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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Mar 13. 2019

19.01.02 - 솔직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았다.

휴학생 짧은 일기.

 19.01.02 - 김밥집 해고, 상담.



#1.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했다.


신정이 하루 지나 또 아침이 밝았다.

밤새도록 온갖 종류의 꿈에 시달리다가 잠 자기를 관둔 시점, 어차피 일어나야 하는 시간일 때의 괴로움을 느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언제쯤 푹 자볼 수 있을까. 꿈 좀, 그만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기름에 절어서 올 것이기 때문에 샤워는 과감히 포기.

어제 저녁 큰 맘 먹고 끓이다 냄비도 하나 태워 먹을 뻔 했던 카레에 밥을 비비며, 잠을 깨우기 위한 커피 물을 끓였다.

그리고 카레라이스를 한 술 뜨는데, 오. 식어도 맛있다. 첫 카레여서 주방을 엉망 진창으로 만들긴했지만, 맛만은 꽤 그럴싸했다.

밥을 먹고 설거지는 패스. 갔다와서 하면 된다. 지금 하면 늦을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는 춥지 않게 대충 옷을 꿰 입고는 집을 나섰다.


#2. 출근길에 올랐다. 헛된 희망을 품고.


오늘 출근길은 조금 마음가짐이 달랐다. 대충 시간만 떼우다 올 요량이 아니었다. 오늘은 좀, 성의를 보여주리라.

어제 밤에는 가게에서 가져온 레시피 책도 보면서 공부했다. 시뮬레이션까지 하면서. 출근도 도보 출근 대신 과감하게 택시 출근을 선택했다. 30분정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그 김밥집에서 요구하는건 내가 단시간에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찍가서 어디에 무슨 재료가 있는지라도 좀 살펴보며 성의를 보여줄 심산이었다.

어느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때마다 정신차리라는 말을 종류별로 들었는데, 그게 좀 불쾌했다. 지금까지 출근 4일. 그들이 한참을 고민하며 만들어 온 체계는 한참을 고민한 그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네 시간, 그것도 제일 바쁜 시간대로 꽉 채워진, 심지어 격주로 띄워진 단 4일의 근무로는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실제로 다 꺼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냉장고 전설같았다. 거기 몇번째 칸에 콩나물이 있다더라..!

 

해가 바뀌고 스물여섯이 되었지만 어디가서 욕먹기 싫은 마음은 여전했다.

비록 알바지만, 알바주제에 30분이나 일찍 출근하는 나의 열정을 보여주리라, 괜히 마음을 다지며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나는 무슨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 처럼 설레는 기분마저 드는 듯 했다.


#3. 출근과 해고. 그 짧은 4시간 30분.


김밥집 출근 5일차. 그렇게 그곳으로의 출근길은 5일만에 영영 끝이 났다.

나의 설레는 기분은 정확히 4시간 30분만에 개박살이 났고, 나는 짤렸다.


출근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레시피를 보고 시뮬레이션까지 해보았지만, 시뮬레이션대로 자루냄비에 재료를 쏟아 붓고 그림대로 접시에 음식을 담아보았지만, 나는 실수를 하거나 그들의 기준선을 끝끝내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한 번 이야기한걸 기억하지 못하는 나, 그리고 이 주방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않고 외우려고만 하는 나를 갱생시키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았다. 한 일가족이 나를 번갈아가며 가르치는 건 정말이지 즐거운 경험은 절대로 아니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전부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나는 계속 음식이 나가는 그릇을 잘못 집어들거나, 돈까스를 썰 때 칼 등에 손을 올리지 않거나, 설명했던 레시피를 외우지 못하거나 했고, 그들은 계속 답답해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오그라들었고 퇴근할 때 즈음엔 계란을 굽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계란을 깨는 방법도 알려주셨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또 일장연설을 들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내가 깬 계란은 문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정말 계란을 깨는게 눈치가 보였다. 고작 계란을 깨는건데! 계란을 깨서 프라이팬에 탁! 놓는게 다인데 말이다.


그리고 퇴근할 때 쯤엔 나를 향한 고성과 고개숙여 울음을 참는 나만 주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어쩐지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참고 있었고, 두 손을 모으고 '네, 죄송합니다'만 연거푸 뱉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울면 진짜 최악의 하루가 될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그래도 돈벌려면 참아야지.'라는 주문이 눈 주위로 피가 몰리는걸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수치스러웠다. '니 나이가 몇인데, 이러면 사람을 왜 쓰냐'는 태어나 처음 듣는 모욕적인 언사에 불쾌하기보다는 '맞아, 내 나이가 몇인데'라는 자괴감이 들었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는 사실에 다시 자괴감이 들었고, 나는 정말 내가 바라는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도 교차했다. 적어도 확실한 건 나는 주방일에 있어서는 최악인 인간이었다.


시간은 꽤 빨리 지나갔다. 꼼꼼하게도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고, 나는 늘 짓던 자본주의 미소를 띌 힘 조차 없이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심지어 가게를 나서면서는 '나를 대체할' 다른 이의 면접 장면을 목격해 버렸다. 뽑는 순간 스페어를 물색하고 있었던걸까 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면접관이 나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잘 좀 하자고 말을 건넸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대충 인사하고 나왔다. 돈벌려면 참아야지.


나는 서둘러 고양이만 지나갈 것 같은 건물 틈 사이 제일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목놓아 울었다.

벽에 기대니 석회가루가 묻어나와서 영하 6도지만 패딩을 벗었다. 태어나 처음 입어보는 롱패딩이고 2주일도 안된 거여서, 그냥 품에 안고 울었다. 그렇게 우는데 전화가 왔다. 아까의 그 면접관이었다. 전화 넘어로 우리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오늘까지만 나오면 된다, 입금해주겠다, 그리고 앞으로 열심히 잘 하라는 말이 전해졌고 전화가 끊겼다. 뭘 열심히 잘 하라는 걸까. 나는 전화를 끊고 마저 울었다. 바람이 찼지만 패딩을 안고 있어서 덜 추웠다. 기름 냄새가 나는 마스크 안에서 입김과 눈물이 뜨겁게 식고 있었다. 확실히 거긴 좀 비참했다. 그러니까 골목 말고 그 가게가.


#4. 속상하고 창피했다.


내가 운건 그냥 속상해서였다.

그냥 속상해서 울었다. 지금 내 처지가. 내 상황이 속상해서 울었다. 뭐가 속상한지는 구체적으로 명명할 수 없다. 그냥 속상했다. 그 친구와 헤어진게 속상했고, 돈이 없어 비참해지는게 속상했고, 내 시간이 스펙으로 재단되어 가치 없어지는 것이 속상했고, 나의 지금을 치기어린 일탈쯤으로 여기는 엄마가 화가났고, 그래서 내 시간을 설명해야 한다는게 화가났고, 그 와중에 속절없이 6이 붙어버린 나이가 창피했고, 내가 창피했고, 창피한게 나라서 속상했다. 나는 내가 창피했다. 이런 일에 우는 애라는 것도 창피했고, 우는 나를 누가 볼까봐 창피했다.


그 와중에 머릿속에 예전에 가끔 상상하곤 했던 잘나가는 청년 기업가들의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그런걸 상상했다니. 걔네들 나이가 딱 지금 내 나이인데. 걔네가 진취적으로 한가지에 몰두해서 어떤걸 성취해내던 나이. 그러기엔 어리지만 또 적지도 않은 나이. 그래서 더 주목받는 나이. 그게 지금 울고있는 내 나이인 것이다.

나는 나의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는게 너무 창피했다. 열정적인 청년 창업가같은 그림을 꿈꿨지만, 김밥집 주방에서 일하다 혼나서 골목에서 우는 스물여섯살이라니. 너무 웃겼다.

맙소사.

이게 나라니.

그래서 울다가 웃었다.

그러다 다시 울었다.

그마저도 목놓아 울지는 못했다. 나는 그와중에도 누가 나를 볼까봐 겁이 났다.



#5.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서는 나는 금방 괜찮으려고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의 평온한 하루로 돌아가려고 했다. 버스를 타며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영상을 찾아보며 낄낄대고, 이런 일 쯤 이제 나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다는 걸 증명하려는듯 빠르게 다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는 쿨-하게 다시 영상 작업도 하려고 했다. 사실 영상작업은 몇일째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고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구상이 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고민하다보면 또 괜찮은 생각이 번뜩 떠오를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나는 행복한 이유 108가지를 생각해내며 지금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나 속상한 기분같은건 없다고 자신했다. 나는 이제 계속 괜찮아질거니까. 그 어떤 것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에 집중하는게 제일 중요하지.나는 요즘 이랬다. 전부 다 괜찮다 눙치고 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괜찮아야 했다.


#6. 괜찮은 척 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오늘 상담이 있어서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번주도 역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촉새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지만, 괜찮다. 저번엔 또 다른 일이 있었지만, 괜찮다. 언젠가 속상할 뻔 했지만 이제 괜찮다. 왜냐면 나는 몰랐던걸 알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나를 증명해낼 필요가 없다는 걸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이야기를 하는데 핵심은 없고 선생님을 지루하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럴수록 뭐가 좋은지 더 설명해내려 했지만 이야기할 게 많이 없었다. 심지어 이야기가 계속 널을 뛰고 있었다. 이 이야기 했다가 저 이야기했다가 하고 있었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늘 편하고 좋았던 상담시간이 꼭 불편한 친구에게 잘사는 모습을 보이려고 작정하고나간 약속 장소 같았다.


그 사실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한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의도적으로 좋은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나와, 내 이야기에 나의 의도가 개입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마치 모든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마냥 굴고 있는 내 모습에 대해 조금 천천히 이야기했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빨리 괜찮아진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있었다.

응당 겪어야하는 과정은 다 건너뛴 채, 빨리 꿈꾸던 모습이고 싶어서 또 나를 꾸며대고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은 이야기하지 않고 이걸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냈는지 따위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내 오랜 습관이었다. 되고싶은 모습인 척 하는 것. 나는 또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다 괜찮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속상해하고, 외로워하고, 어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닌 척 했다.

오늘 내가 좁은 건물 틈 사이에서 속상했던 건 분명 내가 느꼈던 감정이지만, 나는 늘 그랬듯 또 내 감정을 터부시하고 있었다. 분명 속상했지만, 나는 또 괜찮다고 했고 행복한 이유를 생각했다.

일이 잘 되지 않아 걱정이었지만 시간이 걸리면 다 될 것이라는, 근본을 알 수 없는 무사 안일주의로 내가 해야하는 노력을 외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지한 내'가 해야하는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게 괜찮게 느껴져야하고 편하게 느껴져야 하고 그런 행동은 커녕 그런 감정도 느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나를 재단하지 않기로 했고 대단한 정신적 성장을 이뤄냈기에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되는 단계라고 마음대로 판단해버렸던 것이다.


오래된 습이었다. 내츄럴 본 상태의 나의 감정, 상태 같은 것들은 항상 숨기고 가꿔야했던 내가 가지고 있던 습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내 마음을 모른체하고 어떤 성장을 이뤄낸 내 모습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진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니 어떤 글도, 영상도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또 스스로 솔직하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7. 나는  아직 솔직해져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나는 요즘 주변 사람들을 좀 만났고, 사람들에게 내 상담 사실을 이야기했더랬다.

나를 정의내리려고 했던 수많은 삽질이 나를 괴롭게 했다. 상담 후에는 나를 규명하거나 해명하려하기보다는 그냥 좀 지켜 볼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들. 그래서 조금 행복하고 기쁘다고, 이제야 나를 좀 알아가는 기분이라고 이제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고백을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반응을 살피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드백 여부나 종류와는 상관없이 기뻤다. 언제고 금방 휘발될 것만 같은 나를, 이 불안한 수렁에서 꺼내 정의내려주고, 안심시켜줄 그들의 피드백이 항상 중요했는데, 이제 그런게 필요 없다니. 나는 이제 내 스스로 힘으로 나를 지키거나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설렜다.

나는 그저 이 기적같은 기쁨에 더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여행도 이야기도 상담도. 지금 드는 생각이나 느낌이 기쁘고 행복하지만 왜 기쁜건지 왜 불안하지 않고 기분이 좋은건지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뭔가 더 하면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이 또 흐릿하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 하던 것들을 멈추고 인풋(input)을 끊어야 지금의 행복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부끄럽다. 나는 나를 분명히 느끼고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받아들이지도 못햇으니 좋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길에서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걱정하고 내 이야기를 누가 들을까 염려하고 혼자 촬영하는 나를 누가 볼까 긴장한다.

나는 아직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바라던 '진짜 나'로 살기 위해선 더 솔직해지고 더 고백하고 더 드러내는 시간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서 다시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고 다음 단계에 찾아올 시간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견뎌 낼 수 있기 위해서.




#+. 나를 자른 당신들 잘 들어라.


나는 솔직해져보려고 한다. 잘렸지만 여전히 예의바른 김현석으로 보여지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해보려고 한다.

나를 자른 두분 사장님.

아니 사실 솔직히 그래, 이해가지 않는다. 일주일도 안되서 나를 자른 일터는 처음이다. 아니 나는 어디서 잘린게 처음이다. 안 맞으면 당연히 잘릴 수 있지만, 그리고 자른지 몇시간만에 다시 일해달라고 전화온 일터도 처음이라 좀 황당하다. 나는 내가 충분히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잘린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릴 수 있구나. 하물며 김밥집도 나에게 돈을주면서 나를 기다려주는 훈련공간이 아니었구나. 그건 다 실전이었구나. 어쨌거나 세상은 냉정하다.' 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람마다 재능이 없어서 극복이 안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아로새긴다. 이 또한 감사드린다.


부디.

당신들이 바라는 대로, 한 번 듣는 레시피나 주의 사항은 절대 잊지 않고 당신들을 '열받게'하지 않는 총명함과, 계란 깨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당신들의 섬세함을 뛰어넘는 섬세함,

계란을 알바생 마음대로 깼을 때 분노하는 당신의 요리에 대한 속깊은 열정을 감내하는 넓은 마음,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학생다움과

동시에 성인이니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책임감까지 갖춘 학생을 구해서

실컷 굴려먹으며 돈 많이 벌길 바란다.

진심이다. 악감정은 없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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