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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an 05. 2024

들어는 봤나, 모닝 떡볶이?

방학 맞은 아이들과의 사투를 앞두고, 이너피스를 위한 전투식량

초등학생 남매의 역대 최장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무려 72일간의 대장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학교 내외부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있기 때문에 평년과는 달리 학사 일정이 조정된 것이다. 물론 여름방학이 짧았던 것은 참 행복했지만, 무시무시한 기나긴 겨울방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학교 측의 이런 조치는 당연한 것이고 부모로서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새 학년이 되는 3월 4일 개학식까지 봄방학도 스킵하고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겨울 방학은 생각만으로도 어질어질했다.


아, 이번 겨울방학에는 떡볶이가 필수겠구나!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감이 왔다.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나날들이 머릿속에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그려졌다. 두 아이와 함께 찐하게 보낼 나날들을 떠올려보니 열폭은 기본이요, 밥돌밥돌하며 먹성 좋은 두 녀석들 시중들다가 늙어갈게 뻔할 테니. 아, 나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도다! 이럴 때 그나마 마음을 진정시켜 줄 가장 효과 빠르고 손쉬운 응급처치 방법이 바로 떡볶이 아니겠는가.

나를 지켜줘, 떡볶이!




삼시세끼 밥을 차리는 일도, 방학숙제며 새 학기 대비 학습지도며 까짓 껏 이 한 몸 희생해서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잠시라도 숨통 트일만한 혼자 있는 시간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다. 이번 겨울 방학은 방과 후 수업도, 도서관 운영도 공사와 함께 모두 운영이 완전히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방학이면 으레 운영되는 영어캠프는 온라인으로 변경되었고(아들 녀석은 당연히 재미없을 거라며 애초에 신청도 안 함) 체육캠프조차도 이번 방학에는 없다. 이런 일정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강제 부지런을 떨 텐데, 이제 이 마저도 없으니 아무런 긴장감도 없고 매일 늦잠의 연속일 게 뻔하니.... 내 속은 얼마나 터지려나!


"에이 뭘 그리고 호들갑이에요?

학원에 보내면 되잖아요."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첨언하자면, 우리 집 애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직까지는 사교육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원래도 학원은 안 다녔으니 당연히 이번 겨울방학이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대단한 신념이 있어라기보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애들도 그렇 나 역시도 실컷 놀아야 할 초등학생 시절에 뭔가를 배우기 위해 교육기관을 다니는 것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아이들 데리고 오고 가고 귀찮기도 하고(희생정신이 없는 불량엄마), 주변에 별 편의시설이 없는 동네 특성상 도보로 다닐 수 있는 학원이 극히 제한적인 데다가, 셔틀이 운영된다 하더라도 애들은 귀찮단다. 그나마 시도했던 것이 바로 태권도 수련이었는데, 이 마저도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그냥 엄마가 가르쳐줘"

우리 집 두 녀석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엄마는 만능이 아니란 말이다! 늬들 공부고 악기고 가르치다 보면 밥은 누가 하는데? 빨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위대한 존재다. 최소 1인 10역은 감당하고 있으니.)


기나긴 방학을 앞두고 잔뜩 먹구름이 껴있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마냥 신난 모양이다.  

"와 이제 엄마 잔소리 안 듣고 실컷 늦잠 자야지!"

"오빠 우리 눈썰매 타러 가자!"

온통 놀 생각뿐이라니.... 그래 어릴 때 실컷 노는 게 남는 거지. 중학생만 되어도 어디 놀러 간다고 학교 빠지기도 쉽지 않은 걸 알기에 이번 방학이 어찌 보면 큰 기회인 거 같기도 했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도서관이고 박물관이고 실컷 다니며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고, 아이들 사춘기 오기 전에 함께 뒹굴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테니. 그래도 왜 이렇게 걱정이 앞서는 건지, 과연 나는 잘 버틸 수 있을까?





물론 긴 방학이 끝나고 나면 여러 관계자들의 수고로 학교의 열악했던 환경이 훨씬 개선될 거라 생각하면 물론 그저 감사하다. 학부모로서도 학생으로서도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테니까. 또한 아이들을 온전히 케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두 아이와 함께 찐하게 붙어있을 생각을 해보니 상황은 달리진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왜 이리도 심란하단 말인가!


아무튼 12월 22일 종업식을 시작으로 무려 72일간의 대 장정이 시작되는, 이른바 난이도 최상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긴 방학을 앞두고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바로 떡볶이였다. 큰 전쟁을 앞두고, 마치 전투식량 준비하듯 말이다. 떡볶이 떡은 기본이요, 냉동 밀키트, 냉동 만두와 김말이 등 최대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서야 그제야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떡볶이가 왜 필수 아이템인지 설명해 보자면

첫째, 세끼 내내 밥을 하려면 힘 조절이 필수인데 떡볶이는 이에 최적화된 음식이다. 점심에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도록 후다닥 요리할 수 있는 분식류를 주로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들로 인해 한껏 성난 마음을 다스리는데 떡볶이만큼 특효약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것이야 말로 이번 겨울방학의 가장 핵심 일 것이다. 이래저래 떡볶이는 나의 생존을 위한 필수 아이템인 것이다. (앞으로도 최소한 떡볶이 구매에 있어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겠노라 다짐해 본다.)




예상대로 역시나 두 아이들은 방학의 시작과 동시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패턴으로 빠르게 정착하고 있었다. 잠이 깨더라도 한참을 따뜻한 이불속에서 낄낄거리며 여유를 만끽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나 뭐라나.... 매일 아침 등교 전쟁을 했던 학기 중을 생각하면 나도 아이들도 행복한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불과 한 몸이 되어 게으르게 지내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니게 허무하게 하루가 흘러갔다. 기상이 늦어지니 당연히 아침 식사 시간도 늦어지고, 금세 점심이 되고, 또 돌아서면 저녁밥이고... 현타가 밀려왔다.

 

그래도 두 살 터울의 남매라 비교적 돌보기 수월한 점은 참 다행이다. 외동자녀를 둔 주변 사람들이나, 나이 차이가 큰 형제자매를 양육하는 분들에 비해 훨씬 내 형편이 나으니까. 하지만 두 녀석 각자의 취향 확고하고, 게다가 남녀 간의 취향도 어쩜 이리도 다른 건지. 분명 같은 공장 출신인데 왜 이렇게 제각각 개성이 넘치는지 모른다. 식사 메뉴도, 만화 프로그램도, 티타임 때 마실거리 종류도 좀 통일해 주면 안 되겠니?

차를 마셔도 각각 취향이 다른 우리 셋




싸우는 녀석들 말리느라 하루가 다 다고, 양치해라, 방 치워라, 방학 숙제 좀 해라 잔소리하다가 폭삭 늙어가는 기분이다. 게다가 갖은 투정에 땡깡 부리는 둘째 때문에 영혼까지 탈탈 털려버리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닝 떡볶이를 먹어치운 날도 있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자고 있는 아침 시간이 평화로운데, 여기에 내 최애 음식까지 더해지면? 이건 뭐 극락이 따로 없 거니까!


이 아침부터 떡볶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기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인걸. 아이들과 벌어질 치열한 사투를 앞두고 비장한 마음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자세로 경건하게 떡볶이를 영접했다. "아, 이거지 이거!"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은 아직 한참 꿈나라에 가있는 소중한 시간에 마주하는 모닝 떡볶이는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를 버텨낼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떡볶이 먹어본 사람? 저요!




'밥돌밥돌'이라는 신조어야 말로 많은 엄마들의 상태를 완벽하게 대변해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밥뿐만 아니라 간식도 후식도 야식도 찾는 녀석들... 앞치마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슬픈 사실. 방학 동안 얼마나 훌쩍 크려는 건지, 두 녀석들이 앞다투어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쩔 때는 무섭기도 하다.


방학 초반, 호기롭게 이런저런 체험학습 계획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미세먼지가 발목을 잡았다. 한참 탁한 공기가 계속되자 어쩔 수 없이 내내 집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하루를 힘겹게 마감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다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밖에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집에만 머물렀기에 크게 에너지 쓸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주방에서 서서 있던 시간이 문제였다.


-세끼 밥 차리고, 정리하고, 설거지 :

  1시간 X 3회 = 3시간

-간식, 후식, 야식 : 30분 X 3회 = 1시간 30분

-식재료 다듬기, 반찬 만들기: 30분 이상


도합 대략 5시간은 족히 걸렸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쩌다 찾아온 불쾌한 손님 같은 다리 통증은, 혹독한 주방 노동의 당연한 결과였던 말인가!


학기 중에는 최소한 점심은 학교 급식을 먹고 오고, 나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에 주방에서 지금처럼 내내 서 있지는 않는다. 게다가 훨씬 장도 자주 봐야 하기에 식재료를 구매하고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수시로 배고프다, 입이 심심하다는 녀석들에게 먹거리를 대령하는 횟수가 아무래도 더 많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남은 방학이 결코 순탄치는 않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혼자 죽을 수는 없다! 단순히 떡볶이만으로는 이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추가 전술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1. 방학특집, 용돈 상향 조정(단, 집안일을 도울 경우)

오롯이 혼자 주방일이고 살림이고 감당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 혼자 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 훨씬 수월할 테니, 자잘한 일이라도 아이들을 투입시키기로 했다. 물론 일의 진척률이나 효율성을 따져본다면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엄마의 고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공정한 노동의 대가도 지불하기로 했다. 바로 용돈 상승 조정! 기본용돈에 플러스 알파로택배 정리하기, 식사 준비 돕기, 빨래 널고 개기 등 각 항목별로 추가적인 용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일종의 인센티브인 셈이다. 다행히도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다. 자잘한 일거리 일지언정, 돕는 손길 덕에 나도 한결 편해졌다. 이것이 바로 상생 전략!


2. 초대형 에어프라이어 구매

빠르고 편리하게 밥을 차리는 게 관건이다 보니 지금의 소형 에어프라이어로는 답이 안 나왔다. 돈가스를 구워도 두 번에 나눠서 조리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다 때려 넣고 한 번에 요리를 끝낼 수 있는 대형 에어프라이어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물론 매번 집밥을 하며 힘을 뺄 필요는 없지만,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고려한다면 잦은 외식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외식 두세 번 할 돈이면 에어프라이어 구매 비용을 충분히 본전을 뽑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남편에게는 거의 일방통보를 하고 확 질러버렸다. 방학을 무사히 보내기 위한 생존템이라는 사실을 어필하며, 나의 소비를 정당화시켰다. 결론적으로, 집에 평화를 가져다준 효자템이 되었다.


3. 커피머신 구매

커피 한잔의 여유쯤은 누려줘야 진정한 힐링이지 않겠는가? 커피 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매번 카페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상황도 안되기에 집에서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커피를 한동안 끊었기에 각종 기구들이 일절 없는 상태여서 요새 나오는 멋커피 머신이 탐기 시작했다.

 

에어프라이어에 이어 연속해서 주방 가전제품을 들이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터라, 이번에는 중고로 득템 했다. 중고거래 앱에 키워드 알림을 걸어놓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새것과 다름없는 제품을 원래 가격의 절반가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 즉시 디카페인 캡슐도 종류별로 구비해 놓았으니, 아 이제 마음의 평안을 제대로 누릴 수 있겠구나 싶어 세상 든든하다.




이 글을 쓰는 1월 5일 기준으로 아직도 겨울방학은 58일이나 남았다. (한참 멀었다니... 누가 꿈이라고 말해줘요!) 군입대 후 까마득한 제대일을 헤아려보는 이등병의 마음이 이럴까 싶다. 개학을 향한 이 간절함은 아마 전 세계 엄마들의 공통된 소망일 거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나저나 올해도 다이어트의 꿈은 글렀구나 싶다. 떡볶이에, 커피에, 각종 냉동식품까지 줄줄이 먹을 스케줄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20대 시절의 날씬한 몸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며 운동과 식단 조절을 다짐해 보지만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늬들 때문이야!"


떡볶이가 아니면 버틸 재간이 없는 이번 겨울 방학, 끝까지 버텨서 끝까지 살아남겠노라 다짐해 본다. 부디, 환희와 함께 당당하게 생존신고를 할 수 있는 3월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그때까지 떡볶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본다.


떡볶이야, 호비 남매의 겨울방학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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