 대로가 아닌 대충 간을 하다 보니 어랏 맛이 너무 짜다. 이런, 액젓을 너무 많이 넣었나 보다. 긴급 조치로 양파가 투입된다. 휴 급한불은 껐구나. 반찬 하나 만들어 놓으니 든든해지는 마음.

얼렁뚱땅 만든, 오이겉절이



저녁 메뉴는, 집밥 메뉴로는 처음 도전해보는 민물장어구이이다. 요새 장어가 먹고 싶은데, 사 먹으려니 생각보다 가격이 세다. 마침 온라인몰에서 장 보며 검색해보니 세일하길래 이건 운명이다 싶었다. 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소스까지 들어있음은 물론이고 이미 손질이 다 된 민물장어를 샀음에도 긴장되는 이 기분은 반칙인데 말이다.

두둥~ 오늘의 도전 요리, 장어구이


장어의 진액을 제거해주고, 물로 씻어낸 후 키친타월로 물기를 없앤다. 그리고 칼집을 내주면 구울 때 돌돌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고 하니 귀찮아도 칼집을 내준다. 생강은 물에 불려놓았다가 숟가락으로 긁어서 껍질을 까 주고 얇게 편을 썰고, 채를 썰어 찬 물에 담가 아린 맛을 잡아준다.

준비과정만 한참 걸리는, 그래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들


1차는 프라이팬에 구워주고, 2차는 에어프라이어에 굽는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에어프라이어에 구우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프라이팬에만 구우면 기름이 쭉 빠지지 않아 느끼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에어프라이어가 열일 해 주는 날이구나.) 게다가 양념을 발라서 구워봤더니 프라이팬에서 금방 타는 거 같았기에 그냥 소금 후추 간만 하고 굽는 게 나았다.

두 번 구운 장어랍니다


장어만 먹기에 뭔가 아쉽기도 하고, 부추도 얼른 소진시켜야 하기에 자투리 양파와 자투리 호박을 꺼내 후다닥 부추전을 만든다. 사서 고생하는 기분. 장어를 아이들도 같이 먹을까 했지만 장어를 손질하다 보니 잔 가시가 만져진다. 순간 일시정지. "아, 망했다!" 가시가 있는 생선은, 애들은 안 먹겠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차선책으로 냉동실을 뒤져 베이립을 선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냉장고에 꺼내놓아 해동이라도 시켜놓았을 텐데. 아무튼 장어 구우랴, 부추 부침개 만들랴, 베이비립(그래 봤자 해동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끝이지만) 준비하랴 이럴 때는 몸이 3개쯤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러다 정신줄 놓기 딱 좋은 상태였다. 홀로 주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이 신세란. 

이 와중에도 어른용은 고추 송송 썰어 넣어 매콤한 맛으로


다행히 아이들은 베이비립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딸랑 오이지냉국 하나 곁들였을 뿐인데 군말 없이 잘 먹어주었다. 역시나 둘째는 부추전도 딱 2개만 먹고 끝이었지만, 어쨌거나 아이들 식사는 겨우 해결. 마치 위기 탈출한 기분이었다. 

냉동실에 하나쯤 쟁여둘 만한 핫템, 베이비립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장어구이를 마주하는 순간, 이 감격을 어찌 표현하리오. 제법 외식으로 먹었을 때의 상차림 비주얼 못지않다. 둘째가 빤히 쳐다보더니, "엄마 갈매기 고기 먹어?" 그리고 보니 갈매기로 충분히 오해할만한 모습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참 아무도 못 말린다.


장어구이는 역시 생강과 부추를 올려서 깻잎에 싸 먹어야 제 맛이다. 언제나 먹는 데는 진심인 편 이기에 오늘도 풀세트로 준비했다. 밖에서 사 먹을 때 같이 나오는 장어탕이 생각이 간절했지만 오늘은 장어구이로 만족하기로 한다. 장어탕 까지는 능력 밖의 일 이기 때문. 좀처럼 맛에 별 감흥이 없는 남편도 오늘만큼은 호들갑이다. 집에서 장어구이를 먹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제 아무리 손질된 장어였음에도 요리 난이도 및 설거지 난이도 상이었던 장어구이.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치는 메뉴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과연 집밥 메뉴로 적당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가격적으로는 훨씬 만만했다는 것. 근데 내 노동력은 어쩔 건데!!! 


결론은, 앞으로 장어는 그냥 사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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