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고운 Aug 13. 2021

마늘 플레이크 하나 얹었을 뿐인데

평범한 카레에서 고급진 카레로 단박에 신분 상승!

입추가 지나고 나니 확실히 아침저녁으로는 찬 바람이 분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선선함, 왜 이렇게 반가운 건지. 곧 가을이 올 테고, 또 입맛도 폭발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니다, 그래도 이 우울한 시국에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싶다.


아침 식탁을 보더니 아이들의 표정이 매우 황당한 기색이 역력하다. 진짜 이게 다 냐고, 너무 간단한 거 아니냐며 의아해한다. 금방 또 점심이니까, 아침만큼은 가볍게 먹자는 건데,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푹 익은 바나나 마지막 1개가 남았길래 냉동딸기를 꺼내 딸기바나나주스를 믹서기에 휘리릭 갈고, 인절미를 곁들인다. 설거지가 별로 없으니 세상 좋구나.

조식나왔습니다~ 딸바주스 + 인절미



점심에는 보리새우와 미나리로 미나리전을 만들어 본다. 아삭아삭 향긋향긋 상큼 터지는 이 맛,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둘째는 재료를 보더니, 벌써 인상을 빡 쓰며 자기는 새우만 먹겠단다. 그럴 수는 없거든! 양파와 홍고추도 추가해서 전 만들기에 돌입한다.

(참고로 보리새우는, 알리오올리오 떡볶이를 제대로 다시 만들어보려고 산 것. 이 돼지런함이란)

새우 미나리전, 딱 기다려!


아이들은 오이냉국, 어른은 전에 먹고 남은 순두부찌개. 그리고 콩나물 하나 추가했다. 오늘은 어째 아침도 그렇고 보기만 해도 배고픈 식단이긴 하다.

잘 먹겠습니다! 역시 집밥이 최고


비록 고기 하나 없이 단출하지만, 보리새우가 열일했으니 맛 보장이라는 거. 전을 부치며 시식을 시켜줬더니 첫째는 맛있다며 각종 리액션과 엄지척을 날려준다. 둘째는 아니나 다를까 찌푸려진 미간으로 모든 걸 말해준다. 그래도 새우의 맛은 포기할 수 없었는지, 못 이기는 척 "양파랑 미나리가 거의 없는 부분만 내가 골라서 먹을래"라며 은근히 타협점을 찾는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이게 을마나 맛있는 건데!


홍고추를 넣어주니 확실히 더 먹음직스러웠다. 나트륨 섭취를 줄여보려고 일부러 간장을 안 준비했더니, 아이들이 난리다. "그래도 부침개나 전에는 간장이 있어야 제맛이죠!" 하여간 먹을 줄 아는 초등학생들.


확실히 간장을 곁들이니 더 맛있긴 했다. 미나리의 향긋함이 이렇게도 좋은 거였건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든 건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일품, 보리새우의 짭조름하면서 고소함도 일품이다.

을마나 맛있게요? 밥도둑이 따로 없음



점심밥을 먹고서는 한참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는 둘째. 오늘은 캐릭터를 그리는 날 이라며 나도 앉아 보라고 한다. 스케치북에 선을 긋더니, 한쪽은 엄마가 그리는 공간이라며 자리를 내준다. 아 이런 친절함, 괜찮은데.... 아무튼 빠져나갈 수 없는 이 느낌. 스누피를 그리고 색칠까지 해 주었더니 "우와 엄마 진짜 잘한다!"며 칭찬이 이어진다. 둘째는 펭수를 열심히 그리는데 그 진지한 모습이 참 귀엽다. 첫째는 EBS 수학 문제집을 펼치고 열심히 문제를 푼다. 그림 그리랴, 채점하고 설명해주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만화 찬스도 하나 쓰고 했더니 어영부영 오후 시간도 지나간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는 말이 없길래 은근히 간식도 슬쩍 넘어갔다. (얏호!) 하지만 부작용도 물론 있다. 5시쯤 되니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저녁밥이라는 합법적인(?) 핑계로 드디어 나는 주방으로 탈출~  



배고픈 아이들을 진정시킬 메뉴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자투리 야채가 제법 쌓인 걸 보고 카레 혹은 짜장밥으로 정한다. 짜장밥은 쌀 춘장부터 기름에 볶아야 하기에 그 귀찮음에 일단 다음으로 미뤄두고, 쌀 카레로 당첨!


닭가슴살은 분명 다이어트용으로 사놓은 건데, 또 이럴 때 사용된다. 야채들을 총집합시켜 채를 썰어 놓고, 닭가슴살은 결대로 손으로 찢어 놓는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로 마늘을 편 썰기 한다.


사실 카레의 맛이나 조리법은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나마 차별화를 주는 포인트는 바로 이 세 가지.


1. 양파 오랫동안 충분히 볶아주기

2. 재료들은 깍둑썰기가 아닌 채썰기

3. 마늘 플레이크 고명 얹어주기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오늘의 카레


캐라멜라이즈 양파라고 들어는 봤는지? 한참을 달달 볶아주면 하얀색 양파가 점점 갈색으로 변한다. 이때 단 맛이 폭발하는데, 감히 설탕과는 차원이 다른, MSG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감칠맛이 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이 볶아야 하는데 빨리 밥 달라는 고객님들의 재촉으로 오늘은 이만 여기서 멈춘다.

양파볶기는 시간과 인내심과의 결정체


그리고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듬뿍 넣고 마늘도 튀기듯이 볶아준다. 갈색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바삭바삭한 맛이 날 때까지 충분히 볶아주어야 한다.

향긋한 마늘 냄새가 솔솔~


이렇게 완성된 마늘 플레이크 카레. 수제 피클과 과일주스도 곁들이면 상차림도 끝이다. 마늘 플레이크는 역시나 첫째는 먹고, 둘째는 안 먹었다. 아무리 튀겼어도 약간의 아릿함이 느껴져서일까. 그래 이건 인정.


마늘 플레이크 하나 얹었을 뿐인데, 제법 색다르다. 물론 잡곡밥보다 흰쌀밥으로 했어야 더 비주얼은 훨씬 살겠지만, 영양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엄마 마음을 아이들은 아는지.


'간식을 건너뛰고 저녁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먹는 방법도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며 방심하던 찰나, 훅 들어온 아이들의 질문 "엄마 아직 배고픈데 후식은 뭐예요?" 아... 망했다....


과일 같이 가벼운 거 말고 좀 묵직한 걸 달랜다. 하아 정말 이 녀석들. 서둘러 냉동해 둔 옥수수를 쪄 준다. 찌는 김에 내일 아침에 먹을 고구마도 같이 쪄 본다. 그 10분의 기다림이 그렇게도 힘든지, "엄마 이제 먹어도 돼요? 옥수수 다 됐어요?"를 한 100번은 물어보던 둘째.


찰옥수수는 언제 먹어도 맛있긴 하다. 해맑은 웃음으로 옥수수를 영접하는 아이들. 방금 전에 카레 한 그릇 뚝딱 해치운 거 맞니?


오늘의 교훈,

1. 꼼수 피워봤자 소용없다.

2. 간식을 건너뛰지 말자.

3. 잘 먹을 때 열심히 먹이자.

후식 치고는 간식 같은, 찰옥수수




이전 27화 전기밥솥으로 뚝딱! 가지밥 완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