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2 - 살다 보니까 서른.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죽고 싶다. 죽어버려야지.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때론 실패했고, 때론 생각에 그쳤고, 때론 화를 내다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엉엉 울어버리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런 약해빠진 애티튜드를 가지고 불안함과 죽고 싶음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그런 분하고 죽고 싶은 마음에 이골이 나버렸다. 나는 그렇게 적어도 뭐 하나에는 이골이 난 채 서른이 되었다.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서른이라는 나이가 가진 사회적 함의에 나 또한 열심히 동조했다. 서른이 되면, 이라는 가정은 그래도 속상하고 절망적이기보다는 비교적 희망참에 가까운 상상을 하게끔 했다. 서른이 되면 나도 2,3년 정도는 한 가지 일을 하며 내심 사회의 일원이라는 안심스러운 마음을 숨긴 채 일하는 게 죽겠다며 앓는 소리를 하고 있겠지. 서른이 되면 나도 누나나 형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은 큰 단위의 돈 문제로 지겨워하고 있겠지. 서른이 되면 담배값이나 버스비 정도의 돈은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서른이 되면. 나도. 이 두 키워드는 내심 지금과는 다른 삶의 형태를 막연하게나마 꿈꿀 수 있던 몇 안 남은 바람의 키워드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서른을 이야기하던 많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나도 별스럽지 않게 서른이 되었다. 어젯밤에 스물아홉이었는데 아침(너그럽게 생각해서)에 일어나니까 서른이 되어버린 거다. '서른이 되면'과 '나도'의 핵심요소는 고민 없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오지 않은 먼 미래라는 것과 나와 내 생활에 대한 불안함과 불만족스러움에서 출발한 다른 이들에 대한 성찰 없는 부러움이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미래가 아니게 되어버렸고,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남들을 부러워하기에는 나와 다른 이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더 이상 핑곗거리가 안 될 정도로 가까워져 버렸다.
그렇다고 그럼 이제부터 열심히 살아야지 아자아자 공주 화이팅, 나는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워 공원 바닥에 빙글빙글 조명 쏘는데 그렇게 쓰여져 있었어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진 않겠다. 동시에 아 그렇게 서른이 되면 나도 어쩌고 해 놓고선 아무것도 안 이루고 서른이 됐네 난 틀렸어 쓰레기 쓰레기 개똥벌레 나는 친구가 없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굳이 내가 서른이 되었답시고 오랜만에 현재 진행형 시점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 그래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서른이 되었고, 내가 바랬던 모습들과는 거리가 먼 상태이고, 나는 그냥 그 사실들을 글로 쓰는 걸 지금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글을 썼다.
서른 하나가 되면 어떻게 되어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음. 조졌네. 이걸로 글 써야겠다 히히 정도를 생각하고 바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서른 하나까지는 또 죽지 말고 살아야 하니까. 죽지 말자 현석아. 살다 보면 또 서른하나가 될 테니 우째든동 또 살아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살다 보니 다음 나이가 될 때까지 무사했으면 좋겠다. 무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