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을 벼르고 벼르다가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주했다. 수십 번 강릉 여행을 올 때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깨끗한 공기에 감탄하며 우리 부부의 결론은 한결같이 "아, 여기 살고 싶다."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부부에게 생활터전을 강원도로 옮긴다는 것은 나름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신조로 여겼던 터라, 괜히 머뭇거리다가 포기할까 봐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수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약 1달 반 전에 강릉으로 이사했다. 드디어 그토록 꿈꾸던 강릉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마당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가득한 단독주택, 걸어서 5분이면 소나무숲과 푸르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 이 두 가지 조건만으로도충분히 완벽한곳이지 않을까? 게다가 아이들 초등학교는 도보로 이용 가능한 근거리에 있고, 은행이나 베이커리 등의 편의시설도 도보로 충분히 갖춰져 있으며 차로 5분이면 초대형 마트도 있다. 이 정도면 서울 부럽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아파트와 단독주택은 전혀 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매일 사건사고의 연속이었고, 손이 가야 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사 와서 3주 동안 수도와 보일러 공사업체만 3번 방문했을 정도니까. 남편은 몇 날며칠 마당일에 내내 매달려야 했고, 각종 공구들은 물론 사다리와 한 몸이 되어 각종 작업이 끊이지 않았다. 제 아무리 싹 리뉴얼한 집이어도 구옥은 구옥이었다.
주방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조리 동선도 그렇고 싱크대와 수납장이 손에 익을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집 주방 환경에 적합한 각종 용품을 부지런히 찾아보고, 주문하고, 세팅하고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렇다고 배송이 빠른 것도 아니라,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서울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새벽배송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특히 가구 배송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까지 족히 한 달이 걸렸다. 마치 1년 같이 느껴진 긴 나날이었다.
4월이 이렇게 추웠던 적도 처음이다. 분명 시기상 봄 이거늘, 애석하게도 우리 가족은 추위와 싸워야 했다. 아무리 겨울옷을 껴입어도 소용없었다. 도시가스가 아닌 기름보일러라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려 했지만, 유류비 폭탄이고 뭐고 일단 살고 볼 일이라 보일러 가동을 수시로 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배관이 말썽이었다. 안방은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아 냉골이 따로 없었다. 이사 와서 2~3주 동안은 아이들 방에 빌붙어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매일 피로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하루라도 빨리 숙면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간절히 열망했다.
온수는 태양열을 사용하는데, 사용법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일단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물탱크가 충분히 데워지지 않았고, 미지근한 물로 씻다 보니 덜덜 떨면서 추위와 씨름했다. 도시가스와는 달리 일일 최대 사용량이 제한적이라 빨래와 설거지할 때는 온수를 실컷 사용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혹독한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내 인생 최고로 추운 봄이었다.
혼밥을 내내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친한 이웃도, 마음 맞는 친구도 아직 전혀 없는 처지라 꽤 적적했다. '혼자 놀기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자부했거늘 내내 홀로 집밥을 먹다 보니 나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친한 친구나 언니들에게 전화통화로 하소연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먹는데 진심인 나로서 스스로 가장 당황스러운 상황인, '입맛을 잃어가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적했고, 부정적인 생각이 도통 사그라들지 않았다.
미세먼지는 또 왜 이렇게 난리던지... 강릉으로 온 큰 이유 중 하나가 서울의 갑갑한 미세먼지로부터 해방이었는데, 아무리 황사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이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은 미세먼지 수치가 좋은 반대 상황도 여러 번 있어서 '청정지역 강릉의 배신'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벌레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꽃피는 봄에 지독한 추위와 싸우는 현실이라니. 아, 이건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닌데... 마당에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따스한 바람이 살랑거려도 내 마음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그동안 서울의 아파트에서 세상 편하고 쾌적하게 살던 시절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여보, 전세기간 만료 되면 다시 서울로 가자.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어."
남편에게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강릉 생활에 대체로 만족해하는 남편은 어안이 벙벙한 채 나를 설득했다. "아니, 이제 이사 온 지 고작 한 달이야. 처음이라 불편하고 힘들어서 그런 걸 거야. 분명 시간 지나면 나아질 거라니까? 일단 좀 기다려보자. "
물론 주거지를 옮기는 게 어려움이 전혀 없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 더 팍팍했다. 최소한 서울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삶 보다 훨씬 여유롭고 행복할 줄 알았다. 게다가 내 기억 속의 근사한 단독주택 생활과는 영 딴판이라 실망스러웠다. 그도 그럴만한 게 내가 학창 시절에 살았던 단독주택은 신축이었고, 당시에는 집 관리가 오롯이 부모님 역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분명 언어도 통하고, 음식이며 문화며 동일한 내 나라인데도 이렇게 고생스러운데, 도대체 해외로 이민 가서 지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혹독한 세월을 보내는 건지...
하필이면 이 시기에 슬슬 사춘기가 발동되어 수시로 부딪치는 첫째 아이, 엄마의 말은 안중에도 없고 매사에 고집을 부리는 둘째 아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속을 뒤집는 나랑 안 맞는 남편까지... 강릉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엉망진창이고 대 혼란의 연속이었다.
'안 되겠다, 떡볶이 맛집이라도 출동해야지!'
방어기제가 최대치로 발현되었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게 해 줄 방법은 엉뚱하지만 당연하게도 바로 '떡볶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데는 떡볶이만 한 게 없었다. 이래서 떡볶이를 내 평생에 단연 1등 소울푸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보다.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극복해 줄 치료제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이사 온 후 떡볶이를 안 먹었을 리가 없지만, 집에서 홀로 만들어 먹는 떡볶이는 생각보다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잠시나마 소소한 위로가 되어줄 뿐이었다. 한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다 보니, 떡볶이를 맛집을 찾아 나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 내킬 때 뭐라도 시도해야 했다. '강릉 떡볶이 맛집' 키워드로 재빨리 검색을 시작했다. 이른바 떡볶이로 시작된 직은 일탈인셈이다. 여러 후보들 중에 너무 먼 곳은 제외시키고, 내 취향이 아닌 곳도 제치고, 혼떡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최종적으로 한 곳으로 추려졌다. 바로 중앙시장에 있는 '여고시절 **떡볶이'.
비록 남녀공학을 나오긴 했지만, 이름만 들어도 향수를 자극하는 이 갬성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엄청난 작명센스에 아직 맛을 보지도 않았거늘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카레와 떡볶이의 조합은 언제나 대 찬성 아니던가?
분명한 목표가 정해지니 눈에 띄게 일상에 활기가 생겼다. 아니 대체 이게 뭐라고!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 전까지 오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각종 집안일을 평소의 2배 속도로 해치웠다.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후기를 찾아보니 관광객들에게도 나름 유명한 중앙시장 맛집이라 웨이팅이 있다고 한다. 설마, 평일 아침에는 괜찮겠지 싶어서 '이런 게바로 현지인이라 누릴 수 있는 특혜로구나!' 싶은 생각에 으쓱해졌다. 고백컨데, 잠시나마 '강릉으로 이사오길 잘했다' 싶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강릉에서 적응하기 힘들다며 투덜투덜거렸던 사람 맞냐고? 참으로 간사한 내 마음 같으니라고....
한걸음에 달려간 떡볶이집은 예상대로 소박했다. 포장마차 같은 형태의 노포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이곳을 찾는 손님이 여럿 있는 걸로 보아 제대로 맛집을 찾아온 거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머릿속에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리뷰가 떠올라 긴장된 탓에 괜히 입구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튀겨대는 산처럼 수북이 쌓인 갖은 튀김에 새빨간 색깔의 영롱한 떡볶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열렸다. 게다가 어느 남자 손님은 홀로 푸짐하게 이것저것 시켜서 느긋하게 떡볶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마치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역시나, 처음 방문하는 떡볶이 집은 그곳의 고유 시스템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메뉴판을 보며 해석하느라 두뇌를 풀가동 했다. 1인분은 고작 3,500원인데 떡볶이, 어묵, 순대, 계란 중 원하는 메뉴로 5개를 고르면 되는 방식이었다. 메뉴 하나에 700원 꼴이다. 튀김도 개당 700원이니 같은 가격이기에 1인분 세트에 튀김으로 대체해도 되는 거고, 아니면 추가로 주문해도 되는 거였다. 지금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당시에는 도통 해석이 되지 않아 어리바리하게 겨우 주문을 했다.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 가격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요새 물가가 말도 안 되게 비싸져서 웬만한 식당에서는 인당 1만 원은 훌쩍 넘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1만 원이면 두세 명이 충분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가성비 끝판왕이다. 여러 메뉴를 주문하다 보면 금액이 애매하게 나올 때가 있는데, 떡볶이집 아주머니는 센스 있게 천 원 혹은 만원 단위로 구성을 맞춰 주셨다. 어떤 튀김은 사이즈가 작다며 2개를 담아주기도 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하시기도 했다. 주인장의 능숙한 모습에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혼떡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떡볶이만 1인분은 기본에 튀김이나 계란 등은 옵션인데, 여기는 본인 구미에 맞게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어혼자 오더라도 여러 가지 메뉴를 맛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인권이 존중되는, 그야말로 인류애가 넘치는 위대한 떡볶이집이란 말인가!
굽기를 원하는 대로 조절해 주는 스테이크나 조리방식이나 식재료를 변경해 주는 특급 레스토랑은 서비스 요금이 포함되어 비싸기라도 하지 않던가? 객단가도 낮은 곳인데, 이렇게 개별 기호를 반영한다는 것은 주문받는 입장에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텐데 순간 존경심마저 들었다.
시장이라고 노포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곳이었다. 개인 취향을 적극 반영한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떡볶이집이니까. 그야말로 '떡볶이계의 나이팅게일'이 따로 없었다. 이미 먹기도 전에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도 마음 가득 먹구름이 가득 낀 채로 지냈던 날이 무색할 정도로 따스한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렇게도 어깨춤이 절로 나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다니, 나란 사람은 참으로 단순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떡볶이는 참으로 위대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어쨌든 여러 메뉴를 섞어 주문한 떡볶이 한 그릇을 드디어 손에 쥐고 자리에 앉았다. 이 고결한 순간을 평생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 먼저 이리저리 인증샷을 찍어댔다. 잔뜩 부푼 기대심을 가지고 쫀득쫀득한 가래떡을 한 입 배어물었다. 떡에 적절히 졸아든 소스의 감칠맛에 정신이 황홀했다. 단짠단짠한 맛에은은하게 감도는 카레의 조합은 훌륭했다.집에서 아무리 흉내 내도 따라 할 수 없는 사 먹는 이런 짜릿한맛이란! 떡에서 끝나는 게 아닌두툼한 김말이도, 오징어튀김도 대기하고 있다니, 벌써부터 든든했다. 그리고 어묵과 삶은 계란으로 단백질까지 채울 수 있어서 더 만족스러웠다.
만약 오로지 떡볶이 떡만 먹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행복했을까? 단 한 명이라도 손님이 원하는 대로 메뉴 주문을 받고, 먹기 좋게 한 입 거리로 작게 자르는 등 여러모로 수고스러움을 감당해 주는 친절한 떡볶이집 운영 방식 덕분이다.잠시나마 고된 몸과 마음이 제대로 위로받는 기분이랄까? 아무튼용기 내서찾아오길 백번 잘했다 싶었다.
떡볶이는 역시나 우울할 때 특효약이었다. '일단 살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떡볶이 맛집 방문이 나에게는 전환점이 되어주었으니까. 이 날의 만족스러운 떡볶이 한 접시로 인해 '앞으로는 어떤 일이 생겨도잘 이겨낼 거야'라는 긍정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값비싼 전복삼계탕이나 장어 못지않은 보양식으로 톡톡히 역할을 해준 떡볶이에게, 그리고 시장에서 오랜 세월 한결같이 떡볶이 맛집을 지켜준 상인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훗날 '혹독한 타향살이에 적응하며 시장에서 먹었던 이 카레떡볶이 한 그릇을 잊지 않겠노라'라고 다짐해 본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강릉살이도, 단독주택살이도 점차 익숙해질 거라 믿는다. 웃으면서 이 순간을 추억할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나같이 울적한처지에 있는 주변 사람에게 "끝내주는 떡볶이 한 그릇 하러 갈래?"라고 먼저 손을 내미는사람이 되고 싶다.
어쨌거나 강릉 떡볶이 맛집 찾기 미션 성공에 탄력을 받았으니, 다음은 또 어디를 발굴해야 할까?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렌다. 여전히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빵빵 터지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숱한 좌절감을 느끼는 나날의 연속이겠지만, 마음을 좀 너그럽게 가져야겠다. 나에게는 소중한 단짝 친구 같은, 그리고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인 떡볶이가 있으니까.
머지않아 이제는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도 길을 척척 잘 찾아다니는 현지인 포스를 뽐낼 수 있기를. 그리고 강릉에서 만난 마음 맞는 떡볶이 메이트도 여럿 생겼을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