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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Oct 24. 2021

집밥로그를 마치면서

매일의 밥상을 글로 담아내며 느낀 행복한 순간

집밥로그의 출발을 단순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쓰기'와 '요리하기' 이 두 가지를 접목시키며 탄생했다. 냉장고 속 재료가 살아있는 글감이었고, 매일매일 마주하는 밥상이 다양한 주제가 되어준 덕분에 비교적 글 작성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굳이 머리를 쥐어 짜내지 않아도 소재가 넘쳐났기에 오히려 글 쓰는 속도가 따라가 주지를 못한 적이 훨씬 많았다. 1년이면 365개, 아무리 여행을 다니고 외식을 하는 날이 있다 한들 최소한 300여 개의 글감이 자동생성되는 꼴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야말로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의 일치)의 산물인 셈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릇에 예쁘게 담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으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새벽에도 번쩍 눈이 떠져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기도 하고, 짬짬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이기도 했다. '이번 주말에는 어떤 색다른 요리를 도전해볼까?'라며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정신없이 라이킷 알람이 울리고, 구독자수 또한 점점 늘어났다. 글을 썼다 하면 다음 메인 페이지에 게재되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곤 했다. (나중에 세어보니 3번에 2번 꼴로 홈&쿠킹 페이지에 소개됨) 천명, 만 명 단위로 조회수가 상승할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늘 심장이 두근거렸다. 독자들에게 참으로 감사하고, 때로는 과분한 느낌도 들었다. 돌아보니 짜릿한 경험의 연속이던 나날이었다.


아무튼 집밥을 뚝심 있게 고집하는 이유에 대한 확신을 조금 더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매일 반복되는 노동이고 고단한 부엌데기의 삶이었지만 뭐랄까, 존재의 이유를 찾은 기분이랄까? 평범한 밥상이지만 그 안에 애 엄마로서의 리얼한 현실과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이야기로 풀어가는 과정,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잘 먹고 잘 크는 건강한 아이들이 있기에 앞으로도 집밥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얘들아, 이제 좀 그만 먹자! 오늘 주방은 이제 마감!"이라고 설득할 정도로 계속해서 간식 타령에 후식 요구에 돌아서면 배고프다, 더 달라 등 무서운 먹성을 가진 두 아이들이 어쩌면 내가 요리를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우리 엄마 요리가 최고!"라고 엄지척을 날려주고 어딜 가면 "우리 엄마는 요리 엄청 잘해요"라는 엄마요리부심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먹는데 단연 1등인 우리 아이들


생각해보면 식사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소통의 시간인 것 같다. 우리 집은 하루에 최소 1~2끼는 네 식구가 모두 함께 밥을 먹는다. 이런 당연한 일상이 주변을 보면 의외로 많지 않아 참 감사하구나 싶다. 식탁에서는 단지 '밥만 먹는 행위'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밥'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통이 일어나고, 별 것 아닌 일에 온 식구가 같이 배꼽을 잡고 웃고 즐기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밝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함께 하는 이 밥상이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와도 친구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하나의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경험이 쌓인 덕분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 때 특히 어르신들에게 폭풍 칭찬을 받는데(진득하니 바른 자세로 앉아서 골고루, 남기지 않고 싹싹 잘 먹는 모습) 이럴 때면 엄마로서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남은 음식이라고는 1도 없이 싹싹~ 올 클리어!


요리를 하다 보면 더 예쁘게 세팅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사진발 잘 받는 다양한 그릇도 사고 싶고, 생각처럼 사진이 잘 나오지 않으면 조명 탓도 한다. 한동안은 식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검색도 해봤지만 헛된 꿈인 것 같아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어쨌거나  '사진을 위한, 보여주기 식 요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작정하고 장비를 구비하면 지금보다 몇 배는 업그레이드된 음식 사진을 보여줄 자신은 있었으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최대한 친근하게 원래 집밥 그대로를 담은 것이고 먹기 전에 잠깐 그것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기에 어설픈 아마추어 느낌이 드는 터라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유명 인플루언서의 특급 비주얼 컷이나 요리책에 나올법한 근사한 플레이팅은 실제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걸 잘 알기에 굳이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글 쓰며 다짐했던 '있는 모습 그대로', '재료는 없으면 없는 대로', '평소대로 야매요리 느낌 살려서'를 표방했기에 후회는 없다. 

진정한 프로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종종 왜 레시피는 없냐고 묻는 지인들이 있다. (그중 남편도 한 명이다) 초록 검색창에 검색하면 각종 레시피는 넘쳐나지 않던가. 굳이 나까지 합류하지 않아도 정보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외에도 중대한 사유도 있다. 막상 레시피를 작성하려 해도 평소에 워낙 재료이고 양념이고 대충 감으로 계량하는 터라 "적당히", "어지간히", "약간"과 같은 두리뭉실하게 표현하게 되면 오히려 독자들의 반감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내 야매요리의 실력이 들통날까 봐 그런 거다. 그래도 베이킹과 관련된 글은 유일하게 정확한 레시피가 있다. 베이킹은 과학이니까. 아무튼 그래서 정확한 레시피 대신 요리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아 뭔가 구차한 변명을 하는 것 같은 이 느낌...)


아직 보여주지 못한 요리도, 음식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은데 집밥로그를 마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계절별 제철 요리를 선보이려면 집필 기간을 최소한 1년을 잡았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애 엄마이다 보니 놀이터에서 몇 시간 근무하다가 집에 와서 방전되기 직전인 채로 앞치마를 두르고, 늘 시간에 쫓기듯 요리할 때가 많았다. 식재료나 조리법의 한계(매운맛 피하기 등)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그때마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후회 없이 불태웠다. 

색감도 맛도 예술인 스페인 문어세비체, 싱가포르의 추억이 담긴 야쿤토스트st., 삼단트레이 특별 간식


음식 완성 컷을 담을 때마다 늘 뒤에서 환한 웃음으로 등장하며 포즈를 취하는 애교만점 딸, 식재료 준비 중일 때 슬쩍 다가와서 도와주는 든든한 아들, 한 입 달라며 시식을 요청하기도 하고, 조리 과정 내내 자기들도 해보겠다며 참견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등. 내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다. 그렇게 부엌에서 나도 엄마로서 조금씩 더 자라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부쩍 자란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찰칵 소리에 달려오는, 한결같은 명랑소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소일거리를 돕는 기특한 아이들


여전히 '오늘은 뭐 먹지?'의 고민은 계속되고, '먹기 싫은 자 VS 먹이고 싶은 자'의 대결 구도로 자녀들과 기싸움을 벌일 때도 있으며, 식재료가 사망하기 직전에 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처분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지만 이런 일상이 모두 소중하다. 그리고 이런 추억을 켜켜이 마음 한편에 쌓아둘 수 있어서 행복하다. 어쨌거나 뭐든 잘 먹어주고 환호해주는 가족들의 공이 가장 크다. 이런 이유들로 오늘도 내일도 요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무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즐거운 나의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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