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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un 18. 2021

여름철 자투리 야채 해결사, 비빔국수

살얼음 동동 육수까지 부어주면 더위, 안녕~

네 식구의 기상시간이 제각각이던 지난 토요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서 여유 있는 아침을 즐겨보겠노라며 혼밥을 준비한다. 설마 했는데 한 입 먹기도 전에 둘째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그럼 그렇지. 서둘러 딸아이의 밥상도 준비한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후, 첫째도 어느새 거실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남편도 깨워서 한 번에 아침밥을 주고 싶지만, 그래 주말이니까 특별히 봐준다. 그리고 할아버지 봉양하러 춘천도 내려가야 하니까. 이렇게 평소에는 없던 자비를 베풀어 준다. 덕분에 아침밥상만 4번을 차리다니, 이런 고행이 또 어디 있으려나. 엄마는 주말도 휴일도 없는 극한직업이다.


마침 택배로 전 날 도착한 <초당옥수수>가 있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처음 맛보는 초당옥수수는  달큼하니 아삭아삭한 게 별미다. 당연히 우리 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생으로 먹어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먹어도 되기에 조리도 간단하다.  '아침이니까 별로 안 먹겠지'라고 착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1인 1 옥수수는 기본이다. 옥수수 귀신들 같으니라고.


여기에 <현미쑥떡>도 곁들인다. 이모가 보내주신 건데 진한 쑥의 향은 기본, 고소한 현미 덕분에 씹으면 씹을수록 아주 맛이 매력적이다. 그 누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맛이 없다고 했는가. 최소한 현미쑥떡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기에 볶은 콩가루와 흑임자가루까지 더해주면 금상첨화. 건강, 맛, 간편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아침식사 메뉴. 어제 만든 대추청을 꺼내본다. 따끈한 <대추차>를 선보이니 아이들 반응이 좋다. 감기도 저만치 달아날 것 같단다.

네 번을 차린 분노의 아침밥상, <현미쑥떡과 초당옥수수 그리고 대추차>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며 신난 두 녀석. 홈웨어 어쩔 거니




어느새 기차 시간이 다가온다. 서둘러 용산역에 내려주고 돌아서는 길. 남편은 재입대하는 기분 같다며. 아이들이 아빠 없는 주말을 보낸다고 꽤나 서운해한다. 애들은 내가 잘 책임질 테니 잘 다녀오도록!





아직 감기 기운이 남은 아이들, 이비인후과에 들려서 진료를 받고 집으로 가기 아쉬워서 동네 뒷산에 오른다. 온통 초록 초록한 기운이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착해지는 기분이랄까. 한참을 조잘거리고, 관찰하고, 만지고 노는 아이들. 자연을 가까이하는 게 가장 좋은 교육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숲에 오면 1~2시간은 순삭! 마침 옷도 초록색이라 누가 나무인지 풀인지, 자연과 하나된 아이들


30도를 웃도는 날씨지만 그래도 숲은 나무 그늘 덕분에 시원하다. 맨날 놀이터만 가지 말고 산에도 가끔 오자고 아이들을 설득해본다. 과연 기억해줄까 싶지만. (하교 후 놀이터 가는 게 너무 당연한지라) 아무리 풍경도 좋고, 이 시간이 평화롭지만 1시가 넘어가니 슬슬 배가 고파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해보지만, 둘째는 반대편 쪽에가서 고양이들을 꼭 보고 가야겠다며 고집을 피운다. 엄마는 점점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단 말이다. 다음에는 산에 올 때 허기질 때를 대비해서 과자라도 하나 챙겨 오리라 다짐해본다. 그때 마침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에 작은 가시가 박힌 딸, 그냥 빨리 집에 가서 가시를 빼 달라며 앞장선다.

천천히 걷는 숲길. 행복을 느낀다. 근데 배가 고프니 어질어질하다.




한참을 밖에 있다 오니 덥긴 덥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에어컨을 틀어도 여전히 덥다. 이럴 땐 뭐다? 바로 냉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냉면 육수를 넣은 <비빔국수>. 밀가루를 피하는 우리 집의 선택은, 쌀소면. 생각보다 밀가루 대체 음식이 꽤나 많이 있음에 놀란다.


냉장고를 뒤져 야채란 야채는 죄다 꺼내본다. 자투리 야채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토마토, 파프리카, 오이, 상추, 당근을 채썰어 놓으니 알록달록한 색깔이 제법 예쁘다. 먹고 남은 콩나물 무침도, 김밥 만들 때 사용하고 남은 단무지도 채 썰어본다.


야채를 준비하며 동시에 얼른 국수를 삶는다. 반숙란은 아이들 보러 까라고 시켰더니 꽤나 진지하게 임한다. 서로 자기 계란이 더 예쁘다며 옥신각신. 이러다 싸움날 것 같다. 일부러 내 계란은 대충 깐다. "엄마 계란이 제일 못생겼네!" 얼떨결에 공동우승이 된 남매는 동시에 승자의 미소를 띤다.


그리고 여름이면 우리 집 냉장고 서랍에 항시 대기 중인 냉면 육수를 꺼낸다. 이것이 맛의 포인트! 살얼음이 얼게 하려면 냉동실에 잠시 넣어두었다가 꺼내야 한다. 시간 조절이 관건. 아무튼 다소 늦은 점심을 먹는다. 이 시간에는 무얼 먹어도 꿀맛이지 않을까.


아삭아삭한 야채, 단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육수, 여기에 매콤한 비빔장까지. 그야말로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만들어 준다. 너희들도 어서 커서 매콤한 맛의 매력을 알아주길 바래.

오늘의 점심메뉴 <비빔국수> 가끔은 이렇게 지들끼리 컨셉을 정하고 표정을 짓는다


맛에 예민한 아들 녀석이 한 입 먹더니 내 눈치를 살핀다. 뭔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근데 엄마,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인데요? 재료가 하나 빠진 거 아닐까요?" 아 맞다! 골뱅이!!!! 어쩔 때 보면 고작 10살인 아들이 나 보다 더 한 수 위다. 아들의 지적 덕분에 골뱅이캔을 서둘러 깐다. 골뱅이를 썰어 비빔국수에 얹어준다. 이것이 바로 화룡점정.


"그래 이 맛이지! 이제 한결 맛있다, 그렇지?" 아이는 밝은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까다로운 둘째는 역시나 골뱅이는 패스. 덕분에 엄마랑 오빠가 실컷 먹을게.

골뱅이를 추가하니 훨씬 맛이 업그레이드된 비빔국수
국물까지 원샷!


국수 한 그릇 뚝딱 먹고 끝낸 줄 알았더니 여기서 끝이 아니란다. 또 아이스크림 타령이다. 어제 얼려놓은 아이스크림을 건네니 좋아 죽는다. 같은 맛인데 왜 바꿔서 먹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후식까지 만족스러운 점심식사 해결.

아이스크림이 그렇게도 좋더냐





그 사이 <오이피클> 담그기 미션을 시작한다. 친한 언니에게 배운 비법을 공개하자면, 피클링스파이스와 샐러리가 맛의 비결. 한층 세련된 맛의 피클이 완성된다. 물에 식초, 설탕, 소금, 피클링스파이스, 월계수잎을 넣고 끓이니 집에 시큼한 냄새가 퍼진다. 오이지와 피클, 마치 베스트셀러와 같이 우리 집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다음 미션은 레몬청! 일단 오늘은 후퇴, 내일 보자 레몬들아


설거지가 한가득 쌓인 주방을 치우느라 한 동안 또 노동의 연속이다. 이제 좀 쉬어 볼랬더니 어느새 4시. 오후에는 줌으로 하는 온라인 교회 모임이 있다. 나 또한 교사라서 모임 시간을 포함, 그 전후로도 바쁘다. 혼자서 양쪽 아이들 번갈아가며 체크해주려니 내가 더 정신이 없다. 슬쩍 춘천에 간 남편의 처지가 부러워지는 순간.


모임을 하면서도 머리 한 구석으로는 '저녁은 뭘 먹지?'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럴 때 치킨이고 피자고 배달음식이 간절하지만, 죄다 밀가루라는 사실이 그저 야속하다. 나를 강제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집밥 당첨. 아이고 내 신세야.




모임이 끝나고 나니 7시다. 아직 해가 환하게 떠 있는 걸 보니 여름은 여름이구나를 실감한다. 최대한 힘 안 빼고 단시간에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하! <한우곰탕>이 하나 있다. 원래 떡국을 먹을 때 쓰려고 사놓은 건데 일단 먹고 보자. 둘이 먹기에는 많고 셋이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애매한 양이지만, 그래도 셋으로 잘 나눠본다.


여기에 친정에서 공수해 온 오이지(그것도 아이들은 안 매운 버전, 어른들은 매콤 버전 두 가지나 만들어 주신 친정 엄마에게 무한 감사를)와 김치를 곁들인다. 초간단 저녁 메뉴 완성. 근데 왠지 불안하다. 내가 봐도 좀 저녁 메뉴가 부실하다. 이러면 꼭 배고프다고, 밥 더 달라고 난리인데. 대충 한 끼 때우고 빨리 끝내겠다는 꼼수는 적어도 먹성 좋은 우리 집 남매에게는 잘 안 통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떡갈비라도 구울걸.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한 끼 정도는 편하게 가보자! <시판 한우곰탕 >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첫째는 "다~ 더(주세요)!"를 외친다. 그래서 이 녀석 별명이 <이다더>. 곰탕은 더 이상 없다고 하니 울상이다. 반찬이랑 밥은 더 있다고 하니 그러면 김이라도 달라고 한다. 그렇게 2차 먹방이 시작되었다. 둘째도 오빠를 따라 김에 야무지게 밥을 싸 먹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시간도 채 안되어 둘째가 또 배고프단다. 덩치도 작은 녀석이 쌀과자와 두유는 또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게 놀랍다.


오늘도 또 이렇게 하루가 끝이 났다. 주말에 한 끼 정도는 외식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어째 삼시세끼 집밥이었다. 오이피클도 담그고 사서 고생한 날. 내일은 반드시 점심이나 저녁은 밖에서 사 먹으리라 다짐해보며.



오늘의 교훈,

엄마는 위대하다.



* 해당 글은 <Daum 홈&쿠킹>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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