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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ug 03. 2021

예측불허 야매 요리란 바로 이런 것

어제의 함박스테이크가 오늘의 미트볼로 다시 태어난 사연은?

스프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겨울에는 아침 메뉴에 자주 등장하지만 여름에는 자제하는 편이다. 아침부터 불 앞에 서 있으면 아무래도 시작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용량의 당근을 산 이 날은 달랐다. 어떻게든 당근을 처리해야 하는 게 급선무였기에 고민 끝에 당근 스프를 만들기로 했다.


늘 그렇듯이 선 구매, 후 후회 패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나올 수 없는, 1+1 혹은 대용량 구매의 아름다운 가격의 매력이란! 전날 남편 생일 케이크였던 카스테라와 제철과일 자두도 같이 곁들였다.

조식 나왔습니다~


밥솥으로 만든 카스테라 치고는 제법 맛이 괜찮았다. 폭신폭신한 식감부터 달콤한 맛 까지, '역시 계란과 설탕이 듬뿍 들어가면 천상의 맛이구나'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살찔 걱정은 잠시 접어두는 걸로!


당근스프는 의외로 간단하다.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 전날 밤 병아리콩을 씻어서 넉넉한 물에 불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두 배 정도 불어난 병아리콩을 20~30분 정도 푹 삶아준다. 동시에 당근과 양파를 채 썰어서 볶아주다가 삶은 병아리콩과 물을 넣고 3분 정도 끓여준다. 물론 소금 후추로 간을 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이제 마지막 과정으로 믹서에 넣고 갈아준 후 다시 조금만 더 끓여주면 완성!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당근스프는 아주 고소했다. 색감이 너무 예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까다로운 입맛의 둘째는, 아니나 다를까 한 입 먹어보더니 오만상을 쓰며 우웩거린다. 니가 그럼 그렇지. 그리하여 당근스프 면제. 이 맛있는걸 싫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만 언젠가는 이 맛을 알아주길 바라며.

색깔 한 번 곱디 고운 당근스프의 자태


당근스프와 자두의 색감 만으로도 이미 입맛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이거 아침부터 이렇게 입맛 돌이 있기 없기?

새콤달콤~ 집 나간 여름 입맛 돌아오게 만드는 자두



친정엄마가 주신 공심채 한 다발을 오늘 점심에는 먹어야겠다 싶었다. 공심채 하면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바로 공심채 볶음. 된장을 풀고 국으로 먹어도 된다지만 왠지 그러기에는 아깝다. 재료가 허술하지만 일단 집에 있는 걸로 한번 만들어 본다.


공심채볶음의 킬 포인트는 매콤한 맛. 청양고추와 잘게 다진 페퍼론치노를 반반 섞어서 사용했다. 마늘을 넣고 볶아주다가 토마토도 하나 있길래 썰어 넣어주고 액젓으로 간을 해주면 끝. 반찬처럼 먹기도 하지만 이 날은 밥과 계란을 얹어 덮밥 스타일로 즐겼다.   

이국적인 느낌 물씬~ 공심채볶음


아니, 이게 뭐라고 이토록 이국적인 맛이 나다니! 그저 신기했다. 동남아 어딘가에 와 있는 이 기분이란! 공심채를 제외한 다른 재료들은 냉장고에 있는 흔하디 흔한 재료들인데 또 이런 조합은 신선했다. 역시나 기분전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색적인 요리를 맛볼 때인 것 같다. 요새같이 맨날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집콕이 이어지는 나날에는 먹는 즐거움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점점 멀어져 가는구나....

덮밥 스타일로 한 끼 식사 해결


매운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그렇다고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기에는 분명 향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거라 생각함) 아이들은 냉장고를 탈탈 털어 갖은 나물과 야채에 참치를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줬다. 미안하다 얘들아.



점심을 부실하게 먹인 탓에 저녁 메뉴는 지극히 아이들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었다. 언제 먹어도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바로 토마토스파게티로 결정! 하지만 재료가 영 부족하다. 새우를 넣으려고 했더니 양이 너무 적고, 고기류를 더하고 싶은데 냉장고에는 닭가슴살뿐이다.


냉동실을 뒤져보니 얼마 전에 만들어 쟁여둔 함박스테이크가 눈에 띈다. 잠시 머리를 굴려보다가, 머릿속에 반짝 불이 켜진다. 함박스테이크를 꼭 함박스테이크로 먹으라는 법은 없다! 고로 모양을 바꿔주는 걸로 타협점을 찾았다. 충분히 해동시켜 준 후, 동글동글 작게 빚어서 미트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사실 함박스테이크나 미트볼이나 재료나 요리법은 거기서 거기이다. 큰 차이 없으므로 맛에 이질감도 당연히 없을터. 모양만 슬쩍 바꿨을 뿐인데, 미트볼로 다시 태어나다니 이 무한한 변신에 웃음이 나온다.

함박스테이크의 변신은 무죄! 미트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귀하신 몸 미트볼은 따로 팬에 먼저 구웠다. 그리고 올리브유에 양파와 브로콜리를 볶아주다가 미트볼도 같이 넣어준다. 여기에 토마토페이스트를 넣고 조금 더 끓여주면 소스 완성. 오늘의 위해 아껴둔 글루텐프리 스파게티면도 삻아준다. 밀 가루가 아닌 옥수수로 만든 건데 식감도 그렇고 비주얼도 그렇고 일반 파스타면과 큰 차이가 없다.

육즙 가득 품은 미트볼


스파게티에 빠질 수 없는 단짝 친구는 샐러드. 오늘은 좀 특별하게 준비했다. 문어샐러드가 먹고 싶던 터라 얼마 전 자숙 슬라이스 문어를 사놨다. 일반 문어에 비해 조금 비싸긴 해도 삶아져 있고 썰어져 있는 게 어찌나 편하고 좋은지!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백 번 낫다 싶다. 세비체라고도 하는 이 문어 샐러드는 차갑게 먹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미리 만들어 놓고 냉장고에 차게 두었다가 먹어야 한다.


파프리카, 루꼴라, 오이, 방울토마토 등 각종 야채들을 깍둑썰기 해주고 감자도 익혀서 곁들인다. 여기에 문어와 블랙 올리브를 넣어주고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발사믹 식초, 아가베 시럽, 레몬즙을 넣어주면 완성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문어를 찾아라!


딱 두 가지 메뉴만 있을 뿐인데, 이건 뭐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이럴 때 늘 빠지지 않는 멘트, "이거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얼마인 줄 알아?" 그러니까 결론은 엄마 말을 잘 듣자, 아내 말을 잘 듣자!

미트볼스파게티와 문어샐러드로 꽉 채운 식탁


스파게티는 역시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아이들은 먹기도 전에 더 있냐고 물어볼 때 바로 눈치챘지만, 오늘 저녁 메뉴는 대 성공이다. 문어샐러드는 여름에 먹기 최적화된 샐러드 같았다. 차게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알록달록한 색감까지, 그리고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올리브유의 풍미도 느껴지는 이 고급진 맛은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잡는데 이만한 게 있을까 싶었다.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다 먹은 이 전투적인 식탁.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진으로 남겨봤다. 늘 이렇게 남김없이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아무튼 이 맛에 요리를 하는 거겠지! 또 어떤 메뉴로 가족들에게 기쁨을 선사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본다.



* 해당 글은 <Daum 홈&쿠킹>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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