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고운 Oct 24. 2021

처치곤란 먹고 남은 음식의 대 반전!

잔치국수가 짬뽕으로, 시금치가 아닌 공심채프리타타로 변신하는 마법

여느 주부와 마찬가지로 나의 고민은 "음식물 남기지 않기"이다. 그날 만든 요리는 그날 다 싹 먹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애매하게 남은 음식을 그렇다고 눈 딱 감고 버리자니 아깝고, 결국은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 속 어딘가로 직행하고야 만다. 하루 지나고 먹는 음식은 당연히 감흥도 덜 하다. 분명 어제의 인기 메뉴였거늘 하룻밤 자고 나니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로 추락해버린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남은 음식, 과연 어떻게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가! 뭔가 기존 요리와 전혀 다르게 맛을 창조할 수는 없는 것인가? 평소에 갈고닦은 퓨전요리(라고 쓰고 야매요리라고 읽음) 실력을 발휘하여 바로 이렇게 음식을 재 탄생시켰다.



재활용 요리 1. 잔치국수로부터 출발한 놀라운 짬뽕의 탄생

아마도 내 기억에는 비가 오는 날이었던 것 같다. 이런 날씨라면 짬뽕이 떠오르는 건 국룰. 근데 짬뽕을 어떻게 만들지?라는 고민을 전날 먹고 남은 잔치국수가 단박에 해결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기본으로 들어가는 재료(육수, 야채 등)는 비슷할 것 같고 여기에 매콤한 맛을 추가하고 몇 가지 야채와 해산물만 더해주면 그럴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냉장고에 남은 칼국수면도 있음을 발견하고 든 생각, '이거 게임 끝이네!'

짬뽕의 출발은 바로 먹고 남은 잔치국수


매콤한 맛은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로 내주고, 굴소스를 넣어 좀 더 감칠맛을 더했다. 배추, 청경채, 호박, 콩나물 등 냉장고를 뒤져서 있는 대로 다 꺼냈다. 그리고 냉동실에 웬만해서는 상시 구비되어 있는 오징어와 새우도 꺼내서 대기시켜준다.  

부가 재료들 총집합


기름을 두르고 재료들을 달달 볶으며 매운맛을 내준다. 야채가 익으면 남은 잔치국수 투하. 칼칼한 맛을 위해서 청양고추도 넣어주고 팔팔 끓여준다. 면도 따로 삶아서 슬슬 준비시켜 준다.  

짬뽕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나름 즉흥적으로 만든 것 치고는 제법 근사했다. 일단은 냉장고 야채실에 넉넉하게 있던 자투리 야채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보통 배달음식으로 먹는 짬뽕은 너무 매운맛이 강해 자극적일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내 입맛에 맞게 만드니 딱 적절하게 기분 좋은 매콤함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자화자찬으로 마무리. 이로써 남음 잔치국수 국물도 싹 처리하고, 비 오는 날 먹고 싶던 메뉴인 짬뽕을 영접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행복했다. 짬뽕의 모태가 잔치국수라니, 생각지도 못한 조합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너무 맵지 않아 내 입맛에 딱! 아름다운 짬뽕의 탄생





재활용 요리 2. 꼭 시금치일 필요 있나요? 공심채로 만든 프리타타


계란, 토마토, 시금치, 베이컨, 버섯, 양파 등이 들어간 시금치프리타타를 종종 해 먹는다. 하지만 최근에 시금치 값이 고공 행진하는 바람에 한동안 시금치를 살 수가 없었다. 공심채볶음을 먹고 남은 공심채를 째려보며 '아 이건 무슨 요리를 해 먹는담'하며 고민에 빠졌을 때,  머릿속에 스치듯 지나가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공심채 프리타타'


생각해보니 시금치랑 모양도 색깔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맛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도전해볼 만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다? 실행에 옮기는 게 남았다. 도전정신, 실험정신은 이럴 때를 위해서인가 보다.


시금치와 마찬가지로 깨끗이 물에 씻어서 일정 간격으로 썰어준다. 한 숨 죽도록 기름을 두른 팬에 볶아주고 나머지 손질하고 채 썬 재료들을 넣어준다.

어서와 공심채프리타타는 처음이지?


계란을 풀어서 볶은 야채에 넣어준다. 약불에 한참을 익혀야 하는 음식이라 자칫하면 태울 수도 있고 재료들이 꽤 많이 들어가서 두툼하다 보니 조리 시간이 의외로 오래 걸린다. 이럴 때 안전빵으로 그리고 손쉽게 만드는 비결은 바로 전기밥솥이다. 만능찜 기능으로 30여분 익혀주면 끝이다.


그릇에 옮겨 담고 마치 피자처럼 8조각으로 잘라준다. 와, 겉모습만 보면 제법 그럴듯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시금치 대신 공심채를 넣었더니 큰 차이 없어 보인다. 일단은 절반의 성공인 셈.


사실 고백컨데, 이 날 공심채프리타타와 함께 먹었던 오믈렛의 소스도 역시 전날 먹고 남은 함박스테이크에서 재활용한 요리이다. 애매하게 남은 소스를 보관해주었다가 이렇게 오므라이스 소스로 곁들이니 색깔도 살아나고 맛도 한결 업그레이드되었다. 공심채도, 함박스테이크 소스도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재활용 요리 3. 남은 갈비찜이 갈비또띠아롤로 재탄생

보통은 한식은 한식으로, 양식은 양식으로 살짝 변화를 주는 편이지만 그야말로 요리 분야가 바뀐 경우도 있다. 갈비찜에 그 사례에 해당된다. 한식이었던 갈비찜이 멕시코 음식인 또띠아롤로 확 변신하기도 한다. 야채와 국물까지 같이 남았다면 그냥 반찬으로 밥에 곁들여 먹고 말았을 텐데, 이번에는 좀 상황이 달랐다. 살코기 몇 점만 애매하게 남은 터라 이걸 대체 어떻게 살려야 하나 막막했다.

남은 갈비찜의 운명은?


머리를 쥐어 짜내 보았다. 살코기를 잘게 잘라서 어디 속재료로 쓸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더라? 아! 또띠아롤이 떠올랐다. 또띠아 위에 계란을 부쳐서 올리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닭가슴살도 슬쩍 추가해서 갈비찜 살코기와 함께 잘게 잘라 일자로 펼쳐놓는다. 여기에 피자치즈,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등 색감을 담당할 야채들도 소환시킨다. 허니머스터드소스와 홈메이드 피클로 알싸한 맛을 더해준다. 분명 정통 또띠아 레시피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한 가지 목표는 달성했다. "이로써 골칫거리였던 남은 갈비찜을 싹 처리했도다!"

속재료를 욕심껏 넣었더니 겨우겨우 말았던 또띠아롤


그 누가 남은 음식으로 만든 거라고 믿겠는가! 그냥 원래 태생 자체가 또띠아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입맛 당기는 색깔의 조화는 물론이요, 영양도 채우고 잔반 처리까지 완벽하게 수행한 그야말로 일석삼조였던 갈비또띠아롤 이었다.




재활용 요리 4. 뱅쇼도 끓이고 잼도 만들고, 한 번에 두 가지를?

찬바람이 불고 목이 칼칼할 때면 자연스레 뱅쇼 생각이 난다. 뱅쇼는 레드와인에 과일과 시나몬 등의 향신료를 첨가하여 끓인 음료로 겨울철에 유럽에서 즐겨 마시는 따끈한 차 이다. 그 향긋함이 기가 막혀서 한 번 먹어보면 중독될 수밖에 없다.


뱅쇼는 만드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재료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선뜻 쉽게 만들지는 못한다. 물론 뱅쇼 키트도 따로 팔지만 그냥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드는 게 익숙하다 보니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만들곤 한다. 원래대로라면 계피, 정향, 팔각 이렇게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어야 더 제대로 된 레시피이다. 여기에 배, 사과, 레몬까지 구비하다 보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평소의 요리 철학 "없으면 없는 대로"에 위배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몇 가지 재료 외에는 쿨하게 생략하곤 한다. 그래도 맛만 좋다는 사실.


아무튼 배와 사과, 레몬즙(레몬 대신 이게 더 효율적임)을 넣고 뭉근하게 푹 끓여주면 뱅쇼가 완성된다. 늘 그래 왔듯이 건져낸 과일을 버리려고 하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이거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일의 단맛이 뱅쇼에 다 빠져나갔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와인에 졸인 특급 과일 아닌가.


한참을 끓였기 때문에 조금만 힘을 줘서 으깨주면 부드러운 형태가 된다. 여기에 설탕과 레몬즙을 넣고 졸여주니 오호라~ 과일와인잼의 완성이다. 정말이지 즉흥적으로 만든 데다가, '먹어봐서 맛이 없으면 버리지 뭐'라는 배짱으로 만든 잼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이튿날 아침, 나는 아무 언급 없이 모른척하고 잼 샌드위치를 아침식사로 준비했다. 겉모습만 봐서는 포도잼과 큰 차이 없었기에 역시나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 입 먹어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남편 왈, "이거 무슨 잼이야? 왜 이렇게 맛있어?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연신 질문을 쏟아내는 남편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나의 야매 요리 이야기를 들려줬다. 실은 어제 뱅쇼 만들고 버리려다가 아까워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한번 시도해 본 잼이라고.


그랬더니 "앞으로는 이 잼을 먹고 싶어서라도 일부러 뱅쇼를 만들어야겠네!"라며 극찬을 이어갔다. (참고로 별별 특별한 음식을 해준다 한들 별로 반응이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이런 게 바로 전세 역전이구나 싶었다. 뱅쇼에서 부수적으로 만든 잼인데, 이제는 잼이 주인공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다행히 아이들도 입맛에 맞는지 잼 빵을 더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뱅쇼에서 얼렁뚱땅 탄생한 과일와인잼



이런 게 바로 요리의 묘미인가 싶다. 정석대로 하는 것보다 뭔가 아이디어를 더하거나 실험정신을 발휘했을 때 의외로 얻게 되는 좋은 결과가 나를 더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아무 방해 요소 없이 탄탄대로로 펼쳐진 평탄한 삶보다는 오르막, 내리막 굴곡을 겪으며 더 삶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처럼 요리 또한 레시피대로 하기보다는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나 변주도 필요한 것 같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음식은 버리지 말자는 신념에서 탄생한 재활용 요리. 때로는 청출어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원래 요리보다 창작 요리가 더 나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인생도 요리도,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새로운 요리를 도전하는 것 자체가 내 삶의 활력이 되어준다. 그리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요리를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깔깔깔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창의력 넘치는 요리는 계속된다!!!



* 해당 글은 <Daum 홈&쿠킹>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


이전 17화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수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