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게 너무도 낯선 자리, '엄마'

by 구작

내게는 엄마가 없었다

다섯 살로 기억한다

허구헌날 아빠와 싸우던 엄마가 집을 나갔다

내게 무슨 말을 남겼는지

마지막 얼굴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내 인생에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가 없어서 맞은 불행들은 구구절절 나열하기도 싫다

엄마가 없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게 불행의 무게를 줄이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엄마의 지난 자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가 남기고 간 역할과 책임만 내게 남겨졌다


엄마를 아주 못 본 것은 아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엄마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었다

그 전에도 몇 번 왔는데 할머니 손을 잡고 하교하길래 아는체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3학년이 돼 비로소 혼자 다니게 됐을 때 엄마는 내게 왔다

돈까스를 먹었었다

엄마는

많이 보고 싶었다고,

엄마 보고 싶었냐고,

고생 많았냐고,

힘들진 않았냐고,

아빠와 할머니가 잘 해주냐고,

울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돈까스만 씹어댔다

사실 그때 나는 엄마와의 자리가 불편했다

그렁그렁한 엄마의 눈에 내가 화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눈물을 터트릴 엄마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따뜻한 품, 기분좋은 향, 부드러운 말씨... 이런 것들이 언뜻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안개속의 실루엣처럼 흐릿했고 떠올리려 애쓸수록 더 짙은 안개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한껏 쏟아낸 엄마가 자리를 정돈했다

돈까스가 세 조각이나 남았었는데 내가 말도 없고 더 먹지도 않자 일어나려 했다

식당을 나온 엄마가 내게 만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나를 안았다

돈까스를 사주고 돈도 주고

돌아서며 울지 않는 엄마를 보고 나는 그때

엄마는 그럭저럭 잘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빠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

아빠는 곧 재혼했고 새엄마와 아이 둘을 더 낳았다

나는 새엄마와 함께 살림과 육아를 맡아야 했다

어렸을 땐 떠난 엄마라도 내 엄마라고 여겼기에 새엄마와 친해지지는 못했다

내가 엄마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오히려 보살피던 배다른 동생들하고 친했다

그러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새엄마마저 아빠의 폭력과 무능력을 못 버티고 떠났다

막내가 네 살이던 해였다

동생들은 새엄마가 없어지고 한동안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다 지친 동생들이 잠들었을 때 아이들의 둥근 이마를 쓰다듬다 눈물이 터졌다

그 이마가 맞닿을 세상은 참 차갑다는 걸 나는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생들에게 눈물을 보인 적은 없었다

나는 엄마로서 강해야 했다

친구들이 사춘기를 맞아 제2의 성징을 할 때

나는 엄마, 어른, 책임자가 돼야 했다

학교 다녀오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쉴 틈이 없었다

술취한 아빠의 술주정까지 들어줘야 했을 때였다

그래도 매일 밤 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잤다

책 속에 담긴 세상에 우리가 나갈 방법은,

책에서 읽은 수많은 이야기처럼 우리가 행복할 방법은,

우리처럼 가난하고 엄마 없는 아이들에겐 공부밖에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일년에 한 번은, 거의 내 생일 즈음 엄마는 학교앞으로 찾아왔었다

중1때 겨울에,

그러니까 새엄마가 나간 지 서너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날도 돈까스집에서 먹으면서

공부는 잘 하는지,

지금 키가 몇인지,

친구는 많은지,

묻다가 잠시 나를 가만보다

생리는 시작했는지,

할머니가 생리대는 챙겨주는지,

브래지어를 사러 가자는둥

팬티는 자주 갈아입어야 한다는둥

간섭을 하다가

동생들은 착한지,

서로 친한지,

그 애들 이름은 뭔지,

묻다가 잠깐 멈추더니

새엄마는 잘 해주는지 물었다

"새엄마도 도망갔어."

라고 말하고 돈까스를 마저 먹었다

엄마는 한두 마디 화답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돈까스를 씹으며 내가 새엄마 도망갔어라고 했는지 새엄마'도' 도망갔어라고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해 엄마와의 대화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말했어야 딸로서 옳았을지

'도'를 넣지 않았어야 내가 안도했을지

혹여나 '도'를 말했더라도 뒤에 오는 '도'와 겹쳐들렸다면 엄마가 좀 더 편안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화가 났다


엄마가 가자고 일어났다

돈까스가 두어 조각 남았는데 일어선다

엄마는 내게 만원 한 장을 쥐어주고 건강하고 공부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 전해보다 살이 좀 붙은 듯한, 그래서 어깨가 더 둥글어보이는 뒷모습이었다

나는 크고 있는데 엄마는 더 작아지는 듯했다

나는 중학생이 됐는데 여전히 내 손에는 만원이 남았다

아직 돈까스가 남았는데 엄마는 또 일어났다

아빠나 할머니는 안 사주는 돈까스인데 일년에 한 번 먹는 돈까스인데

그 돈까스가 남았는데 엄마는 갔다

엄마와 있는 시간의 길이는 돈까스의 갯수와 같은데 내가 돈까스를 남겼는데도 엄마는 가버렸다

브래지어를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생리대는 어떤 걸 사야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고서 엄마는 갔다


둥근 어깨가 구르듯 멀어지는 걸 보다가 만원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무렵

둥근 어깨가 멈췄다

어깨 위에 브로콜리 같은 머리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혹여나 브로콜리가 떨어질까봐 나는 돌아섰다

목에 힘을 주고 앞으로 걸었다

손에 힘을 주고 만원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 돈으로 통닭을 사 동생들하고 할머니하고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하루에 두 끼나 고기를 먹는 호사를 오늘은 누려보자고 쓴웃음을 삼키면서,

내년에는 엄마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을 억누르고자 발을 꾹꾹 누르며 집까지 걸었다



실제로 엄마는 그 후 볼 수 없었다

엄마와 헤어졌던 그 나이, 곱절이 지나서도.

그 사이

아빠는 병으로 몇달 병원신세를 지다가 죽었고

할머니는 새벽에 고물을 주으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엄마 노릇을 하다 완전한 가장이 된 게 열아홉 겨울의 끝이었고

수능점수와 상관없이 취업을 했다

버틸만한 착취와 삭힐만한 차별, 감내할만한 불행과 함께 그럭저럭 살았다

착취도 차별도 불행도 지나온 인생의 부산물처럼 느꼈더니 낯설거나 어려운 것들도 아니었다


서른을 앞두고서 나타난 한 남자만이 낯설고 어색하고 그래서 더 어려운 존재였다

잘 해주는데 연민만은 아닌 것 같고

가까이 오는데 착취만은 아닌 것 같고

웃어주는데 조롱만은 아닌 것 같은

보통사람 같지만 보통남자 같지는 않은 그였다

내게 몇 번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음을 비쳤지만

나는 나를 향한 남의 마음을 평가하고 계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지라 그 마음을 모른체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집요하게 가르쳐주고 확인해주고 약속하면서 나를 끌어갔다

세상은 그런 게 사랑이라고, 헌신이라고, 미래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보통의 범주로, 평범의 시간으로 들어서 결혼을 하게 됐다


내 상황에 대해 남자의 집에서는 너그러이 이해와 수용을 했기에 결혼식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나의 혼주석은 비어있었고 동생 둘은 많이 울었다

나는 그때도 울지 않았다

남자를 맞아들이는 신부의 기쁨보다 동생들을 떠나는 엄마로서의 슬픔이 컸지만

난 그때도 강한 엄마여야 했다

다만, 결혼식을 서둘러 마치고 지체없이 신혼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서

난생 처음 보는,

하늘과 같은 높이의 내 시선

그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날개

위에서 내려다 보는 구름

구름을 노랗게 물들이는 붉은 해

지는 해를 아무 것도 가리지 못하는 높은 하늘

살면서 보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 기이한 현실들에

눈물이 났다

눈물을 흘리니 묻고 있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구름을 뚫고 내려가면 엄마를 찾아 집안 곳곳을 뒤지던 다섯 살의 내가,

노을을 가르면 엄마가 갈까봐 돈까스를 씹고 또 씹던 어린 턱의 내가,

하늘을 건너면 할머니를 보낸 날 화장실 창문에 목을 메고 발을 덜덜 떨던 내가

나타날까봐 겁이 났다


결혼 후 남편은 엄마를 찾아보자고 했다

난 허락하지 않았다

동생들은 다를 거라 해서 동생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도 찾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누나가 원하면 해." "나는 괜찮아 언니. 언니는 찾고 싶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괜찮으니 너희들은 엄마 찾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도 돼. 동사무소에서 서류 한 통 떼면 알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동생들은 엄마를 찾지 않았다

내게 미안했는지

아니면 정말 엄마를 지워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내 인생에 엄마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있었다

결혼 후에 곧바로 아이가 생기면서 진짜 엄마 역할을 하면서 가끔 내 엄마에 대해 생각했지만

그것은 추억이나 감상할 경험은 아니었기에 그런 기억도 차츰 없어졌다


우리만의 가족으로 삶을 이쁘게 꾸릴 때

불행은 언제나 기습적으로 나타나듯

우편함에 엄마의 소식이 도착했다

엄마의 이름을 한 사람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신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류상 엄마의 딸인 내가 엄마의 부양의무대상자로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낯선 단어들의 향연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엄마,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의무...

내가 딸인데 내가 그녀를 부양해야 한다고,

경험은 없지만 엄마가 딸을 키우는 거라는 건 아는데

딸인 내가 엄마를 부양해야 하다니,

그게 몇십년만에 엄마에게 온 소식이라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둥근 어깨로 둥글게 둥글게 잘 살 거라 생각했는데

만원을 쥐워주던 그 손으로 뭐든 해서 잘 살 거라 생각했는데

'잘산다'는 말은 못 들어도 '잘 산다'로는 살 줄 알았는데

환갑이나 됐을 그 나이에 나라의 도움을 받겠다고,

수십년 버려둔 자식에게 인정해달라고 연락이라니

다시금 돈까스가 남았는데 일어서던 그날이 떠올라 심장이 조여왔다


엄마를 만나야 했다

보고싶은 건 아니었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소지는 부산이었다

가평에서 헤어졌는데 가평에서 가장 먼 땅끝 중 하나인 부산에 가있었다

부산사람은 다 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줄 알았는데 부산에도 산이 있었고 산과 산 사이에 엄마가 살고 있었다

남편이 적당한 커피숍을 알아둬서 먼저 가있었다

통창으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였다

크고 깨끗한 창은 적나라하게 마을의 가난을 비춰냈다

슬레이트를 얹은 지붕들

싸구려 페인트로 칠한 지붕은 색이 들떴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로 골목이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그 어딘가에서 엄마는 무거운 다리를 끌고 올 것 같았다


엄마가 왔다

눈을 굴려 만들어진 눈사람처럼 엄마는 더 둥글어졌다

그 살이 고기와 안락으로 찌어진 것이 아니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건 가난과 부족이 만든 식탐이 집어삼킨 먹이의 부산물이었다

"연락이 갈 줄은 몰랐어. 미안해."

연락을 했어야 할 엄마인데 연락이 닿은 것에 미안해 했다

그러고는

예쁜 아이구나

몇살이니?

언제 결혼했니?

몇가지 질문을 하고는

고생이 많았겠다

잘 컸구나

아이들을 잘 키웠구나

어렵게 몇마디 하고 눈을 어디에 둘줄 몰라했다

그런 엄마가 불편해졌다

엄마는 내가 생각났었어?

왜 부산까지 내려왔어?

이 동네는 은근히 가평을 닮았네

그런 생각했어?

이 동네를 닮은 곳에 엄마를 닮은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었어?

라고 묻고 싶었지만 예스든 노든 달라질 건 없기에 말을 삼켰다

채 다 씹지 못한 돈까스 조각이 목에 걸린 것 같았다

눈치 빠른 남편이 자리를 정돈해주길 바랐지만 엄마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있었다

착한 남편도 제역할을 다하고 말을 잃었을 때

엄마가 일어섰다

일어서고 정리하고 떠나는 걸 잘했던 그때처럼

만나서 반가웠어

찾아와줘서 고맙네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렴

따위의 말들을 나와 남편과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하고선

가방에 손을 넣고 꾸물거리더니

아이들 손을 잡고 인사한 후 돌아섰다

언제 또 보자거나

연락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부양의무자를 해달라든지 말라든지

뭐 하나 정해주지 않고 카페를 나갔다

심장이 다시 조여왔다

둥글게 작아지는 엄마에게서 눈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손에 쥔 만원을 흔들며 웃었다

이 아이들은 만원을 쥐고서 웃을 수 있구나 생각하니 숨이 트였다


마을에서 바다로 가는 길 저 멀리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해가 자기 앞에 놓인 구름을 도화지 삼아 노랗게 물들였다

저 구름 아래로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내비게이션에서 더 서쪽 해변을 찾았다

가는 길에 구름은 붉게 타올랐다

내 인생에 가장 붉었던 20대가 떠올랐다

그땐 이겨내기 위해 모든 것과 싸워야했다

다대포에 도착하니 구름은 검붉었다

나의 10대가 떠올랐다

그땐 그늘과 불 꺼진 방구석에 숨고만 싶었던 때였다

해가 바다 밑으로 떨어지자

한줌이나 될까싶은 구름에서 붉은 색이 사라졌다

그러면 이제 암흑이 올 차례인가 생각하니

구름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그때 엄마가 다시 생각났다

수급자가 된 엄마가 보라색으로 왔나보다

'노랗게' '빨갛게' '파랗게'처럼 긴가민가 의심할 여지도 주지 않는,

보랗게가 아닌 보라색으로 왔나보다

나보고 어쩌라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낙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