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뭐길래 이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 기쁘다가 슬프고, 화가 나다가도 즐겁기도 하고.... 참 다채로운 감정의 연속이다.
어디 감정뿐인가? 떡볶이를 먹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양념부터 적당한 비율로 제조하고 떡집에서 사 온 따끈따끈한 떡으로 정성 들여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봉지를 뜯고 물을 부어 재료를 넣고 밀키트로 후다닥 대충 만들어 먹기도 하며, 때로는 동네 포장마차에서, 일부러 멀리 있는 맛집을 찾아가서도 사 먹기도 한다.
어쨌거나 어떤 순간에도 묵묵히 나와 함께해 준 떡볶이. 그 떡볶이에 얽힌 희로애락을 썰로 풀어본다.
희(喜) - 기쁨
-냉장고에 신상 떡볶이 컬렉션이 빵빵하게 갖춰져 있을 때
-떡볶이집 바로 근처에 핫도그, 와플 등 달다구리 후식거리가 있는 가게가 있을 때
-떡볶이 맛집을 방문한 자체로도 감격스러운데, 게다가 명당에 착석하게 될 때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고민 없이 깡그리 담아봐도 인당 1만 원도 넘지 않을 때
-라면이나 쫄면이 적절하게 간이 스며들고 불지도 않는 등 완벽한 조리 상태일 때
-유독 밥 하기 싫은 날, 아껴둔 떡볶이가 냉장고에 있다는 사실에 회심의 미소가 절로 나올 때
-소스나 재료를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짜릿한 맛이 날 때
-맛집에서 먹었던 그 맛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연했더니 제법 비슷했을 때
-아침 일찍 문 여는 떡볶이 집이 있어서 조찬 모임이 가능할 때
-어린 시절, 학창 시절 등 떡볶이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이 문득 떠오를 때
로(怒) - 노여움
-떡인 줄 알고 자신 있게 씹었으나 대파라서 배신감이 들 때
-매운맛에 눈을 뜬 아들 녀석이 야금야금 뺏어 먹어 내 몫이 점점 줄어들 때
-큰맘 먹고 신상 떡볶이를 개시했는데 같이 먹는 남편이 무반응이라 본전 생각이 날 때
-주문한 떡볶이를 목이 빠지게 기다다가 택배 배송현황을 보니 아직 출발조차 하지 않았을 때
-방금 전날 주문했던 떡볶이가 가격 할인을 하고 있을 때
-냉동실의 떡을 제대로 해동하지 않았더니 여기저기 갈라지고 흐물거리는 등 해괴망측한 비주얼이 되었을 때
-배달 도착을 기다리며 배에서는 꼬르륵 요동을 치고 인내심이 점차 고갈될 때
-밀떡이 쌀떡보다 쫄깃하고 맛있지만 영 속이 더부룩할 때, 즉 나이가 들어서 소화력이 떨어졌음을 자각할 때
-기대를 안고 방문한 떡볶이집이 하필 그날따라 휴무였을 때 혹은 품절되었을 때
-즉석 떡볶이를 먹은 후 상대방이 배가 불러서 볶음밥은 안 먹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발언을 들었을 때
애(哀) - 슬픔
-다이어트한답시고 살찔 걱정에 설탕 대신 알룰로스를, 밀떡 대신 현미떡을 넣어야 할 때
-그리고 굳이 맛보지 않아도 어차피 맛이 없다는 걸 이미 직감했을 때
-실제로 먹어보니 역시나 내가 알던 그 떡볶이 맛과는 거리가 멀 다는 걸 확인사살 했을 때
-어쩌다 가끔 밀떡인지 쌀떡인지 당최 구분이 안 가서, 여전히 떡볶이 내공이 부족함을 인식했을 때
-레토르트 떡볶이의 대부분이 2인분 기준 포장이라 혼자 먹기 곤란할 때
-신나게 떡볶이 만들 준비를 하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떡이 없어서 난처할 때
-맵찔이인 둘째 아이 때문에 귀찮게도 두 가지 버전으로(맵고, 안 맵고) 떡볶이를 준비해야 할 때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단골 떡볶이집이 문을 닫았을 때
-요새 들어 못난이 만두를 파는 집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때
-그렇게도 여러 번 만들어 먹어도 매번 양 조절에 실패할 때
락(樂) - 즐거움
-"언제 한번 떡볶이나 한 접시 하자!"는 지인의 스윗한 멘트를 들었을 때
-떡볶이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떡볶이에 미친 동지들이 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합심하여 떡볶이를 경건한 자세로 영접할 때
-아이들이 엄마표 떡볶이가 사 먹는 것보다 낫다며 엄지 척을 날려줄 때
-비 오는 날, 자작한 국물 떡볶이로 짬뽕 부럽지 않은 칼칼함과 시원함을 느낄 때
-목적지에 가는 도중 마침 가보고 싶었던 떡볶이 맛집과 동선이 겹칠 때
-그렇게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가 떡볶이 한 접시로 금세 마음의 평안을 찾을 때
-떡볶이를 어제 먹고, 오늘 또 먹어도 여전히 맛있을 때
-수많은 레시피와, 별별 조리 방법을 보유한 K-떡볶이 강국인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감사가 절로 나올 때
-아직 정복하지 못한 떡볶이 맛집과, 먹어보지 못한 레토르트 떡볶이가 훨씬 많아 큰 위로가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